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31 죽음……, 그 어머니와 남매의 선택 가난에 내몰린 세 가족, 극단적 선택 대구에서 가난에 내몰린 일가족 셋이 자살했다. 남편 부도로 이혼한 뒤 어렵게 두 자녀와 함께 살아온 어머니(41)가 가스가 끊기고 집세를 마련하지 못하자 딸(18), 아들(16)과 함께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다. [관련 기사] 포털마다 양념인 듯 떠 있던 그 기사는 이내 사라졌다. 나는 제목만 읽었다가 뒤에 그 기사를 정독했다. 기사 앞에서 우리는 망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다다.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가슴이 아려와 울컥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들 일가의 죽음과 그것이 환기하는 이 비정한 사회의 야만성 앞에서. 이 나라는 가난에 지친 부모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른바 ‘동반 자살’을 감행하는 곳이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 2020. 3. 8. 자그마치 34년, 쓸모를 다한 너를 보내며 34년을 같이한 책상과 책꽂이를 떠나보내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사들인 가구가 목제 책상이었는데 10년쯤 쓰고 딸애에게 물려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쓰기 시작해 손때가 결은 나무 책상은 아이가 삼십 대 중반을 넘겨 성장한 세월을 우리 가족과 같이했다. 2018년 11월, 어느 저녁 식탁에선가 딸아이가 책상을 버릴까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그래라, 그만하면 오래 썼다, 하고 무심히 대답했는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초임 시절에 마련한 목제 책상 그 나무 책상은 1984년 초임 교사 시절 단칸방 살림 시절에 산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놈은 내가 고향 가까이 학교를 옮겨오고, 거기서 쫓겨난 뒤 해마다 이사를 하고, 5년 후 경북 북부지방의 시골 학교로 복직하고, 다시 몇.. 2020. 3. 5. 수훈(受勳)의 자격, 또는 훈장의 ‘품격’ 누가 훈장을 받는가, 그는 ‘받을 자격’이 있는가 ‘상(賞)’은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하 같음.)을 뜻하는 일반 명사다. 비슷한 뜻이지만 ‘훈장(勳章)’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이라는 뜻의 법률용어로도 쓰이는 명사다. 상이 개인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라면 훈장이 가문의 명예로 이어지는 것은 그것이 ‘나라에서 주는 포상 가운데 으뜸가는 훈격(勳格)’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는 상’이 아니며, 서훈의 대상이 되는 ‘공적’이 자연인 사이의 행위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이바지’라는 특수성을 갖는 것이다. 논란이 된 MB의 ‘임기 말 서훈’ 따라서 훈장이 ‘.. 2020. 3. 3. “맙소사, 이건 우리 집 내력이네요.” 버릴까 말까, 21년 된 선풍기 한낮 날씨가 더워지면서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냈다. 선풍기는 모두 세 대다. 둘은 이태 전과 오륙 년 전에 각각 산 놈이니 아직 생생한 편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연륜이 만만찮다. 그게 언제쯤 산 건가, 가만있자, 산 시기가 너무 까마득하다. 초임 학교인 경주 인근의 여학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전세 120만 원, 단칸방에서 3년을 살다 방 두 개에 입식 부엌이 있던 양옥으로 옮기고 산 놈이니, 정확히 1987년에 산 것이다. “맙소사, 아빠 21년이에요.” 저녁을 먹으면서 고물 선풍기가 시원찮은데 버리나 마느냐며, 내외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얼마나 묵었냐’고 물어 대답했더니 딸애가 입을 딱 벌리고 보인 반응이다. 아내는 우리 집을 ‘골동품 공화국’이라 이른다. 그 수명이 .. 2020. 2. 27. 안경, 안경을 쓴다는 것 마흔 무렵에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무렵부터 눈이 조금 나빠졌는데, 굳이 안경을 끼지 않았다. 어쩐지 ‘안경쟁이’가 되는 게 마뜩잖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만 해도 안경을 끼는 건 일종의 ‘결함’으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그 무렵 우리가 안경 쓴 아이를 가리켜 굳이 ‘눈이 넷’이라는 뜻의 ‘목사(目四)’라고 불렀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안경쟁이’를 바라보는 ‘눈길’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과 엘리트의 표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안경은 공부를 많이 한 모모한 학자들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부유한 유한계급들이 몸에 두르는 일종의 장신구처럼 생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러 ‘도수 없는 안경’을 끼고 모양을 내는 것은 말하자면 그들 시늉을 한 것이었다.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시골에는 안경 낀 .. 2020. 2. 24. 그가 간 지 30년……, 팩스 한 장으로 되돌려진 ‘법외노조’ 고 배주영 선생 30주기를 추모하며 지난 19일은 배주영(1963~1990) 선생의 30주기였다. 1990년 2월 19일 아침, 경북 청송의 자취방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했을 때 그는 스물일곱의 처녀였다. 그리고 30년이니 그가 산 삶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19일 오후 2시에 안동시 안기동 천주교 공원묘지에 모인 초로의 교사들을 회한에 잠기게 한 것도 그 세월이다. 배주영 선생 떠난 지 30년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법외노조’로 출범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단지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해 8월까지 교사 1600여 명을 학교에서 쫓아냈다. 거리로 쫓겨난 교사들 중에는 조직의 상근자로 남은 이들이 많았다. 간부와 주요 활동가가 모두 교단에서 배제되었어도 전국 .. 2020. 2. 22. ‘처부모’와 ‘친부모’가 다르지 않다? 딸 가진 부모는 모두 ‘처부모’가 된다 얼마 전 동료 여교사가 모친상을 입었다. 그이의 남편은 내 복직 동료다. 나는 학교 친목회에서 보내온 그이의 모친상 소식보다 복직자 모임에서 전한 그 남편의 ‘장모상’ 연락을 먼저 받았다.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문상했는데 한꺼번에 나는 두 사람의 복상(服喪)을 위로할 수 있었다. 학교마다 친목회가 구성되어 있고 이 친목회는 상조회 구실이 그중 요긴하다. 당연히 회칙에는 경조사에 관한 규정이 중심이다. 본인의 결혼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상 규정이 으뜸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친부모·처부모를 가리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여교사에게 친부모 아닌 시부모가 중요하다면 남교사에게 처부모의 무게도 같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부친상’과 ‘장인상’의 거리 글쎄, 서.. 2020. 2. 22. 굿바이 ‘천리안’, 젊은 날의 열정, 혹은 만용이여 20년 동안 써온 전자우편 ‘천리안’ 계정을 해지하다 그저께 지난 20년 동안 써 오던 천리안 메일 계정을 해지했다. 1994년 복직한 이듬핸지, 그다음 해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교사들에게 제공하는 무료(당시만 해도 유료 메일이 있었다) 메일 계정을 하나 받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계정을 쓰지 않고 유일하게 써 온 메일이다. 20년 동안이나 써온 천리안 메일 주변에는 주로 다음의 ‘한메일’이나 ‘네이버’ 메일을 쓰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지금껏 한눈팔지 않고 천리안 계정만 이용해 왔다. 다른 메일 서비스를 전혀 쓰지 않았으니 나는 이른바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었던 셈이다. 주소는 초기엔 ‘천리안 넷(chollian.net)이라 쓰다가 나중에 ’철컴(chol.com)으로 줄여서 썼는데 지난 세월.. 2020. 2. 18. ‘신공항 유치 반대’ 그는 ‘참 의성 군민’이 될 수 있을까 귀촌인이 바라본 대구 경북 통합 신공항 유치 지난 1월 21일 경상북도 의성군과 군위군에서 각각 시행한 ‘대구 경북 통합 신공항 이전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 결과를 전해 듣고 나는 잠깐 헷갈렸다. 투표 결과, ‘군위 소보·의성 비안 공동후보지’(투표율 88.69%, 찬성률 90.36%)가 ‘군위군 우보 단독후보지’(투표율 80.61%, 찬성률 76.27%)를 앞질렀다. 주민투표까지 마쳤지만 신공항 이전, 갈 길이 멀다 이튿날 새벽, 군위군은 투표 결과를 뒤집고 국방부에 단독후보지로 유치 신청을 감행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공동후보지인 ‘군위 소보’와 ‘의성 비안’을 대구 신공항 이전지로 정해 선정위에 안건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후보지별 주민투표 찬성률(50%)과 투표율(50%)을 합산해 점수가 높.. 2020. 2. 15. 교사의 주례사 - 서로에게 ‘올바른 상대’ 되기 제자의 결혼식 주례사를 쓰면서 결혼 철이다. 4월, 강변의 벚꽃이 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는 지난 주말, 여제자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하객이 아니라 주례 노릇을 했으니 ‘다녀왔다’란 표현은 거시기할지도 모르겠다. 2001년에 한 제자 녀석의 혼인을 주재한 이래 두 번째니 꼭 10년 만이다. 제자들로부터 의례를 맡아 달라는 부탁은 드문드문 받긴 했지만, 대부분은 단박에 거절해 버리곤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그런 엄숙한 의식을 주재한다는 게 체질에 맞지 않는 데다가 스스로가 그런 노릇에 합당한 인물이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판의 놀이판처럼 바뀐 결혼식 풍속도 존경할 만한 인품을 갖고 있지도, 제대로 된 남편으로 훌륭한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오지도 못한 사람에게 주례란 넘치는 지위일 뿐이었다.. 2020. 2. 15. 악플, 혹은 ‘무례’에 대처하는 법 악플을 다는 이들의 무례에 어떻게 대처할까 여러 해 동안 블로그를 꾸려오다 보니 가끔 뜻밖의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으면서 내 글에다 자신만의 독특한 ‘의견’을 댓글로 남기는 이 말이다. 이들이 모두 다 이른바 ‘악플’이라 불리는 댓글을 남기는 이들은 물론 아니다. 내 블로그는 생면부지의 누리꾼들이 두서없이 댓글을 남길 만큼 흥미로운 곳이 결코 아니다. 올라오는 글들도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데다가 대중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주제를 다루는 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를 바라보는 내 눈길이 뜨뜻미지근한 것도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가물에 콩 나듯 이런저런 소회를 피력하고 가는 누리꾼들이 있다. 점잖게 예를 차려 자기 의견을 펴고 가는 이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2020. 2. 10. 서둘러 오는 봄을 기다리며 2020년, 나의 ‘대춘부(待春賦)’ 아직 ‘지난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이르긴 하다. 그러나 요즘 나는 자꾸만 겨울이 이미 저물고 있으며 봄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겨울 들머리에서 잠깐 추웠을 뿐 추위로 힘들었던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원래 눈이 드문 고장이지만 눈은 한 차례도 오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은 1908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12년 만에 ‘가장 따뜻한 1월’이었다. 서울의 평균기온이 영상을 기록한 일곱 해 가운데 한 해일 뿐 아니라, 영상 1도를 넘은 유일한 해라는 발표 수치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서울이 그럴진대, 따뜻한 남쪽에 해당하는 구미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베란다 내벽에 살얼음이 끼고 보일러 배관이 얼었던 2017년 겨울 이래, 겨울은 점점 따.. 2020. 2. 5.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