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갤러리 카페의 <조영옥 드로잉전>- 쉼 없는 발걸음이 부럽다

by 낮달2018 2019. 4. 29.
728x90
SMALL

조영옥 드로잉전 <펜 하나로 일상을 그리다>

▲ 조영옥 전시회는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에서 열렸다 . 10 월  29 일까지 .

인근 상주에서 조영옥 선배가 드로잉(drawing)전을 열고 있다. 지지난해 함창읍의 카페 버스정류장에서 전시(2016.10.6.)를 한 지 꽉 찬 2년 만이다. [관련 글 : 가을 나들이 - 그림, 책, 사람을 만나다] 지난여름 내 친구 박용진의 드로잉전에 이어지는 전시다. [관련 글 : 시골 화가의 드로잉으로 세상 바라보기]

 

물론 장소는 같은 곳,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에서다. 박용진 드로잉전에 이어 <오마이뉴스> 블로거 ‘선돌’ 이 선생의 전시회(여긴 가 보지 못했다.)가 있었고, 이번이 그다음 전시인 것이다. 지난 금요일(10.5.) 오후에 이 전시는 문을 열었다. [관련 글 :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의 미래가 궁금하다]

 

뒤늦은 태풍 때문에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시외버스로 상주에 가 터미널에서 친구 박용진을 만나서 곧장 카페로 갔다. 연악산으로 오르는 산길 옆, 시내를 끼고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는 익숙한 모습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조영옥 선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가족들, 상주의 후배 교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카페 주인장 안인기 화백이 슬그머니 다가와 선물이라며 내게 웬 꾸러미를 건넸다. 그는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자신의 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 가족들과 함께 선 조영옥 작가. 부군, 딸과 사위, 손주들이 모두 모였다.

잠시 후 약식으로 열린 개막 의례에서 나는 자진하여 축하의 인사를 했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조영옥 선생이 낸 4권의 시집과 스케치와 글모음을, 내가 지켜본 그의 삶과 지칠 줄 모르는 발걸음을 이야기했다.

 

책을 내는 일을 좀 삐딱하게 바라보는 편이지만, 지난해 조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이런 형식의 출판이라면 그걸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는 요즘 말로 무슨 ‘스펙’을 더하거나, 주변에 자신을 과시하고자 책을 내는 게 전혀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의 지치지 않는 삶과 발걸음

 

책을 내는 것이 그에게는 책을 낼 만큼의 시(혹을 하고 싶은 말이)가 쌓였기 때문이고, 그걸 책으로 묶으면서 자기 시작(詩作)의 아퀴를 한 번 짓는 일이었던 듯하다. 나 같으면 이리저리 견주다가 주저앉고 말 일을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해치우고 다시 새롭게 발을 내디디곤 하는 것이다.

 

그는 주어진 일을 사양하는 법이 없다. 세상의 어떤 어려운 일도 그의 앞에 와, ‘해 보지, 뭐’ 하면서 툭 던지곤 하는 그의 말투 앞에서 손쉬워지곤 한다. 그건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성정이 이루어내는 결단이었을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고음의 목소리가 불편할 법도 한데, 무리 없이 다가오는 것은 그가 자기 짐을 내게 떠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날에, 복직 동지들에게 조 선생의 드로잉전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그 끄트머리에 나는 “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본이 됩니다.”라고 썼다. 의례적인 수사라고 여길지 몰라도 아는 사람은 그게 수사가 아님을 알 터이다.

▲ 그의 그림에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나는 가끔 그가 아직도 세계 일주 중이지 않은가 하는 농을 할 만큼 그는 종횡무진 나라 밖 여행을 다니곤 한다. 그게 생활이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워서라는 것도 아는 사람은 안다. 모르긴 해도 그런 여행의 기억들이 그의 펜 끝에서 드로잉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펜 끝에서 재현된 여행의 기억들

 

몽골과 부탄,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쿠바여행, 그리고 인천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순례길을 따라간 그의 자취는 그대로 그림으로 남았다. 상주시 외서면의 정미소, 남해 지족항 갯벌에서 일하는 어민, 상주 백원장(場) 주변도 그의 붓끝에서 새롭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며 그림을 돌아본 손들은 이내 아는 얼굴들과 만나 앉아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디서나 그렇듯 그림도 좋지만, 사람이 더 좋은 법이다. 가을밤 어둠을 흔들며 밤비는 쉬지 않고 내렸고, 모임은 9시에 못미처 끝났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벗들과 노느라 상주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다시 시외버스를 탔다.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지만, 조영옥 선생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나는 그의 거침없는 걸음을 바라보면서 늘 지지부진하기만 내 삶의 보폭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  안인기 화백의 선물 .  먹감나무로 만든 몸통의 결과 오묘한 빛깔이 생생하다 .

사족 하나, 카페 주인장 안인기 화백이 내게 준 선물꾸러미는 그가 손수 나무로 다듬어 맞춘 만년필이었다. 먹감나무를 갈아서 그는 만년필의 몸통을 만들었다. 세상에! 살아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나무의 결과 오묘한 빛깔을 보면서 딸애는 탄성을 질렀다. 그와 카페 글을 썼다고 주는 선물인데, 아마 이 만년필은 내가 받은 선물 목록에 가장 윗길에 오를 터이다.

 

 

2018. 10. 9. 낮달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