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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by 낮달2018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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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찾아 동네를 돌다

▲ 설중매로 있던 동네 매화는 져서 콘크리트 바닥이 하얬다. 동네의 반대편에서 만난 또 다른 매화꽃.
▲ 남 먼저 핀 생강나무꽃은 지고 이제 바야흐로 잎이 나려 한다 .

이미 곁에 당도한 봄을 주절댄 게 지난 15일이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3월의 막바지, 이제 꽃은 난만(爛漫)하다.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꽃봉오리가 벙글고 있었다. 무심히 매화일 거라고 여겼더니만 어저께 돌아오며 확인하니 그건 활짝 핀 살구꽃이었다. [관련 글 :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이미 설중매로 소개했던 매화는 지고 있었다. 전자 공장 뒤란의 콘크리트 바닥이 떨어진 매화 꽃잎으로 하얬다. 시들어버린 오종종한 꽃잎을 일별하면서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우리 선인들은 이 보잘것없는 꽃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을까. 단지 이른 봄에, 더러는 눈 속에 꽃을 피운다는 것 외에 무엇이 선비들의 맘을 사로잡았을까. [관련 글 : 춘분 날, ‘설’은 녹고 ‘매’만 남은 설중매(雪中梅)]

▲ 나는 매화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 선인들은 이 오종종한 꽃잎의 어디에 반했을까를 생각한다 .

살구와 매화는 같은 장미과 벚나무 속으로 쉽게 분간하지 못할 만큼 닮았다. 살구와 매화를 구별하는 법을 지난해에야 알았다. 꽃받침 모양이 살구는 매화와 달리 반대쪽으로 뒤집혔다는 것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어서 나는 이내 살구꽃을 알아봤다. 주변의 할머니한테 물으니 그렇다고 확인해 주었다. [관련 글 : 살구꽃, 혹은 성찰하는 공민의 봄]

▲ 살구꽃 . 같은 장미과 벚나무 속이지만 , 살구꽃이 훨씬 절제되고 기품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  살구꽃은 매화와 달리 꽃술이 늘어지지 않아서 단정하며 숱도 적어서 훨씬 담백해 보인다 .

매화는 시나브로 지고 봄은 깊어간다

 

어쨌든 나는 매화보다는 살구꽃이 훨씬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매화와 달리 꽃술이 늘어지지 않아서 단정하며 숱도 적어서 오히려 담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전 내 어릴 적 동무 집 앞에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거기 달리던 주황빛, 제대로 익으면 씨와 과육이 감쪽같이 떨어지던 살구 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오리고깃집 마당 울타리에 핀, 하얀 꽃을 꽃사과라 여기고 지나쳤더니 어제 앞치마를 두르고 나온 주인은 그걸 앵두라고 일러주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로 시작하는 유행가 ‘앵두나무 처녀’의 그 앵두다. 최헌의 노래에서 ‘철없이 믿어버린 당신의 그 입술’의 그 앵두다.

 

글쎄, 앵두도 나는 잘 모른다. 우리 동네 우물가엔 앵두나무 따위는 없었다. 아니 동네 어느 집 마당엔가 그 나무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그러나 석류나무라면 모를까, 앵두는 모른다고 나는 우정 시치밀 뗄 작정이다. 여인의 고혹적인 입술을 일러 ‘앵두 같다’라고 하지만 열매와 달리 꽃은 소박한 흰빛이었다.

▲  여인의 고혹적인 입술을 묘사할 때 '앵두 같다'고 하지만 정작 앵두꽃은 흰빛의 담백한 꽃이다 .
▲ 음식점 마당에 '산당화'라고도 불리는 명자꽃 봉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 조만간 활짝 피어나리라 .

앵두와 명자꽃, 동네 꽃 지도를 그리고 싶다

 

▲ 남도의 동백꽃

앵두꽃 옆에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탐스러운 빨간 봉오리는 명자꽃이다. 명자꽃을 여기서 만나다니! 떠나온 안동, 우리 아파트 화단에 해마다 4월이면 명자꽃이 빨갛게 피었었다. 안도현이 노래한 이 산당화(山棠花)의 그윽한 아름다움에 나는 푹 빠졌었다. [관련 글 : 산당화, 내게로 와 꽃이 되었지만]

 

내친김에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나는 뜻밖에 두 그루의 동백나무를 만났다. 한 그루는 벽진이씨 북봉공파 종회 대문 앞에, 또 한 그루는 우리 이웃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 어떤 학원 현관 앞에서다.장미를 닮은 이 동백꽃은 바닷가에 피는 남도의 그것과는 다른 겹 동백이다.

 

붉은빛에 노란 머리를 단 하얀 꽃술의 동백이 남도의 바닷가에서 자라는 주종인데 ‘홑 동백’이라고 한다. 다섯 장의 꽃잎이 한꺼번에 통째로 지는 이 꽃은 제주 4·3의 상징이다. 70돌을 맞으면서 동백꽃을 가슴에 다는 운동이 퍼지고 있는 까닭이다.

▲ 우리 동네에서 만난 동백꽃. 영남 내륙의 동백나무는 남도 바닷가의 그것과는 종류가 다른 겹동백이다.

도서관 근처의 이삿짐센터 앞에선 홍매화를 만났다. 빛깔도 빛깔이지만 그 겹꽃이 아름다웠다. 떠나온 남학교 교정에도 이 겹꽃 홍매화가 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교정을 떠난 지 벌써 이태가 지났다. 본관 앞마당에는 일렬로 서 있던 벚나무에도 곧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 홍매화. 겹꽃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꽃이다. 떠나온 학교 교정에도 이 꽃이 피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북봉산 아래 소공원에서 벚나무 가로수에 꽃이 몇 송이 달린 것을 보았다. 그렇다, 도심에는 이미 벚꽃이 한창 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에는 금오산 벚꽃 축제가 열린다.

 

4천여 보를 걸어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나는 문득 ‘우리 동네 꽃 지도’를 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울타리의 개나리꽃부터 시작하여 명자꽃, 앵두꽃, 꽃사과, 매화, 살구, 동백, 홍매화, 벚꽃까지 말이다.

▲ 큰개불알꽃. 이름과는 달리 이 꽃은 산뜻하고 아름답다. 사람들이 '봄까치꽃'이라 부르는 이유다.
▲ 내가 사는 아파트의 아그배나무의 눈록빛 잎. 그 순백의 아름다움은 생명의 외경을 떠올리게 한다.

봄까치꽃과 냉잇국, 그리고 봄날은 간다

 

우리 동네를 도는 내 상춘(賞春)의 발길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아파트 담벼락 아래 수줍은 듯 핀 큰개불알꽃이다. 일본인이 붙인 이름이 거시기하다고 동호인들이 ‘봄까치(또는 봄까지)꽃’이라 부르는 녀석이다. 글쎄, 원래 이름과 달리 이 꽃은 새뜻하고 얌전해 보인다. 줄이 선명한 꽃잎의 빛깔이 연 파랑인데 그게 봄의 이미지를 떠올려 주는 것일까.

 

내가 사는 동 앞 지하주차장 어귀에는 아그배나무가 몇 그루가 서 있다. 지난해 열매가 상기도 남았는데 이제 막 파랗게 돋아나고 있는 눈록 빛 잎은 정신을 번쩍 나게 해준다. 말하자면 그것은 무릇 모든 생명이 선사해 주는 경외감이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밥상에 오른 냉잇국은 미각으로 아퀴짓는 이 봄의 화룡점정이다. 채 썬 무와 콩가루를 듬뿍 넣은 국에 온몸을 담근 냉이가 전하는 봄의 향기는 황홀하다. 그러나 봄은 짧다. 우리가 굳이 ‘봄날은 간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 어제 조반에 오른 냉잇국 . 무채와 콩가루가 듬뿍 들어갔다.

겨우내 기다렸던 계절이건만 봄은 해마다 그렇게 속절없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다. 봄인가 싶은 것도 잠시, 어느새 성큼 다가온 여름 앞에서 봄은 마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물살처럼 스러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봄날은 얼마 남지 않은지도 모른다.

 

 

2018. 3.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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