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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 초전리 ‘꽃 대궐’과 미성리 ‘그 여자’의 집

by 낮달2018 201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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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의성 초전리와 군위 미성리

▲ 복숭아밭의 만개한 분홍빛 복사꽃은 지면의 푸른 풀과 노란 민들레가 연출하는 대비로 더욱 화사해 보인다 .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1. 의성군 금성면 초전(草田)리 복사꽃과 모과꽃

 

의성에 들어가 사는 친구 장(張)을 찾으러 가는 길 주변은 꽃 천지였다. 이미 구미엔 대부분 지고 있는 꽃들이 군위에서 친구 이(李)를 태우고 의성으로 가는 길 주변 들과 숲에는 한창이었다. 복사꽃이 그랬고, 산벚꽃이 그랬다. 위도의 차이가 개화 시기를 결정한 탓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즐겨 불렀던 동요 ‘고향의 봄’을 흥얼거리고 싶게 만드는 풍경들이었다. 연변의 풍경들은 이 7·5조 운율의 노래에서 ‘울긋불긋 꽃 대궐’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 뜻을 가늠해 보지 않고 무심히 불러왔지만, 이원수가 ‘꽃 대궐’이라 쓴 이유가 거기 있음은 분명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핀 모양만이 아니라, 마을엔 ‘복숭아꽃 살구꽃’, 뒷산엔 ‘아기 진달래’가 어우러져 핀 모습이 마치 높다란 성벽 너머 대궐 같다는 표현이 곧 ‘꽃 대궐’이 아니던가 말이다. 꽃 대궐은 벗의 복숭아 과수원으로 가는 길 곳곳에 벌어 있었다.

해마다 복사꽃 철이면 잠깐이라도 벗을 찾았건만 그걸 기록한 것은 지난 2014년이 처음이었다. 도연명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은 그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향으로 ‘도원(桃園)’이 아니라 ‘도원(桃源)’이다. 4년 전에 벗의 과원을 찾았다가 쓴 글이 ‘벗의 도화원(桃花源), 그 연분홍 안개’ 가 된 까닭이다.

 

농사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벗이 의성 초전리의 야트막한 언덕바지에 깃들인 지 벌써 일곱 해가 넉넉하다. 그는 복숭아 농사를 지으면서 닭과 개를 기르고, 과수원 곳곳을 일구어 각종 푸성귀 등 ‘일용할 양식’을 가꾸었다. 그리고 집 주변 곳곳에 심은 꽃과 나무는 물론이고 그 역시 도화원의 일부가 되었다.

▲ 과수원의 만개한 복숭아꽃 가지 저편으로 벗이 7 년 전에 세운 조립식 가옥이 보인다 .
▲ 과수원 한쪽에 심어 놓은 아직 어린 밤나무.끝눈이 바야흐로 연녹색을 띠면서 벙글고 있다.
▲ 본채 뜰 아래에는 튤립과 금낭화 , 샤스타데이지 , 명자꽃 , 철쭉 등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 있었다 .

그의 안내로 복숭아밭을 한 바퀴 돌면서 나는 구미 북봉산 자락에서 만났던 개복숭아꽃을 떠올리며 그것과 복숭아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정작 벗의 복사꽃도 내가 만나온 개복숭아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쎄. 야생 복숭아를 개복숭아라고 하는데, 그게 특별히 다른 품종이라기보다는 복숭아가 야생에서 사람의 돌봄 없이 제멋대로 자라며 점점 퇴행한 게 아닌지 모르지. 여기도 슬슬 자라는 게 시원찮은 것들이 있는데 이놈들이 나중에 개복숭아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싶으이.”

 

복숭아밭에는 한두 그루씩이긴 하지만 배와 밤나무, 사과와 모과나무도 있다. 어린 밤나무는 이제 겨우 끝눈을 틔우고 있었고 나머지는 제각기 꽃을 피우고 섰다. 배꽃은 4년 전에만 해도 소박하지만, 기품 있다고 느꼈는데 웬걸, 올 기분은 좀 달랐다.

▲ 배꽃 . 4 년 전과 달리 이번에 나는 배꽃이 그리 탐탁지 않았다 .
▲ 탑리(금성면 탑리리) 장터에서 만난 모과꽃. 과일전 망신을 시킨다는 열매와는 다른 모습이다.

거의 무색에 가까운 흰빛은 좋았는데, 까만 머리를 단 꽃술이 어쩐지 마음에 거슬렸다. 시간이 지나면 꽃을 바라보는 마음도 변하는가. 창고 가까이 심어놓은 모과나무 꽃은 반전이었다. ‘과일전 망신’의 주역인 이 과일나무가 피운 꽃은 그 열매와는 달리 고운 기품을 보여주었다.

 

조립식으로 지은 본채 주변에는 튤립과 금낭화, 샤스타데이지, 명자꽃, 철쭉 따위가 피어 있었고, 마당 가녘엔 골담초가 노란 꽃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가 지난해 캐와 씨를 받아 심었다는 할미꽃은 지고 없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대구에서 박(朴)이 도착했다. 비로소 2장 1박이 모인 것이다. 군위의 이와 함께 우리는 황토방 앞 탁자에 앉아 술을 마셨다. 안주는 돼지고기와 통닭 등에다 그가 뜯어온 오가피와 두릅이 풍성했다.

 

우리는 최근 정국과 지방선거 등을 소재로 담소했고, 9시 넘어 집주인 장을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흐드러진 꽃구경만으로도 넘치는 호사인데 달은 없었지만, 술도 나누었으니 더 무엇을 말하랴.

 

탑리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군위. 술 마신 세 친구를 이의 집으로 옮겨준 친구는 역시 군위에 사는 권(權)이다. 술을 거의 하지 않는 그는 이렇게 우리의 음주 행각을 보조해 주는 성실한 도우미(?)다.

 

2차로 소주를 몇 잔 더 하고 박과 나는 군불을 넣어놓은 그의 황토방에서 잤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우리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새벽 두 시 가까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이가 들면 남자도 수다스러워지는 것일까.

 

다음날, 우리는 이의 차로 다시 초전리로 가서 거기 세워둔 차를 끌고 나왔다. 장은 의성군 종합복지관에서 여는 연필 초상화 수업을 들으러 가고 없었다. 우리는 탑리(국보인 오층석탑이 있는 금성면 탑리리) 장터에서 순대국밥과 돼지국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2. 군위군 우보면 미성리 ‘혜원의 집’(영화 <리틀 포레스트>)

▲ 군위군 우보면 미성리에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 주인공 김태리의 집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혜원(김태리 분)의 집 사계.ⓒ 메가박스

정오께, 그냥 헤어질까 하다가 이의 제의로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지인 인근 군위군 우보면 미성리로 향했다. 마을로 드는 들 가운데 포스터 속 엄마(문소리 분)가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던 350년 묵은 보호수를 지나 우리는 마을 경로당 앞에 차를 대고 걸어서 혜원의 집으로 갔다.

 

<리틀 포레스트>를 나는 상당히 몰입하여 봤다. 시골에 사는 젊은이들이 배경 속에 흔연히 녹아 있는 데다가 이들이 직접 조리하고 그것을 먹는 과정을 통해 삶의 어떤 편린을 여며내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외딴집은 혜원이 떠났다 돌아오는 곳, 엄마가 요리해 주던 곳이고, 그녀가 친구들과 모여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우리는 영화가 아니라, 실용적 입장에서 집을 바라보았다. 시멘트 기와를 얹었지만, 일본식으로 절충한 듯 대청에 유리 미닫이문을 단 집은 꽤 쓸모가 있어 보였다. 대청 좌우의 처마 밑에 단 램프형 외등이나 오른쪽 벽을 뚫고 낸 난로 연통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일까.

▲ 영화에 나오는 혜원의 집. 시멘트 기와를 얹었지만, 쓸모 있는 절충식 한옥이다.

마당은 넓어서 시원했고, 대문간 왼쪽에는 드물게 우물도 있었다. 본채 오른쪽은 수직으로, 디딜방아와 광, 부엌, 방 두 칸을 둔 별채였다. 본채 맞은편의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헛간엔 주인 없는 손수레가 모로 세워져 있었다.

 

“어라, 집이 쓸 만하네.”
“그러게 말이야. 이 정도 집이면 들어와 살 수도 있겠는데…….”

 

글쎄, 친구 장처럼 따로 집을 지을 만한 형편이 아니니 나는 이런 집을 보면 세를 얻어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부터 한다. 박과 나는 집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위천을 바라보면 언제 천렵 모임이라도 한번 하자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다. 같이 천렵을 즐긴 시간도 꽤 오래되었다. 모두 퇴직은 했지만 무언가를 꾸며서 만나는 일은 드물고 쉽지 않다. 바쁘다고 박은 먼저 떠나고 이와 나는 이웃의 군위중학교 우보분교에 근무하는 후배를 만나보자며 그리로 차를 몰았다.

▲ 미성리로 드는 들판 한가운데 선 350 년 묵은 보호수. 위는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장면이다 .

 

2018. 4.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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