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톺아보기 ⑪] 해평면 낙산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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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면 낙산리 837-4번지 소재 낙산리 삼층석탑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676~935)의 전형적인 3층 석조 불탑이다. 구미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탑은 도리사 석탑과 함께 이 낙산리 탑, 둘뿐이다.(죽장리 오층석탑은 국보) 높이는 7.15m로 탑의 규모로는 작지는 않다. 탑은 낙산리 고분군(사적 제 336호)의 동남쪽의 낙산1리 마을회관의 남쪽 논 가운데 있다.
주변에는 석탑을 빼면 다른 유구(遺構 :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 따위를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잔존물)가 없다. 그러나 경작지에서 연꽃무늬가 새겨진 막새기와[와당(瓦當)]를 비롯하여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는 절터다. 현재 석탑은 일부 석재가 없어지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 돌탑이 왜 거기 서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역 주민들도 천년도 넘은 탑인데, 어떻게 알겠냐고 되묻는다. 어떤 절집이 있었는지 등 탑과 관련된 어떤 사실도 전해지는 게 없다. 그러나, 규모가 작지 않은데도 탑은 단아한 기품을 갖추었다. 모나지 않은 돌 부재들이 어우러져 선사하는 인상도 너그럽고 부드럽다. 그게 이 탑의 덕인지 모른다.
선산은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파되었을 때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아도(阿道)화상이 신라에 들어와 몰래 전법을 행한 곳이 선산인데, <삼국유사> 신라본기 제4권에 ‘신라불교의 기초를 닦았다(阿道基羅)’고 기록하고 있다. 인근 송곡리 태조산(太祖山) 도리사(桃李寺)가 아도가 창건한 사찰인데, 지역에서 이를 신라불교 초전(初傳) 법륜지(法輪地)라 하여 기린다.
낙산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인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아래층 기단 가운데 돌에 모서리 기둥[우주(隅柱)] 2개와 가운데 기둥[탱주(撑柱)] 3개, 즉 한 면에 5개의 기둥이 새겨져 있다. 위층 기단 가운데 돌에는 모서리 기둥 2개와 가운데 기둥 2개가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남쪽에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감실(龕室)]이 설치되어 있고, 방 입구에는 문을 달았던 동그란 구멍이 남아 있다. 지붕돌[옥개석(屋蓋石)]은 아래 받침과 지붕 추녀, 윗면 층단 모두 전탑(塼塔)의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머리 장식을 받치던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이 탑의 아래층 기단에 가운데 기둥을 3개나 새긴 것은 초기적인 양식이라 할 수 있는데, 몸돌과 지붕돌의 구성 방법은 다소 시대가 떨어지는 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양식은 선산 죽장리 오층석탑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일종의 모전(模塼)석탑(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쌓아올린 탑) 계열에 속하는 유형이다. 돌의 구성과 기단부의 구조와 각 부를 짠 수법으로 보아 탑의 건립 시기는 8세기경인 통일신라 전기로 추정한다.
이 탑을 처음 찾은 때가 2007년이었다. 처음으로 장만한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로 안동 지역의 탑을 찍으러 다니다가, 필요해서 고향에 다녀가는 길에 일부러 선산으로 와서 이 탑과 죽장리 오층석탑을 찍어간 것이다. 2월, 봄방학 때였다.
두 번째는 구미로 전입한 이듬해인 2013년이다. 그리고 퇴직하던 2016년에 한 번 더 다녀갔다. 세 번 다 2월이다. 이유는 짐작하듯 봄방학 때, 그중 여유가 있을 때라서다. 그래서 탑의 배경은 모두 잿빛이고, 좀 스산하다. 이 봄에 한 번 더 탑을 찾을까 했으나, 결국은 못 가고 말았다.
2022. 5. 21. 낮달
[선산 톺아보기 프롤로그] 왜 ‘구미’ 대신 ‘선산’인가
[선산 톺아보기 ①] 선산 봉한리 삼강정려(三綱旌閭)
[선산 톺아보기 ②] 형곡동 향랑 노래비와 열녀비
[선산 톺아보기 ③] 선산 신기리 송당 박영과 송당정사
[선산 톺아보기 ⑤] 봉곡동 ‘의우총(義牛塚)’ 빗돌과 산동면 인덕리 의우총
[선산 톺아보기 ⑥] 선산읍 원리 금오서원
[선산 톺아보기 ⑦] 구포동 구미 척화비
[선산 톺아보기 ⑧] 진평동 인동입석(仁同立石) 출포암과 괘혜암
[선산 톺아보기 ⑨] 오태동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선산 톺아보기 ⑩] 지산동의 3대 자선, ‘박동보 구황비’와 계선각(繼善閣)
[선산 톺아보기 ⑫] 선산읍 죽장리 오층석탑
[선산 톺아보기 ⑬] 태조산(太祖山) 도리사(桃李寺)
[선산 톺아보기 ⑭] 청화산 주륵사지(朱勒寺址) 폐탑(廢塔)
[선산 톺아보기 ⑮]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선산 톺아보기 ⑯] 해평면 낙산리 의구총(義狗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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