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 120돌 맞은 2010년의 한국
내일은 노동절, 120번째 맞게 되는 메이데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날을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무싯날과 다르지 않게 이날도 근무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2009) 10.5%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9위다. 전체 노동자 10명 중 9명은 미조직 노동자란 뜻이다. 단체협약 적용률은 12.5%에 그쳐 꼴찌다. 스웨덴과 핀란드(92.5%), 덴마크(82.5%)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21세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노조조직률이 높아지면 경제 부담이 커진다는 건 오해’라며 높은 조직률은 ‘오히려 산업계에 큰 자산’이라고 보는 북유럽 선진국들의 인식도 먼 나라 이야기다. 공무원노조의 설립 신고를 세 번이나 반려한 우리 정부의 시계는 여전히 노조를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보는 19세기에 머물러 있으니까 말이다.
‘8시간 노동’과 ‘헤이마켓’의 희생
메이데이(May Day)는 만국 공통의 국제노동절, 온 세계의 노동자들이 국제적인 연대를 다지고 축하하는 날이다. 이날은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운동의 중심지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시작된 총파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5월 3일, 경찰과 군대가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 파업·농성 중이던 어린 소녀를 포함한 모두 여섯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튿날 헤이마켓 광장에서 경찰의 노동자 살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 중 폭탄이 터져 많은 사상자가 나면서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체포된다. 이른바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이다.
‘경찰관 살해 교사’ 혐의로 파업 지도자 8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가운데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노동자들은 재판에 넘겨진 지도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옷깃에 붉은 장미를 달았다. 장미가 ‘진보’의 상징이 되고 노동절 집회에 으레 붉은 장미를 달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헤이마켓 사건은 메이데이를 낳았다.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는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싸웠던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정했다. 그리고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의 확립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 메이데이가 ‘노동절’로 복원된 것은 1994년 국회가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대한노총 창립일)에서 5월 1일로 옮기도록 법률을 개정하면서부터다. 물론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이 이날을 다시 노동절로 지정하도록 요구하며 오랜 투쟁을 벌인 끝에 얻은 결과다.
201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1890년부터 시작된 메이데이는 올해도 120돌,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두 번째 회갑을 맞는 셈이다. 그러나 2010년 현재 한국의 노동 상황은 지금 퇴행 중이다. 기본적인 노동조합 설립 신고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설립 신고는 세 번째 반려되었다. ‘조합 활동으로 해고된 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의 지침은 노동조합의 뿌리를 뽑으려는 의도로 간주되고 있다. 정부가 전공노를 계속 ‘법외노조’ 상태로 묶어 두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교조 명단공개는 집권당의 노조관 증명
얼마 전,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법원의 공개 금지 판결을 무시하고 전교조 교사 명단을 자기 누리집에 전격 공개했다. 조 의원의 ‘불법행위’는 2010년 현재, 이 나라의 노동 상황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가 될지 모르겠다.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노동조합 가입 정보를 불법적으로 공개한 조전혁 의원의 행태는 말끝마다 ‘법치’를 이야기하는 한나라당표의 ‘법치’가 ‘고무줄 잣대’임을 꼼짝없이 증명해 버렸다. 조 의원에게 강제이행금이 부과되자, 한나라당에서 내뱉은 논평은 가히 ‘반(反)상식’의 성찬이다.
“법원의 명단공개 금지 결정은 국회의원의 직무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정이다. 이번 일은 여야의 문제가 아닌 모든 국회의원의 문제이자 국회 권능에 관한 문제이니 여야가 공동대처해야 한다.
두 결정은 정치에 대한 사형선고다. 국회의원이 이 두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국회의원 스스로 권한을 제한하고 스스로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이상 조전혁)
“조전혁 의원이 정말 당당하고 떳떳하고 정당한 입장에서 공개한 내용을 가지고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은 입법부와 국회의원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입법부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권한을 침해하는 ‘조폭 판결’이라고 생각한다.”(정두언)
국회의원의 ‘직무’가 헌법과 법률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정치’를 말하지만, 우리 사회의 ‘상식’은 그것을 ‘불법’으로 바라본다. 기본적 인권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이른바 ‘헌법기관’이 법률과 사법부의 판결을 능멸하는 것은 그의 ‘권위’는 물론이거니와 ‘권한’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사법부의 판결을 ‘조폭’으로 비유하는 국회의원은 용감한 것인가, 무지한 것인가. 그의 판단의 잣대는 ‘시비곡직’이 아니라 자기 파당의 이해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술 더 떠 이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릴레이 명단공개’에 나서겠다고 한다.
법치주의는 법원의 결정이나 판결의 이행이 강제될 때 유의미한 제도이다. 법원의 판결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하여 ‘조폭’이라며 부정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부정, 사법 파괴, 법치주의 유린’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저께 전국의 건설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을 일제히 멈추고 노동기본권과 ‘8시간 노동’을 외쳤다고 한다. 건설노동자들이 살인적 장시간 노동과 상시적 임금체불, 불법다단계 하도급에 시달려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건설노조 조합원이 ‘근로자가 아님’을 문제 삼으면서 이들 노조의 존립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데이 120년. 그러나 이 땅에서는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고 노조가 ‘노동조합’이라는 법적 지위를 얻는 것조차 수월치 않다.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요구는 120년 전의 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다. 그러나 한 세기가 훌쩍 흐른 2010년 한국에서 그것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덧붙임 :
포털 가운데에서 메이데이를 의식하고 있는 데는 없는 듯하다. 검색엔진인 ‘구글’만이 메이데이(노동절)을 기리는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구글은 벽면에다 ‘google’이란 글자를 붙이고, 나사를 죄고 있는 노동자들을 통해 ‘노동’의 의미를 환기하고 있다.
문득, 90년대의 어느 해 노동절 집회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한 말씀이 떠오른다.
”여러분, 여기 어떻게 왔어요?“
”기차 타고요!“
”버스요!“
”비행기요!“
”그거 모두 누가 만든 거지요?“
”노동자요!“
2010. 4. 30. 낮달
* 메이데이 관련 글
[오늘] 첫 메이데이(May Day),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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