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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의 미래가 궁금하다

by 낮달2018 2019.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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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연악산 기슭의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

▲ 철제 기둥에 걸어놓은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 간판. 이 역시 주인장의 솜씨다 . ⓒ 안인기
▲주인장은 돈이 될까 안될까 고민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별 고민 없이 카페를 열었다고 했다 .

전시공간을 두어 ‘갤러리 카페’라 불리는 ‘포플러나무 아래’는 경북 상주시 지천1길 130번지에 있다. ‘포플러나무 아래’는 상주시 청리면으로 벋은 연악산(淵岳山, 706.8m)이 품고 있는 신라 시대의 고찰 용흥사(龍興寺)와 고려 시대 절집인 갑장사(甲長寺)로 오르는 길 오른쪽에 자리 잡았다. 

▲갑장사 법당 앞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다 .
▲갑장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연악산. 연악산은 갑장사뿐 아니라, 신라 시대 고찰 용흥사도 품고 있다 .

서른 평쯤 되는 카페는 2층이지만 1층이 언덕 아래 가려져 있어 호젓한 단층 건물처럼 보인다. 올 2월에 명예퇴직하고 이 카페를 연 주인장은 안인기 화백(56)이다. 그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나와 상주와 인근 시군의 중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쳐 왔다. 

초기에는 평면작업을 했으나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생긴 폐품이나 잡동사니를 소재로 제작하는 정크아트(Junk Art)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인근에 작업실을 두고 폐농기구 부품과 돌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카페 마당에 세워놓은 철 구조물이나 카페를 장식하고 있는 가구 따위도 모두 그가 재활용한 것들이다. 

▲ 주인장 안인기 작가의 정크아트 작품 '소(笑)' 연작

포털 네이버에 열고 있는 블로그 ‘포플러나무 아래’에 그는 자신을 ‘아무거또 안인기’로 쓰고 있다. 이름 ‘안인기’가 경상도 사투리로 ‘아닌 기(것)’로 들리기 때문에 그 이름을 지니고 살면서 적잖이 받은 놀림을 그런 식으로 푼 듯하다.

카페 안으로 들면 방문객을 맞는 것은 전시공간이다. 널찍한 대도시의 화랑에 비기면 좀 옹색한 공간이지만, 지금 열고 있는 ‘박용진 드로잉전’처럼 규격이 그만그만한 작품을 내거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정도다. 

▲ 카페 내부는 전시공간이 반 , 나머지가 휴식공간이다 .내부 집기는 거의 주인장 솜씨로 만들었다 .
▲ 영업허가가 나지 않는 카페는 이용자가 실비로 스스로 커피나 차를 타 먹는 구조로 되어 있다 .

오전 10시부터 문을 열지만, 방문객들은 카페를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좀 당황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카페 안의 집기에 눈이 익으면서 빈 셀프바를 지키는 게 원두커피 내리는 기계와 정수기, 얼음제조기고, 여러 종류의 인스턴트 차가 빽빽한 것을 보면서 느긋해질 수 있을 것이다. 

‘셀프바’라 했지만 물론 술을 팔지는 않는다. 대신 2천 원의 이용료를 통에 넣고 입맛대로 차를 골라 마실 수 있다. 컵에다 얼음을 조금 담고 물을 부어 에스프레소를 받으면 아메리카노가 되는 식이다. 물론 아무도 없을 때 거저먹고 갈 수도 있고, 잔돈이 없으면 혼자서 머릿속에 외상을 긋고 갈 수도 있다.

“수익금은 갤러리 운영에 사용됩니다.”라거나 “거스름돈이 없으면 외상으로……” 따위의 안내는 굳이 읽지 않아도 좋다.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면서 실내를 둘러보면 저절로 이 호젓한 카페가 돌아가는 메커니즘 정도는 저절로 깨쳐지기 때문이다. 

▲ 카페 한쪽에는 피아노도 놓였다 . 비록 넓지는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갤러리 카페다 .
▲ 현재 전시 중인 박용진 작가와 주인장 안인기 작가(왼쪽). 한 달 후 카페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까 .
▲ 셀프바 위쪽의 작품 전시 계획에 따르면 내년 11 월까지 전시가 꽉 차 있다 .

주인장 안인기 작가에게 적자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운영한 지 아직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손님은 드문드문 드나들었다. 거의 종일 에어컨을 틀어놓고, 드나드는 사람이 찻값으로 내는 돈으로 운영한다? 그게 어쩐지 못 미더워서다. 

 

“돈이 되지는 않겠지만 망할 걱정도 없다는 장점도 있지요. 글쎄, 앞으로 어떨지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는 적자는 아닙니다. 대충 들어간 돈과 들어오는 돈이 얼추 맞아떨어지네요. 하하하.”

 

▲ 안인기 화백

카페 건물은 그가 퇴임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매입했다. 건물주는 카페에 영업허가나 나지 않자 건물을 팔려고 내놓았고 인근 작업실을 눈여겨보던 그는 망설이지 않고 이 집을 샀다. 아래층은 곧 이사를 와서 살림집으로 쓰면 되고, 위층은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여긴 거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과단성 있게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을 주변 사람들은 안 작가의 추진력으로 설명한다. 워낙 부지런한 데다가 재주가 많고,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는 힘이 여느 사람과 다르다고 이웃들은 입을 모으는 이유다.

그가 아무리 미술 교사를 지낸 작가고 지역 문화에 각별한 관심이 크다고 할지언정, 돈 안 되는 일에 수억의 돈을 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그는 그걸 해냈고, 지금 카페의 전시 계획은 내년 11월까지 꽉 차 있다. 

상주는 한때 조선 초기 경상감영의 소재지였고,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된 유서 깊은 도시이다. 곶감, 명주, 쌀이 특산물로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했고, 자전거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인구가 급감한 것은 여느 시골 도회와 다르지 않다. 

조그만 도시인데도 유난히 문학을 비롯한 예술 동호회가 성한 지역이 또한 상주다. 그러나 정작 이들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나 시설은 형편없다. 상주문화회관에 전시공간이라는 게 지하에 있는 수준 미달의 공간이 고작일 정도다. 

 

그래서 전시회를 겸할 수 있는 카페를 열었다정말 그것밖에 이유가 없소?”
“제가 워낙 만들고 꾸미는 일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미술 작업을 하면서 돈이 될까 안될까 고민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게 돈이 안 되면 어떡하나 같은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지요.” 

 

그는 갤러리를 여는 게 자기 ‘작업의 확장’, 또는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동기나 과정, 결과에 대한 것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사에 낙관적이었다. 

 

“그렇다고 돈이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명퇴 전 제 목표가 ‘한 달에 100만 원 수입’이었는데 목표는 무난히 달성했으니까요.”

 

워낙 재주가 좋은 이여서 카페를 열면서 바닥의 에폭시 작업, 카페 안 탁자나 장식물 등을 전부 자기 손으로 해결했다. 그는 정크아트 작업을 하면서 용접을 기본으로 한다. 그는 인근에 쓰러진 고목을 얻어와 길쭉한 의자를 만들었고, 못 쓰게 된 재봉틀을 탁자 밑에다 넣어 활용했다. 종일 카페를 가득 채우는 음악은 쓰지 않는 오래된 휴대전화를 스피커에 연결해 해결했다. 

워낙 아이디어기 신선하다 보니 그가 만든 가구를 본 손님들로부터 같은 물건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가 냉방기 앞에 세워둔 소품 장식장은 그동안 7개나 주문을 받아 만들었다고 했다. 그만하면 그가 적자를 보지 않는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주말이어선지 손님은 계속해 이어졌다. 전시회를 찾는 이보다 우연히 지나다 들어와 너무 좋다고 탄성을 지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가 카페를 열었던 의미와 목적은 이미 충분히 충족된 듯 보였다. 

“앞으로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끊임없이 꾸며나갈 생각입니다. 저도 자신에게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3년 후에 이 공간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무더위가 가시기만 하면 이것저것 시작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이 가득해 잔뜩 설레고 있습니다.”


오후 네 시에 나는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를 떠났다. 다음 달에는 오마이뉴스 블로거였던 선돌 이 선생이, 그다음 달은 뒤늦게 그림 공부를 시작한 책까지 낸 선배 조 선생의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다. 불볕더위가 숙지면 곧 다시 이곳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달쯤 뒤에는 아마 ‘포플러나무 아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 듯하다. 주인장 안인기 작가의 바지런, 그의 도전과 실험이 이 카페를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고여 있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8. 8.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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