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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30

다시 만년필을 쓰고 싶다 나의 손글씨 쓰기 ‘연필깎이’ 세대는 지금 몇 살쯤 되었을까. 학교 교무실에도 연필깎이 하나가 비치되어 있다. 저걸 누가 쓰나 싶었는데 3, 40대 교사들이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쓰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연필깎이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자라서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가끔 연필을 깎아 준 게 연필깎이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니 말이다. 우린 초등학교 때 늘 문구용 칼로 연필을 깎았다. 연필 깎는 데도 타고난 재주 같은 게 있다. 어떤 친구들은 몸통을 길쭉하고 미끈하게 깎아내고 심도 적당히 쓸어 연필이 아주 모양이 났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시작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깎다 보면 어느새 몸통은 물론이거니와 심도 못난이 모양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며 .. 2019. 11. 24.
‘골목길 구제금융’, 전당포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전당포, 그 성쇠와 부침의 연대기 ‘전당포(典當鋪)’는 그 이름도 고색창연하다. ‘이발소’가 ‘바버샵(barber shop)’이 되고, ‘미장원’이 ‘헤어·뷰티 살롱(hair·beauty salon)’ 따위로 진화하는 이 시대에도 전당포는 여전히 전당포다. ‘가게 포(鋪)’ 자가 붙은 이름으로 가끔 ‘지물포(紙物鋪)·시계포·자전거포’ 따위가 쓰이긴 하지만, 이는 케케묵은 ‘부름말’일 뿐 그걸 상호로 쓰는 데는 없다. 오래된 가게라는 뜻으로 쓰이는 ‘노포(老鋪)’도 마찬가지다. 지물포는 ‘지업사’로, 시계포나 자전거포는 ‘포’ 자를 떼어낸 상호를 쓰고, 손님들도 ‘포’ 대신 ‘시계방’과 ‘자전거방’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전당포는 예나 지금이나 전당포다. 사양길로 떨어지던 전당포가 새로이 성업 중이라 해도.. 2019. 11. 21.
시계, 시간, 세월 늘 시계를 몸에 지니며 살아온 시간 나는 늘 시계를 몸에 지닌다. 휴대전화가 나온 뒤에 그걸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시계는 시계고, 휴대전화는 휴대전화라고 생각한다. 무슨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시계를 항상 왼쪽 손목에 찬다. 시간을 보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나는 수업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자주 시계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무심한 습관일 수도 또는 자신의 삶과 일상에 대한 확인 행위일 수도 있다. 시계를 보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텔레비전 옆 문갑 위에다 시계를 끌러놓는다. 그것은 내가 일상과 삶의 공식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는 손목.. 2019. 11. 17.
시나브로 ‘아비의 시대’는 가고 장성녕의 맏이, 결혼식에 다녀와서 미라가 시집을 갔다. 2008년 아버지를 잃고 올 4월에는 어머니까지 잃고 두 동생을 거두어야 했던 고 장성녕 선생의 맏이 미라가 결혼했다. 아랫도리를 벗고 지내던 시절부터 보아온 아이고 자라는 과정에서 아이의 심덕을 잘 알고 있는 터여서 혼인 소식에 반색을 아니 할 수 없었다. [관련 글 : 잘 가게, 친구(2008. 2. 14.) 지아비와 함께 편히 쉬시라(2012. 5. 1.)] 지난 4월, 제 어머니 장례를 치를 때 아이의 곁을 지켰던 건실한 청년이 있었다. 그냥 마지못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제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여러 가지 궂은일 마다치 않던 친구였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그 친구에게 덕담을 건넸었다. 어쨌든 이른 시일 안에 국수를 먹게 해 주.. 2019. 11. 14.
그 여자, 황진이 중세의 자유인, 설화적 인물 같은 실존 인물 아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녀는 단연코 황진이(黃眞伊)일 것이다. 출중한 미모와 뛰어난 시적 재능, 자유분방한 성격이 전설처럼 전해져 오면서 그녀에게는 일종의 문학적 아우라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소설과 영화 등의 갈래를 통해 황진이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황진이의 문학적 아우라 황진이가 오랫동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완고한 시대적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천민이었지만, 그녀는 한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지배계층인 사대부의 향락적 파트너로서 그들과 대등한 문학적 지위를 유지했던 여인이었다. 임병 양난 이후에 향유 계층이 확대되기까지 조선조에서 문학.. 2019. 11. 14.
“촛불 내리는 순간 김천은 전쟁도화선 된다” 사드 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 1년의 기록 펴내다 사드 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아래 김천대책위)가 촛불 1년을 넘기면서 지난 365일을 돌아본 기록집 를 펴냈다. ‘김천 촛불 365일 너머’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지난 1년여의 투쟁과 그 갈피에 담긴 분노와 눈물과 기쁨의 기록이다. 김천대책위, 펴내다 김천대책위가 사드 반대를 표명하며 첫 촛불을 밝힌 것은 2016년 8월 20일이었다. 부곡동 강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첫 번째 촛불집회를 마치면서도 시민들은 이 촛불이 해를 넘기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은 해를 간단히 넘겼고 첫돌을 맞았다. 그 365일 동안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지 못한 날은 단 하루였다. 그리고 지난 13일, 마침내 450일째 촛불이 지펴졌다. 천막을 치.. 2019. 11. 12.
하얼빈 의거 110주년, ‘안중근 글꼴’ 나왔다 GS칼텍스 ‘독립 서체 캠페인’, 지금까지 총 5종 글꼴 공개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올 3월부터 '독립 서체 캠페인'을 진행해 온 지에스(GS)칼텍스(아래 지에스)에서는 지난 8월 15일 '안중근 의사'의 서체를 추가 배포한 바 있었다. ‘독립 서체’ 캠페인은 파편적인 기록만 남은 일부 독립운동가분들의 글씨체를 모아서 전문 폰트 개발업체와 협업, 당시의 글씨체를 현대에 맞게 복원·제작하는 것이다. 지에스는 이를 무료 배포해 그 의미를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안중근체는 안 의사가 의거 거행 전 동지인 우덕순에게 준 한시와 한글 시 에 남아 있는 그의 육필을 기초로 제작한 글꼴이다. 안 의사는 적지 않은 한문 유묵을 남겼으나 한글로 쓴.. 2019. 10. 28.
블로그 글 1000편에 부쳐 블로그에 글 1천 편을 썼다 지난 10일에 올린 글 “ ‘로마자 제호’를 다시 생각한다”로 내 블로그에 올린 글은 모두 일천 편이 되었다. 2006년 12월에 블로그를 연 지 햇수로 7년 만이다. 아직 돌이 되려면 두 달쯤 남았지만 성글게 계산해도 해마다 평균 140여 편, 2~3일에 한 편씩 글을 써 온 셈이다. 1천 편, 2006년에서 2013년까지 블로그에 첫 글을 쓴 때는 2006년 12월 15일, ‘카메라, 카메라’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처음 사게 된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를 기다리고 그것을 받아든 기쁨과 설렘을 두서없이 적었는데, 그때 그걸 읽으러 내 오두막을 방문한 이는 하루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최초로 쓴 기사는 2006년 12월 7일에 쓴 ‘물돌이동(河回) 주변을 거닐다’였다.. 2019. 10. 15.
앙리 미쇼(Henri Michaux)를 다시 읽으며 성장의 길목에서 만난 앙리 미쇼 뜬금없이 왜 앙리 미쇼를 떠올렸을까. 십대 후반에서 20대로 넘어가는 길목이었을 것이다. 어떤 책에 실린 그의 어록을 베껴서 습작 노트에 기록한 것은. 그러나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이름에서 드러나는바, 그가 프랑스인일 것으로 생각한 듯한데 이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땅히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를 잊어버렸다.  90년대 초반까지 지니고 있었던 습작 노트를 정리하면서 나는 그 안의 내용물을 ‘옛날의 금잔디’라는 제목의 한글 문서 파일로 만들어 보관했다. 어저께 우연히 그걸 기억해내고 그 문서를 찾는데 적잖이 시간이 걸렸다. 쇠락해 가는 내 기억력은 그 문서의 제목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쎄, ‘굴복하여라, 내 가슴아’로 시작하는 예의.. 2019. 10. 15.
‘반 사드(THAAD)’ 운동 3년, 그들은 오늘도 싸운다 [참관기] 사드 철회 기지공사 중단 제10차 범국민 평화 행동 태풍 링링 탓에, 지난 9월 7일에 열리려다 연기되었던 '사드 철회 기지공사 중단 제10차 범국민 평화행동'이 10월의 첫 토요일에 열린다는 소식을 나는 퇴직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어 소성리 종합상황실의 단체 카톡으로 보도 협조 요청을 받았다. 2016년 사드 문제로 첫 촛불이 켜질 때부터 나는 드문드문 집회 현장을 찾아 몇 편의 기사를 쓰고, 블로그에 그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기자로서가 아니라, 사드 문제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공감하는 시민으로서 지지와 응원을 드러낸 것이었다. 소성리와 김천 시민들의 사드 철회 운동은 경이롭다 소성리 주민은 물론이거니와 김천 시민들이 지켜온 촛불에 관해서 나는 '경이롭다'고밖에 말할 수 없.. 2019. 10. 7.
사랑은 늘그막에 새롭게 시작되는가 노년의 사랑어떤 작가는 아내는 ‘장롱’ 같은 존재라고 했다. 아내는 장롱처럼 늘 거기 있다. 그래서 그 존재의 의미를 따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내는 그 자신의 ‘부재’를 통해 그 존재의 의미를 절절히 깨닫게 해 준다는 얘기다. 그건 자유가 ‘공기’ 같다는 오래된 비유와도 같은 맥락이겠다. 아내는 ‘장롱’이다? 모든 남편에게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떨까. 그 질문에 서슴없이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자신에게 묻는다. 아내는 내게 무엇인가. 마땅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혼인으로 부부가 되면서 우리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유보해 버리기 때문이다. 삶에서 아내나 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반려(伴侶)’라 하여 배우자를 ‘.. 2019. 10. 7.
‘삼성’ 물건 안 쓰고 살기 ‘삼성’ 물건 안 쓰고 살기, 불편하지만 할 만하다 ‘윤리적 소비’를 다룬 기사 “착한 커피, 혹은 더바디샵”을 쓴 것은 2007년 1월이다. 나는 거기서 ‘영악한 소비자’ 대신 ‘재화의 가치를 거기 투여된 노동으로 환산해 이해’하는 ‘합리적 소비자’를 이야기했다. 이들은 ‘반값으로 물건을 사게 된 행운을 기뻐하면서도 그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 거기 투여된 노동을 안타까워할 줄 아는’ ‘윤리적’인 소비자들이다. 윤리적 소비, 혹은 ‘삼성 물건 사지 않기’ 이들 윤리적 소비자들은 ‘여러 개의 동종의 상품 중에 꼬집어 한 제품을 고르면서, 자신의 선택이 갖는 윤리적 의미를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선량한 소비자’들이다. 나는 기사에서 이들의 참여가 ‘사람 사는 세상’을 여는 조그마한 실마리라는 것을 믿.. 2019.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