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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02

지금, ‘익어가는 것들’과 ‘얼어붙고 있는 평화’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다시 6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 돋아난 열매가 조금씩 형상을 갖추어가더니 어느새 몰라보게 튼실해졌다. 앵두와 호두, 사과와 석류, 모과, 살구 등이 그렇고, 오디와 포도도 몸을 추슬러 그 물결을 뒤따랐다. 감은 이제 겨우 꽃이 피었다가 지고 있다. 2023년 여름, 익어가는 것들 해마다 무심히 지나쳤던 앵두 열매를 바라보며, 그걸 ‘단순호치(丹脣皓齒:붉은 입술과 하얀 이)’라고 비유한 선인들의 안목을 환기하게 된다. 간밤에 내린 빗물에 씻긴 앵두의 윤이 나는 붉은빛은 매우 고혹적이다. ‘앵두 같은 입술’이니, 그 나무가 선 우물가에 ‘동네 처녀’가 바람나서 ‘단봇짐’을 쌌다는 대중가요가 전하는 19.. 2023. 5. 30.
집안의 고서 몇 권 …, 거기 남은 선친의 자취 인쇄본과 필사본 고서 몇 권, 그리고 아버지 베란다에 둔 내 서가의 맨 위 칸에 꽂아 놓은 묵은 ‘고서(古書)’을 꺼냈다. 1990년대 중반, 시골집을 팔고 어머니를 모셔 오면서 함께 꾸려온, 집안에 전해져 온 옛 책들이다. 가져와서 얼마나 오래된 책인가 싶어 한 번 훑어보고서 나는 얌전히 그걸 손이 닿지 않는 맨 위 칸에 들여놓아 버렸었다. 집안에 전해 온 고서 몇 권을 꺼내보다 고서엔 문외한이지만, 책들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었고, 이른바 ‘희귀본’일 가능성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사할 때마다 따로 묶어서 옮겨왔지만, 뒤적여 볼 일이 없을뿐더러 책의 키가 커서 제일 높은 칸에 ‘짱박아 놓은’ 것이었다. 창문에 가까운 쪽을 선택한 것은 혹시 습기 차 상할까 저어해서였다. 20년도 넘게 흘렀는데, .. 2023. 5. 24.
‘4·19혁명’과 ‘동학농민혁명’의 ‘기록물’,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유네스코,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결정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우리나라의 17·18번째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이 되었다. 지난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5.10.~5.24., Executive Board)에서 ‘4·19혁명 기록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4·19혁명 기록물’은 1960년 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1,019점의 기록물이고,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1895년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185점의 기록물이다. 이 두 기.. 2023. 5. 22.
아버지, ‘서서 자는 말’ 혹은 ‘구부러진 못’ 아버지, ‘일가의 생계를 짐 지고 살아가는 ‘가장’ ‘어버이날’이다. 이날이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바뀐 게 1973년부터라고 하는데 나는 그즈음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내 기억 속에 여전히 5월 8일은 ‘어머니날’일 뿐이니 거기 굳이 ‘아버지’를 끼워 넣을 일은 없는 것이다. 그 시절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비길 수 없을 만큼 ‘지엄’한 존재였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말 그대로 ‘가부장’의 지위와 권한을 제대로 누린 사람들이었다. 굳이 그들을 기리는 날을 정하는 것은 일종의 사족이거나 ‘불경(不敬)’에 가까울 만큼. 아파트 베란다에서 명멸하는 담뱃불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가장에게는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외롭고 고단한 가장의 삶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머니와는 또 다른 애.. 2023. 5. 9.
[4·19혁명 59돌] 미완의 혁명과 ‘노래’들 2019년(4·19혁명 59돌) 혁명의 노래들 4·19 혁명 쉰아홉 돌을 맞는다. 한국전쟁의 상처도 채 아물지 못한 1960년 벽두에 들불처럼 타오른 청년 학생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분노는 독재자 이승만의 노욕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민주 정부를 세워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분출하는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결국, 4월혁명은 5·16 군사쿠데타로 무너지면서 ‘미완의 혁명’이 되었다.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이 혁명의 성과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군사독재가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으로 산업화·근대화를 이끌었다고 해서 사월혁명의 역사적 의의가 퇴색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젊은이.. 2023. 4. 19.
다시……, ‘4·16 세월호 참사’ 여섯 돌이 온다 4·16 어머니들이 지은 ‘컵 받침’을 받고 어저께 4·16재단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책자인 듯해 뜯어보니 다. 나한텐 안 보내줘도 괜찮은데, 중얼거리며 꺼냈더니, 손바닥만 한 비닐로 포장한 손수건 같은 게 나왔다. “4·16공방에서 세월호 엄마들이 정성껏 만든 컵받침”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때는 2014년이었다. 역 광장에서 촛불이 켜지고, 그해 4월은 아프고 더디게 흘렀다. 날마다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끝내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아이들 곁에 가 보지 못했다. 부지런한 이웃들은 멀다 하지 않고 팽목항과 안산을 다녀왔지만 나는 고작 서울광장과 우리 지역의 분향소를 찾은 게 다였다. 그리고 이태 후에 나는 학교를 떠났다. 그해 가을 백만 촛불에 참여한 다음 날, 나는 안산을.. 2023. 4. 16.
급식 총파업 … 고교생의 ‘응원과 공감’의 대자보 총파업 급식 노동자에게 고교생, 공감과 응원의 대자보 지원 지난 31일 에서 “‘학교서 배운 건 공감과 연대…급식 총파업 응원’ 대자보 붙인 고등학생”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31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의 한 고등학교에 파업 노동자를 응원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는 기사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체계 개편과 급식실 노동자 폐암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하루 총파업에 들어간 뒤다. 고교생의 급식 노동자 응원 대자보 기사로 미루어 추정해 보면, 급식노동자들이 먼저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는 대자보를 붙였던 모양이다. 이 학교에 다니는 3학년 학생 2명이 작성해 붙인 대자보에 나오는 ‘대자보’는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대자보 전문은 아래와 같다. 학교 급식 조리 종사자님들을 비롯한 .. 2023. 4. 3.
살구 이야기 - 살구꽃, ‘행림(杏林)’과 ‘행화촌(杏花村)’ 살구꽃의 계절, ‘행림(杏林)’과 ‘행화촌(杏花村)’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살구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동네 산책길을 다니면서다. 그해 4월, 박근혜가 파면을 선고받아 구속, 수감되고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뭍으로 돌아온 4월에 동네에는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나는 거기 겨워서 ‘살구꽃, 혹은 성찰하는 공민의 봄’이라는 좀 달착지근한 글을 썼다. [관련 글 : 살구꽃, 혹은 성찰하는 공민의 봄] 매화가 지고 있었는데, 이웃 동네 골목길에서 상기도 화사하게 남은 매화를 만났다. 그런데, 당연히 매화라고 여겼던 꽃이 살구였다. 그러고 보니, 내겐 살구꽃에 관한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같은 벚나무 속 장미과.. 2023. 3. 21.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➇] 재벌 그룹의 ‘문화 자산’, 공공 차원 누리기 삼성문화재단의 리움미술관 관람(2022.5.6.)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특별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순례하는 소양과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국립미술관을 두 군데를 굳이 찾은 것은 풍광 좋은 공원으로 나들이하는 것처럼 예술과 역사 탐방도 숨 쉬듯 가까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삼성의 리움, 정상급 사립미술관 이런 곳을 빼놓지 않고 섭렵한 벗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리움미술관을 서울 나들이 때 들러야 할 목록에 진작에 올려놓았었다. 마땅한 기회를 엿보다가 아들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리움미술관을 찾은 것은 지난해 5월 6일이다. 아들은 전날 들른 강화도와 다음날의 국립수목원 사이에 리움미술관을 예약해 두었다. 리움(L.. 2023. 2. 24.
다가오는 ‘봄 기척’을 엿보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격년으로 하는 10월의 건강 검진 결과를 나는 내 ‘건강 이력’의 위기로 받아들였다. 여러 지표는 그 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공복혈당장애를 의심하게 한 혈당 수치가 문제였다. ‘100mg/dl 이하’라야 하는 공복 혈당 수치가 100을 상회한 것이었다. 단골 병원의 담당 의사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과일 등 당류의 섭취를 줄이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매일 걷기를 시작했다. 한 달이나 운동을 늦춘 것은 그간 무릎이 아파서 운동을 시작할 엄두를 못 내서였다. 12월 한 달 중 다른 일로 빼먹은 날은 나흘뿐이었고 1월엔 설날이 끼어 있었지만 빼먹은 날이 사흘에 그쳤다. 실외 활동이 어려운 날은 집에서 자전거를 한.. 2023. 2. 23.
아직 멀리 있는 ‘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오늘이 입춘이니 봄은 지척에 와 있다. 예년과 달리 올겨울이 유난히 길다고 느끼는 까닭은 추위가 꽤 오래 이어져서인 듯하다. 하마나 하고 기다리지만, 영하의 수은주 눈금은 오르는 듯하다 다시 꼴깍 주저앉아 버리곤 한다. 게다가 이른바 ‘난방비 폭탄’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더 을씨년스러워졌으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북봉산 아래의 우리 동네는 겨울의 칼바람이 유명하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필로티 구조인 아파트 1층으로 몰아치면 절로 정신이 번쩍 든다. 그건 한여름의 선선함으로 상쇄하기 어려울 만큼 매섭다. 그러나 나는 우리 동네의 겨울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난히 추운 동네여서 꽃소식도 좀 늦다. 시내에는 .. 2023. 2. 4.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왕도는 없다’ 일본의 사도(佐渡)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과 강제동원 문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 강행 지난해(2022) 2월,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사도(佐渡)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강행했다. 그러나 추천서에 미흡한 부분이 있어 유네스코의 심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등재는 실패했다. 유네스코는 사도광산을 구성하는 유적 중 하나인 니시미카와(西三川) 사금산에서 과거에 사금을 채취할 때 사용된 도수로(導水路 물을 끌어들이는 길) 중 끊겨 있는 부분에 관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도수로에 대한 설명을 충실히 담아 이번 다시 잠정 추천서를 제출했다. 그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놓고 한일 정부는 각각 전담 조직(TF)을 만들어 대응하는 등 첨예하게 맞서왔다. 우리 .. 2023.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