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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의 김종길 시인 타계

by 낮달2018 2020.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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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2017년 4월 1일

 

지난 1일, 원로시인이자 영문학자인 고려대 명예교수 김종길(1926~2017) 선생이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에 부인을 잃고 힘들어하다가 그예 뒤를 따랐다고 한다. 향년 91세. 내외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시어 유족들의 슬픔은 크겠지만 두 분은 인연이 남달랐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생의 본명은 김치규, 경북 안동 출신이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문’으로 입선하며 등단했다. 그는 “서양 이미지즘 시학을 받아들이면서도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고전적 품격을 지닌 시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은 시인이다.

 

나는 1980년대 초임 시절에 제4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그의 대표작 ‘성탄제’를 여고생들에게 가르쳤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아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첫 대단원에 실린 시 6편을 무려 열몇 시간 동안 가르치는 만용을 부리던 때였다.

 

다행히 ‘성탄제’는 평이한 시다. 복잡하지 않고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도 시의 흐름과 전언을 새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시에는 ‘붉은 산수유 열매’가 나오는데 산수유가 나는 어떤 나무인지를 전혀 모르면서 그 시를 가르쳤다. 그때만 해도 그걸 모르는 게 전혀 문제가 없다고 믿었던 시기였다.

 

산수유를 처음 만난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서다. 마흔을 넘기면서 주변의 사물에 관한 관심이 그 이전과 달라지면서 간신히 나는 산수유에 입문할 수 있었다. 산수유 열매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또 그로부터 몇 해가 더 지나서였다.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엉터리였을까.

 

‘성탄제’ 이전에 나는 그의 시 ‘춘니(春泥)’를 알고 있었다. 춘니는 말 그대로 ‘봄의 진흙’이라는 뜻이겠는데, 시에는 ‘니[진흙]’의 어감이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시에는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는 새봄의 활기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지고 있었다. ‘구두창’에 달라붙는 ‘진흙’과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는 바야흐로 언 땅이 녹기 시작하는 3월의 생생한 감각적 묘사다.

 

1955년에 발표한 시를 표제로 한 시집 <성탄제>를 낸 것은 1969년이었다. ‘성탄제’는 크리스마스 무렵, 도시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화자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사람과 그리움을 노래한 시다. 여자아이들은 공연히 어렵게 설명하는 풋내기 교사보다 훨씬 쉽게 시의 흐름을 이해해 주었다.

 

‘성탄제’ 외에 널리 알려진 시로는 ‘설날 아침에’와 ‘고갯길’ 같은 시들이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렸다. ‘설날 아침에’는 평이한 언어와 직설적 표현으로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활의 자세’를 노래한 시다.

 

이후 저서로 <하회에서>(1977)와 <황사현상>(1986), <천지현황>(1991), <달맞이꽃>(1998),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 <해거름 이삭줍기>(2008), <그것들>(2011) 등의 시집과 함께 시론집 <진실과 언어>(1974), '시에 대하여'(1986) 등이 있다.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장과 한국T.S.엘리어트학회장을 지내며 연구 활동에도 매진했다. 2004∼2007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을 지냈고 목월문학상, 청마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국민훈장 동백장과 은관문화훈장(1998)을 받았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4일 오전 8시 30분에 치러지며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모든 부음이 한 세계의 소멸을 알리는 것이지만 시인의 부음은 그가 언어로 그렸던 또 다른 세계의 소멸까지 포괄하는지 모른다. 시인의 영면을 빈다.

 

 

2017. 4.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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