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청화산 중턱 폐사지, 무너진 불탑은 복원될 수 있을까

by 낮달2018 2022. 8. 12.
728x90

[선산 톺아보기 ⑭] 청화산 주륵사지(朱勒寺址) 폐탑(廢塔)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청화산 주륵사지의 폐탑. 기단과 석탑의 부재들이 흩어져 있다. 현재 복원 여부를 판단할 조사용역 중이다.
▲ 주륵사지 폐탑의 기단과 부재들. 하층 기단의 너비가 358㎝이니 이 탑은 석가탑에 견주는 큰 탑이라고 추정한다,

경북 문화재자료 주륵사지 폐탑을 찾아서


선산에 문화재로 등록된 불탑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죽장리 오층석탑(국보)과 낙산리 삼층석탑·도리사 석탑(이상 보물), 그리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주륵사지 폐탑’이 있다. 주륵사지(朱勒寺址)는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 산 123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 주륵사의 절터고, 그 절터에 석탑재(石塔材)와 초석(礎石)만 남은 탑이 주륵사지 폐탑이다.

 

주륵사에 대한 문헌 기록은 소략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주륵사는 냉산(冷山) 서쪽에 있다. 고려 때 안진(安震)이 지은 승(僧) 혜각(慧覺)의 비명(碑銘)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 충렬왕 21년(1295)에 세워진 군위 인각사의 ‘보각국사정조탑비(普覺國師靜照塔碑)’에 “종지(宗旨:선종의 교의와 취지)의 천양(闡揚:드러내어 밝혀서 널리 퍼지게 함)을 도운 모든 스님”이라며 열거한 이름 가운데 ‘대선사(大禪師) 주륵사 영이(永怡)’가 있다.

 

대선사는 고려·조선시대 선종 승려에게 공식적으로 제수되는 최고의 승계(僧階)로 왕사(王師)와 국사(國師)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법계다. 따라서 대선사가 주석(駐錫: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을 이르는 말)한 가람이니 절대 작은 절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보각국사정조탑비의 비문. 여기 '주륵사 영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 태종 18년(1418)의 기록에 “경상도 선산 주륵사의 주산(主山)에 물이 솟아 모래가 무너져 절을 덮쳐서 돌에 눌려 죽은 자가 중 두 사람이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려 충렬왕 21년부터 조선 태종 18년 사이(1295~1418) 주륵사는 정상적으로 운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1618년 최현이 편찬한 선산 읍지인 <일선지>. 주륵사 폐사 관련 기록이 있다.

주륵사 폐사와 관련된 기록은 선산 읍지인 <일선지(一善誌)>에 “주륵사는 백마산 아래 있으며, 고려 안진이 지은 승 혜각의 비명이 있다. 부사 이길배가 남관(南館:남쪽의 객사)을 지을 때, 기와를 헐어 거두어서 폐허가 되어 지금은 터만 남았다”라고 하였다.

 

대선사가 주석한 사찰, 15세기 중반엔 폐사한 주륵사

 

자세한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선산 도호부 ‘궁실조(宮室條)’ 남관(南館)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인즉슨, 부사 이길배가 선산 도호부의 객사를 수리할 때 “폐사(廢寺)의 재목과 기와로 새로 짓기를 청원하였고, 감사 홍여방 공이 임금께 아뢰어 그 허락을 받았다”라는 것이다.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하던 조선시대라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때가 1492년(성종 23)이니, 이미 주륵사는 그보다 앞서 늦어도 15세기 중반에는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500년이 훌쩍 지났으니 주륵사지에 남은 것은 무너진 탑뿐이다. 이 허물어진 탑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것은 1994년 9월이다.

▲ 폐탑지 입구. 왼쪽 계곡을 건너 100m쯤 산비탈을 오르면 주륵사지에 닿는다.
▲ 주륵사지로 오르는 나무 계단길. 길이 끝나는 곳에 주륵사지와 폐탑이 있다.

주륵사지 폐탑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폐탑을 둘러보러 주륵사지로 떠난 것은 지난 7월 30일이었다. 더위를 피해 8시쯤 청화산 어귀에 다다랐을 때 햇볕은 이미 어깨 위로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길가에 차를 대고 산으로 오를 때만 해도 500m라면 금방이라고 여겼었다.

 

석가탑 못잖은 수작으로 평가하는 탑, 과연 복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청화산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올라 계곡을 가로지른 상주 영천 고속도로를 지나도 주륵사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15분쯤 뒤에야 가물로 말라버린 계곡 오른쪽에 주륵사지 이정표를 만날 수 있었다. 계곡을 건너 100m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자, 테니스장만 한 평지가 나타났다.

 

철제 울타리를 친 직사각형의 기단에 대형 석재가 쌓여 있고, 산비탈 쪽으로 탑의 지붕돌 몇 개가 흩어져 있는데, 주변에 말뚝을 박고 줄로 둘러놓았다. 크고 작은 석탑재도 천년쯤 묵은 돌이라기보다는 마치 콘크리트 같은 질감이어서 입구에 세운 안내판이 없다면 무심히 지나갈 수도 있을 듯했다.

▲주륵사지 폐탑의 지붕돌들. 울타리를 쳐 놓았다. 지붕돌의 추녀 너비는 제1 지붕돌이 236㎝에 이른다.
▲ 축대로 오르는 계단으로 보이는 석재가 흙에 파묻혀 있다.
▲주륵사지에는 석재를 이용하여 높이 2~4m로 쌓은 축대가 약 50m 정도가 남아 있고, 신라시대의 연화문 와당이 출토되었다.
▲ 보호 중인 폐탑의 기단을 비롯한 각종 부재. 현재 조사용역이 완료되었다.
▲ 1차 주륵사 폐탑 주변 발굴조사 당시의 전경(2015년)
▲ 1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 연화문 와당이 보인다.(2016년)

주륵사지에는 길이 50~60cm의 석재를 이용하여 높이 2~4m로 쌓은 축대가 약 50m 정도가 남아 있으며, 신라시대의 연화문 와당(瓦當)이 출토되었다. 주변에는 석탑 조각과 건축 기단 돌조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다항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이 탑신을 깨 상석을 만들었고, 직사각형의 석상(石床)을 10여 기 다듬어 놓았다고 한다. 사역 내에는 선산김씨 문중 묘소 5기가 있으며 각 묘 앞에 석상이 배치되었는데, 이들도 석질이나 위치로 보아서 주륵사의 탑재와 기단석을 사용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석탑의 전체 규모는 부재들이 많이 없어지고 땅속에 묻혀서 알 수 없다. 땅 위에 드러난 부재로 미루어 보면, 2층 기단 위에 탑신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층 기단은 너비 358㎝이고, 상층 기단 면석(面石)의 높이는 117㎝, 면석에는 우주(隅柱:모서리 기둥)와 탱주(撐柱:안 기둥)를 새겼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완만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의 추녀 너비는 제1 지붕돌이 236㎝, 제2 지붕돌이 204㎝, 제3 지붕돌이 175㎝이며, 5단 지붕 받침의 최하 너비도 제1 지붕돌이 144㎝, 제2 지붕돌이 124㎝, 제3 지붕돌이 107㎝로서 매우 큰 탑에 속한다.

▲주륵사지 폐탑의 지붕돌들. 폐탑은 삼층 내지 오층으로 추정한다. 지붕받침은 5단이다.
▲ 폐탑의 기단과 각종 부재들. 일부는 조사 용역 회사에서 가져간 듯하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부재들의 크기가 웅장하여 불국사 석가탑 못지않은 대규모의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폐탑은 삼층석탑 또는 오층석탑일 것으로 본다. 모든 양식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이고 조성 연대는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당대의 수작(秀作)으로 평가한다.

 

현재 구미시의 발주로 주륵사 폐탑 보존과학적 조사 용역(2022.3.28.~2022.8.4.)이 시행 중이다. 이 용역은 주륵사지 폐탑의 정비·복원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한 것이니 조만간 조사 결과에 따라 복원 공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뙤약볕 속에 폐허 같은 폐사지에 흩어진 탑의 부재들을 바라보면서 같은 자리에 주륵사지 탑이 폐탑이 아닌 삼층(오층) 석탑으로 복원한 광경을 그려보았다. 만약 그 탑이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선다면, 이 외진 골짜기는 천년도 전의 가람, 주륵사의 역사와 영화를 환기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2022. 8. 12. 낮달

 

[선산 톺아보기 프롤로그] 구미대신 선산인가

[선산 톺아보기 ①] 선산 봉한리 삼강정려(三綱旌閭)

[선산 톺아보기 ②] 형곡동 향랑 노래비와 열녀비

[선산 톺아보기 ③] 선산 신기리 송당 박영과 송당정사

[선산 톺아보기 ④] 옥성면 옥관리 복우산 대둔사(大芚寺)

[선산 톺아보기 ⑤] 봉곡동 의우총(義牛塚)’ 빗돌과 산동면 인덕리 의우총

[선산 톺아보기 ⑥] 선산읍 원리 금오서원

[선산 톺아보기 ⑦] 구포동 구미 척화비

[선산 톺아보기 ⑧] 진평동 인동입석(仁同立石) 출포암과 괘혜암

[선산 톺아보기 ⑨] 오태동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선산 톺아보기 ⑩] 지산동의 3대 자선, ‘박동보 구황비와 계선각(繼善閣)

[선산 톺아보기 ⑪] 해평면 낙산리 삼층석탑

[선산 톺아보기 ⑫] 선산읍 죽장리 오층석탑

[선산 톺아보기 ⑬] 태조산(太祖山) 도리사(桃李寺)

[선산 톺아보기 ⑮]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선산 톺아보기 ⑯] 해평면 낙산리 의구총(義狗塚)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