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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04

화접도(花蝶圖), 혹은 욕망의 끌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화접도’ 고운 쥘부채를 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쥘부채를 하나 샀다. 중앙박물관은 처음이었다. 전국교사대회에 참석하기 전 우리 지회는 박물관에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일부는 ‘파라오 특별전’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박물관 전시실을 순례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중앙박물관을 찾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정작 잠시 들른 박물관에서 나는 좀 어정쩡했다. 아예 박물관 구경을 목표로 한 걸음이 아니었던 탓이다. 나는 동행한 역사 전공의 후배 교사를 길라잡이 삼아 그의 해설을 귀담아들으며 한 시간쯤 전시실을 두루 돌아다녔다. 전시물 조명은 따로 있었지만, 안경을 끼지 않은 내게 전시실은 대체로 좀 어두웠다. ‘깬석기’나 ‘빗살무늬토기’ 따위의 우리말 이름이 좋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타제석.. 2019. 7. 5.
‘가정통신문’ 읽고 눈물, 어떤 내용인가 봤더니 인천 서흥초교 총파업 안내 가정통신문에서 배워야 할 것들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예고된 가운데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배포한 가정통신문이 화제다. 이 전하는 기사의 제목은 "총파업 앞둔 노동자 울린 한 학교 가정통신문"이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원 여성 노동자 100명이 청와대 사랑채 근처에서 '정규직 대비 80% 임금',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는 집단삭발식과 기자회견을 한 것이 지난달 17일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깎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전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삭발까지 할 만큼 절박해졌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들을 잊어버렸다. 한때 나도 그들과 같은 일터에서 일했다. 그들은 급식조리원이거나 교무행정.. 2019. 7. 2.
김영갑, 그 섬에 그가 있었네 ‘김영갑의 제주도’를 기리며 다시 제주를 찾았다. 이태째다. 지난해보다 한 달쯤 이른 방문이었지만 제주는 일 년 전 만났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대부분의 여정은 지난해의 그것을 되밟는 과정이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서 나는 이 남도의 섬 곳곳을 무심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는 삼나무 숲과 동백꽃의 행렬,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싼 밭과 거기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양배추나 마늘, 쪽파 등의 농작물과 함께 나른하게 봄이 익어가고 있었다. 밭 한가운데나 ‘오름’ 주변에 자리 잡은 ‘산담’이라 불리는 무덤이 정겨웠고, 이제 드문드문 꽃을 피우고 있는 유채꽃이 슬프도록 화사했다. 터질 듯한 소녀들의 드높은 웃음소리와 싱그러운 재잘거림 속에 제주의 봄은 새롭게 깨어나는 듯했다.. 2019. 7. 2.
숲을 걸으며 숲의 선물, 명징한 깨우침과 서러운 행복감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든 산을 만나는 나라에서 살면서도 정작 우리는 산에 대한 특별한 자의식을 갖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닐까. 요즘 거의 날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학교 뒷산을 오르내리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이름난, 높고 깊은 산이 아닌 한, 그저 언덕을 면한 나지막한 ‘앞산’, ‘뒷산’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산을 달리 타자(他者)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일까. 산은 땔감을 구하거나 흉년의 주림을 달래주는 갖가지 열매와 뿌리를 내는 구황(救荒)의 땅이었고, 죽어서 그 고단했던 육신을 묻는 공간이었으니 구태여 산을 일상의 삶과 구분할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뒷산은 안동의 주산(主山)이라는 해발 252.2m의 영남산(映.. 2019. 6. 23.
“전교조에서 사람의 길, 교사의 길을 배웠다” 창립 30돌, 퇴직 전교조 조합원 교사의 회고 지난 25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30주년 전국교사대회'에 다녀왔다. 이 대회의 구호는 '법외노조 취소! 노동기본권 쟁취'였다. 웬 '법외노조'냐고? 알 만한 사람은 구호만 살펴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지금 처한 상황을 눈치채고도 남을 것이다. 합법노조에서 법외노조로 되돌려진 전교조 30돌 그렇다. 1989년에 설립된 전교조는 10년 만인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합법노조가 됐다. 1천6백여 명의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이 투옥되는 등의 희생을 치르고서였다. 그러나 합법노조로 누린 시간은 길지 않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열 명도 되지 않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 2019. 5. 30.
황교안 칭송 안동 유림이 욕먹는 진짜 이유 국정농단 관련자 추켜세우기 부적절…독립운동 앞장선 ‘혁신 유림 정신’ 되새겨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칭해 온 경북 안동시가 뉴스의 한가운데로 불려 나왔다. 지난 13일, 지역 유림이 안동을 방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구세주”, “백 년에 한 번 나올 사람”이라고 추켜세운 일 때문이다. ‘유림(儒林)’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이런 호칭은 얼른 실체가 드러나는 낱말이 아니다. 사전이 풀이하는바,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사림”(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뜻을 새기는 게 만만찮은 일이 아닌 까닭이다. 전근대에야 학문이라면 성리학 일색이었으니 ‘글줄이나 읽은 사람’은 모두가 유림의 일원이었겠다. 그러나 만인이 근대교육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하는 오늘날에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를 특정하고 이를 가리켜 ‘유.. 2019. 5. 28.
버릴 수 없는 꿈, 교사 배주영을 생각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창립 30돌을 맞았다. 1989년 5월 28일 창립 이후 1600여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났다. 5년여의 해직 기간에 유명을 달리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듬해 2월, 첫 비보를 남기고 떠난 이가 경북의 배주영 선생이다. 꼭 10년 전이 그의 19주기였으니, 올이 그의 29주기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역산하여 전교조 창립 30주년을 환기한다. 그것은 회한이면서 일종의 부채감이기도 하다. 1993년에는 내 동갑내기 친구 정영상이 갔다. 복직하고 5년 만에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되었다. 그러나 14년 뒤인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면서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다. 촛불 혁명을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6년째 전교조는 법외노조다. 10년 .. 2019. 5. 27.
8년…노무현을 다시 배웅하면서 노무현 8주기, 그를 다시 배웅하면서 2017년 노무현 8주기를 맞아 쓴 글이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의 자격으로 참석한 8주기 추도식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느꼈던 소회이기도 하다. 올 10주기 추도식은 또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면서 이태 전에 쓴 글을 다시 읽는다.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의 죽음을 심상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어서가 아니라 그 죽음은 너무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운명’이라는 짧은 유서를 남겼던 그 자신뿐 아니라, 참담한 부음 앞에서 목 놓아 울었던 시민들의 가슴에 화인처럼 찍힌 뜨겁고 아픈 한과 슬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꿈과 희망’이고, ‘환멸’이고 ‘배신’이었다 그는 내가 표를 주어 당선된 첫 .. 2019. 5. 23.
2009년, 노무현 이야기 둘 노무현, 남은 자들의 성찰과 참회 어느새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다. 2009년 그의 죽음은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쳤고, 그를 지지한 국민에겐 정치적 지지의 시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노무현은 적어도 지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 길이어서, 스스로 가야 할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길을 간 지도자다. 그를 따르려던 정치인들은 그 길이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8년 뒤에 그의 비서실장이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정치적 동.. 2019. 5. 22.
성냥불, 허공에 그어보는 아득한 기억의 불꽃 무릇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소회 제우스 몰래 ‘천상의 보물’이었던 ‘불’과 ‘지혜’를 훔쳐서 인간에게 전해준 것은 프로메테우스였다. 진노한 신은 그를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묶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내렸지만, 인간은 그 보물에 기대어 오늘날의 문명을 창조했다. 프로메테우스가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불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했는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불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에너지양의 지속적인 증가와 인간이 불을 제어하는 것이라는 현대 과학기술사’의 특징은 그만두고서라도 불이 없는 인간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난만한 21세기에도 인간은 불 없이 음식을 익히고 어둠을 밝히거나 공간을 덥힐 수 없다. 불은.. 2019. 5. 15.
11주기, 작가 박경리를 다시 생각한다 작가 박경리 선생의 부음에 부쳐 5월 5일은 작가 박경리 선생의 11주기다. 선생은 강원도 원주에서 살다가 2008년 5월 5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마음으로 꽃 한 송이 바치며 선생을 배웅했다. 일찍이 고교 시절에 에 입문한 뒤, 대여섯 번쯤 이 위대한 소설을 읽었다. 11주기를 맞아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문학관에서는 추모문학제가 열린다고 한다. 하동의 박경리문학관은 2017년 평사리문학관을 개축하고 박경리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꿔 개관한 곳이다. 나는 2007년에 「토지」의 주 무대를 재현한 이곳 평사리를 찾았었다.[관련 기사 : 평사리, 그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서다]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시설은 하동 말고도 타계할 때까지 살았던 강원도 원주와 그의 묘소가 있는 경남 통영에.. 2019. 5. 5.
2009년 통영, 박경리 기행 박경리와 그의 문학의 고향 통영 기행 지난 5월 5일은 작가 박경리 선생의 1주기였다. 따로 문상하지 않았던 나는 원주를 찾아 그이의 흔적을 잠깐 더듬었다. 원주 시내에 있는 ‘토지문학공원’에서, 그리고 그이가 살던 슬래브집을 둘러보는 거로 나는 선생을 추모했다. [아아, 박경리 그리고 토지] 그이가 묻힌 통영을 다녀오리라고 마음먹은 지 꼭 석 달 만에 나는 통영을 찾았다. 거제도를 다녀오던 길, 벗들과 함께였다. ‘통영(統營)’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서 온 이름이다. 통영은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따서 ‘충무’라 하였다가 1995년 시군이 통합되면서 다시 제 이름을 되찾았다. 2009년 8월, 통영을 찾다 바다가 아닌 산과 어우러진 호수 같은 바다를 가진 이 .. 2019.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