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전체 글2133

“이 죽음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희생에 부쳐 스물세 살의 여성 노동자가 죽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 씨다. 그이는 2004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품질 검사 그룹 검사과 1라인에서 일했다. 엑스선 기계를 이용한 특성검사와 화학약품을 이용한 실험검사가 그이가 맡은 업무였다. 그이는 지난 3월의 마지막 날 오전 10시 55분에 숨졌다. 그의 죽음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스물셋 여성 노동자 박지연 씨 박지연 씨가 죽었다. 입사한 지 32개월째인 2007년 8월, 그이는 호흡곤란, 어지럼증, 구토, 하혈 등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결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4회에 걸친 항암치료에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2009년 9월, 백혈병 재발로.. 2020. 4. 7.
<산문에 기대어>의 송수권 시인 떠나다 송수권 시인(1940 ~ 2016. 4. 4.) 원로 서정시인 송수권 선생이 돌아가셨다. 시인은 지난 4일 낮 12시 40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4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일흔일곱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나는 해마다 선생의 대표작 ‘산문에 기대어’를 가르쳤지만, 선생이 나보다 16년이나 연상이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갓 스물에 만났던 시인 선생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나는 1975년, 집에서 구독하고 있던 월간 에서 그의 대표작 ‘산문(山門)에 기대어’와 함께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갓 스무 살의 문학도였다. 한 면 전체에 실린 신인상 수상 시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을까, 말았을까. 그때 나는 ‘산문’이란 낱.. 2020. 4. 5.
‘삼D 프린터’와 ‘스리디 업종’ 사이 ‘삼디(3D)와 스리디(three D)’ 관련 소극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로 읽은 뒤에 이런저런 설이 난무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탈당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종인 후보는 ‘잠깐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심각한 결함’이라며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이라고 공격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전문가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가 있다. 누구나 ‘쓰리디 프린터’라고 읽는다”라고 밝혔다. 이에 당사자인 문재인 후보는 “우리가 무슨 홍길동이냐”며 “‘3’을 삼으로 읽지 못하고 ‘스리’라고 읽어야 하느냐”고 되받았다. 한글문화연대도 이에 대해 ‘공공 영역에서 외국어와 어려운 말을 남용하는 것은 병폐’라며 김종인, 안철수 후보를 싸잡아 비난했다. 3D 프린터 업.. 2020. 4. 5.
선거는 ‘치르고’ 문은 ‘잠근다’ ‘선거’와 ‘경기’는 ‘치루지’ 않고 ‘치른다’ 끝소리가 ‘ㅡ’인 동사 가운데 어떤 낱말들은 ‘ㅡ’가 아닌 ‘ㅜ’로 발음하는 사람이 꽤 많다. ‘치루다’(치르다), ‘잠구다’(잠그다) 같은 말이 그렇다. 잘못이라고 신문이나 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 끊임없이 지적하는데도 이런 쓰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인터넷신문을 물론이거니와 중앙 일간지에서도 이 ‘잘못된 표현’이 버젓이 쓰이고 있었다. “큰 선거를 치루다 보면…….” “리그 경기를 치루다…….” “아내와 큰일을 치루다…….” 기본형을 잘못 쓰다 보니 활용도 제멋대로다. 활용 형태를 “치루어(치뤄), 치루니, 치루고…….”, “잠구어(잠궈), 잠구어서(잠궈서), 잠구고…….”처럼 쓰는 것이다. “액체 속에 넣다.”, “김치·술·장·.. 2020. 4. 5.
‘사랑’의 ‘사전적 정의’, ‘이성애’로 돌아가다 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국어사전은 모국어 사용의 준거로서 기능한다. 국어와 관련한 시비는 ‘사전 찾아보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사전은 일정한 기간마다 사라지는 말, 뜻이 바뀌는 말과 함께 새말의 탄생 따위를 반영한다.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관련 한글 단체와 출판사 등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담당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이 모든 언어생활의 준거로 널리 이용된다. 국립국어원, 기독교계 요구에 밀려 재개정 최근 에 실린, 지난 2012년에 바꾼 ‘사랑’에 관한 정의가 이성애를 기준으로 삼은 과거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언어 사용에서 차별을 없애고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려 한 뜻풀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재수정하라는.. 2020. 4. 4.
두 고교생의 죽음 두 학생의 죽음을 생각한다 지난달 25일 경북 지역의 한 자율형 사립고에서 ‘전교 1등도 했던’ 고교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1일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고3 학생이 모의고사 성적표 뒤 첫 등굣길에 아파트 14층에서 몸을 던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정색하고 이 기사를 긴급히 타전한다. 마치 그것이 일찍이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난번 사고 보도 때 제시한 원인분석이 되풀이되고 ‘학교의 변화’를 새삼 촉구하지만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언론은 너무 잘 안다. 전교 1등 고교생의 “더 이상 못 버티겠다” 하긴 나도 그날,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그 이야기를 잠깐 했다. 아이들은 그 .. 2020. 4. 3.
살구꽃, 혹은 성찰하는 공민의 봄 3. 남은 것은 이제 ‘성찰하는 공민’입니다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 qq9447.tistory.com 오늘 아침에야 3월 달력을 떼어냈습니다. 연금공단에서 보내준 달력입니다. 삼월분을 찢어내자 드러나는, 한글로 쓴 ‘사월’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사월이 무거운 이유는 여럿입니다. 그것은 멀리는 이제 기억에서도 까마득해진 사월혁명, 그때 스러져 간 젊은이들의 피를 떠올리는 시간이고, 가까이는 2014년 4월 어느 날을 아픔과 뉘우침으로 기억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 2020. 4. 2.
「성탄제」의 김종길 시인 타계 1926 ~2017년 4월 1일 지난 1일, 원로시인이자 영문학자인 고려대 명예교수 김종길(1926~2017) 선생이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에 부인을 잃고 힘들어하다가 그예 뒤를 따랐다고 한다. 향년 91세. 내외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시어 유족들의 슬픔은 크겠지만 두 분은 인연이 남달랐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생의 본명은 김치규, 경북 안동 출신이다. 1947년 신춘문예에 시 ‘문’으로 입선하며 등단했다. 그는 “서양 이미지즘 시학을 받아들이면서도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고전적 품격을 지닌 시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은 시인이다. 나는 1980년대 초임 시절에 제4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그의 대표작 ‘성탄제’를 여고생들에게 가르쳤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 2020. 4. 1.
경북 김천 빗내농악의 한판 풍물굿 김천시 개령면 광천2리의 ‘빗내농악’ 어제는 처음으로 정월 대보름 행사에 나가보았다. 올해는 달맞이 행사와 함께 ‘2009 경북민속문화의 해’ 선포 행사가 같이 열렸다. 그래서인지 오전부터 낙동강 둔치의 탈춤마당에서 베풀어진 행사는 좀 떠들썩했다. 바람이 제법 찼다. 그래도 행사장 곳곳엔 크고 작은 사진기를 둘러멘 구경꾼들로 넘쳐났다. 행사장에 도착한 건 오후 5시께. 탈출공연장 앞쪽에서 농악대 공연이 무르익고 있었다. 행사장 스크린에 소개된 이름은 ‘빗내농악’. 빗내? 글쎄, 어느 지역의 농악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이부터 6·70대의 노인들까지 두루 섞인 농악대가 연주하는 곡은 풍성하고 흥겨웠다. 우리 음악은 구경꾼들을 구경꾼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체면 때문.. 2020. 3. 31.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봄꽃 찾아 동네를 돌다 이미 곁에 당도한 봄을 주절댄 게 지난 15일이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3월의 막바지, 이제 꽃은 난만(爛漫)하다.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꽃봉오리가 벙글고 있었다. 무심히 매화일 거라고 여겼더니만 어저께 돌아오며 확인하니 그건 활짝 핀 살구꽃이었다. [관련 글 :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이미 설중매로 소개했던 매화는 지고 있었다. 전자 공장 뒤란의 콘크리트 바닥이 떨어진 매화 꽃잎으로 하얬다. 시들어버린 오종종한 꽃잎을 일별하면서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우리 선인들은 이 보잘것없는 꽃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을까. 단지 이른 봄에, 더러는 눈 속에 꽃을 피운다는 것 외에 무엇이 선비들의 맘을 사로잡았을까. .. 2020. 3. 30.
‘메이데이’ 120돌, 그리고 2010 한국 ‘메이데이’ 120돌 맞은 2010년의 한국 내일은 노동절, 120번째 맞게 되는 메이데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날을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무싯날과 다르지 않게 이날도 근무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2009) 10.5%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9위다. 전체 노동자 10명 중 9명은 미조직 노동자란 뜻이다. 단체협약 적용률은 12.5%에 그쳐 꼴찌다. 스웨덴과 핀란드(92.5%), 덴마크(82.5%)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21세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노조조직률이 높아지면 경제 부담이 커진다는 건 오해’라며 높은 조직률은 ‘오히려 산업계에 큰 자산’이라고 보는 북유럽 .. 2020. 3. 29.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봄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온 봄 정말, 어떤 이의 표현대로 봄은 마치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느낌이다. 봄인가 싶다가 꽃샘추위가 이어지곤 했고 지난 금요일만 해도 본격 꽃소식은 한 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일교차가 컸던 탓일 것이다. 한낮에는 겉옷을 벗기려 들던 날씨는 저녁만 되면 표변하여 창문을 꼭꼭 여미게 했다. 토요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아파트 앞산에 올랐는데, 산길 주변 곳곳에 참꽃(진달래)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출근하는 숲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어서 나는 잠깐 헷갈렸다. 일요일 오후에 돌아보니 아파트 주차장 어귀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아래 동백꽃도 화사했고. 사진기를 들고 나갔더니 화단의 백목련은 이미 거의 끝물이다. 아이들 놀이터 뒤편에 못 보던 매화가 하얀 꽃을 피우.. 2020.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