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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 기대어>의 송수권 시인 떠나다

by 낮달2018 2020.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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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1940 ~ 2016. 4. 4.)

 

원로 서정시인 송수권 선생이 돌아가셨다. 시인은 지난 4일 낮 12시 40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4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일흔일곱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나는 해마다 선생의 대표작 ‘산문에 기대어’를 가르쳤지만, 선생이 나보다 16년이나 연상이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갓 스물에 만났던 시인

 

선생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나는 1975년, 집에서 구독하고 있던 월간 <문학사상>에서 그의 대표작 ‘산문(山門)에 기대어’와 함께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갓 스무 살의 문학도였다. 한 면 전체에 실린 신인상 수상 시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을까, 말았을까.

▲ 시집 <빨치산>과 <흑룡만리>

그때 나는 ‘산문’이란 낱말을 처음 만났지만 단박에 그게 가진 울림을 알아보았다. 시를 즐기던 시기는 아니어서인지 시에 대한 기억은 없다. 10년도 전에 문학 교과서에서 처음 그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 나는 시의 제목만큼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해 냈다. 두꺼운 코트를 걸친 시인의 모습도 어렴풋했다.

 

선생은 전남 고흥 출신이다. 순천사범학교(순천대)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겨레 고유의 정서를 친근한 리듬에 실어 노래한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이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 세계를 ‘판소리의 맺고 풀림과 같이 한을 승화시키는 상승의 미학’으로 풀기도 한다.

 

편하게 서정시인으로 불리지만 선생은 역사와 현실에 관한 관심도 잃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리산 빨치산들을 다룬 연작시집 <빨치산>과 제주 4·3의 아픔을 노래한 서사시집 <신화를 삼킨 섬 흑룡만리>를 펴냈다는 것은 이번 부음 기사를 통해 처음 알았다.

 

선생은 금호문화재단 예술상, 전라남도문화상, 소월시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고향인 고흥군에서는 2015년부터 ‘송수권 시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데 제1회 대상 수상자는 강희근 시인(시집 <프란치스코의 아침>)이었다.

 

‘산문에 기대어’는 문학 교과서에 단골로 실릴뿐더러 모의고사에도 자주 출제되는 시다. 이 시의 서정성과 울림이 남다른 까닭일 터이다. 그런데 교사들은 하나같이 정작 시가 어려운 것은 아닌데 아이들에게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누이를 여읜 시적 화자는 누이의 한을 노래하면서 누이와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고 확신한다. 그것은 누이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형상화되는데 가을 산이 못에 비친 모습(‘그리메’)을 통해 거기서 연상되는 누이의 추억(‘눈썹’)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 송수권 시인이 펴낸 시집들. 그는 겨레 고유의 정서를 노래한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이은 시인이다.

대화의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이는 독백이다. 목적어를 반복적으로 나열하여 간절한 소망을 드러내지만, 이 시는 관념적 성격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전편에 걸친 시의 중심축은 비현실적인 상상이기 때문이다.

 

‘산다화’는 동백의 다른 이름인데 그것을 건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방해받지 않고 재회함’을 의미한다. 꽃을 건네는 것은 부활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인데 이는 불교의 윤회론에 바탕을 둔다. 산다화는 이 시에서 독특한 의미로 새롭게 형상화된 시어다.

 

1975년에 갓 스물 청년은 올에 회갑을 맞는데 그때, 서른다섯 늦은 나이로 등단한 시인은 마흔한 해의 시력(詩歷)을 뒤로 영면에 들었다.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 발인은 6일 오전 7시. 시인의 명복을 빈다.

 

 

2016. 4.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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