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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경북 김천 빗내농악의 한판 풍물굿

by 낮달2018 2020.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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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개령면 광천2리의 ‘빗내농악’

▲ 안동시에서 베풀어진 정월 대보름 행사 중 탈춤마당의 빗내농악 공연

어제는 처음으로 정월 대보름 행사에 나가보았다. 올해는 달맞이 행사와 함께 ‘2009 경북민속문화의 해’ 선포 행사가 같이 열렸다. 그래서인지 오전부터 낙동강 둔치의 탈춤마당에서 베풀어진 행사는 좀 떠들썩했다.

 

바람이 제법 찼다. 그래도 행사장 곳곳엔 크고 작은 사진기를 둘러멘 구경꾼들로 넘쳐났다. 행사장에 도착한 건 오후 5시께. 탈출공연장 앞쪽에서 농악대 공연이 무르익고 있었다. 행사장 스크린에 소개된 이름은 ‘빗내농악’. 빗내? 글쎄, 어느 지역의 농악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이부터 6·70대의 노인들까지 두루 섞인 농악대가 연주하는 곡은 풍성하고 흥겨웠다. 우리 음악은 구경꾼들을 구경꾼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체면 때문에 점잔을 빼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발꿈치나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빗내’는 ‘빛내[광천(光川)]’다. 김천시 개령면 광천2리의 본이름이 ‘빗내’인 것이다. 개령은 삼한 시대의 소국 감문국(甘文國)의 옛터인데, 마을 뒤쪽에는 감문 산성 터와 군사를 동원할 때 올라가 나팔을 불었다는 취적봉(吹笛峰)이 있다.

 

삼한 시대에 이 지역에서는 나라 제사와 함께 풍년을 비는 풍년을 비는 별신제(別神祭)를 지냈는데, 이 별신제가 동제(洞祭) 형태로 전승되었다. 매년 동제 때는 풍물놀이와 무당의 굿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있었는데 이들 행사가 혼합되어 진굿 형식의 풍물놀이로 발전한 게 ‘빗내농악’이다.

 

빗내농악은 가락이 강렬하여 타 굿판과는 명확한 차이가 있으며, 모두 12마당(골매기굿, 문굿, 마당굿, 영풍굿, 판안다드레기, 기러기굿, 허허굿, 쌍둥이굿, 판굿, 영산다드레기, 진굿, 상사굿)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악은 대부분 지역에서 농사 굿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빗내농악은 진굿 형식이다. ‘진(陣)풀이’로도 불리는 진굿은 진을 짜서 상쇠의 지휘에 따라 행진 놀이를 하는 군사적인 병법을 연상시키는 놀이로 풍물굿의 ‘군악 기원설’이 여기서 비롯한다. 유명한 전북 임실 필봉농악도 진굿의 일종이다.

 

빗내농악은 음력 1월 6일 ‘동제’에 이어 풍물놀이와 줄당기기 두 가지 진놀이가 행해질 때, 각 가정을 돌며 지신밟기 등의 놀이를 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빗내농악은 순수한 경상도 내륙 농촌의 풍물로서 다른 지역의 가락이 혼합되지 않는 등 상쇠의 전승 계보가 분명하다는 게 특징이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전개 과정에서 빗내의 동제는 없어졌다. (새마을 운동 덕분에 사라져 버린 민속이나 유물이 얼마인가!) 이후 빗내농악은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1984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김천금릉빗내농악’은 2019년 9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빗내농악의 특징으로 경상도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풍물굿이라는 점, 풍물굿의 군악(軍樂)적인 영향이 아주 강하다는 점, 큰 북은 북채 두 개를 두 손에 들고 친다는 점이다. 또 전라남도 진도의 북춤과 비슷하나 북의 크기와 그 맛이 다르다는 점, 20년의 역사에 상쇠의 계보가 뚜렷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풍물은 그것을 연주하는 이에게 무한한 만족감을 주는 듯하다. 그것은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자기 완결성을 지향하는 음악인 까닭이다. 젊은이와 노인들이 어우러진 빗내농악의 한판 풍물굿에서 나는 그걸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2009. 2.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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