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4·3 예순세 돌에

by 낮달2018 2019. 9. 14.
728x90

4·3항쟁 63돌(2011)

▲ 강요배 작 '젖먹이'. 4.3의 비극을 압축한 그림이다.

제주 4·3항쟁 예순세 돌이다. 마침 일요일이라 신문이 없는 날이다. 며칠 전 <한겨레>에서 본 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인 표석 사진이 아니었다면, <오마이뉴스>에 실린 블로그 기사가 아니었다면 기억하지 못하고 넘어갈 뻔했다. 하기야 기억한들 무어 달라질 게 있겠는가만.

 

띄엄띄엄 들리는 소식은 4월 1일에 베풀어진 기념식에 예년과 달리 국무총리가 참석했다는 것, 제주 4.3사건 희생자 결정 무효 등을 주장하며 일부 보수단체 인사들이 4·3 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가 각하됐다는 것들이다. 반역사, 몰역사적 퇴행은 요즘, 이 나라의 익숙한 풍경들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니 구글의 로고가 색다르다. 지난 여성의 날에도 독특한 로고로 그날을 기념한 바 있어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나 구글의 로고는 지나치게 화사하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블로그는 그게 ‘아이스크림선디(Ice-cream sundae)’ 119주년 기념 로고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선디는 ‘아이스크림에 설탕 조림한 과일이나 초콜릿을 얹어 먹는 디저트’를 이른단다. 미국의 어느 시골 음식점에서 일요일에 우연히 만든 아이스크림 맛이 기막히다고 소문나자, 여기에 ‘선데이(sunday)’와 발음이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하긴 이 나라 검색시장의 최강자라는 네이버조차 챙기지 않는 날을 세계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업체인 구글이 기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순세 해 전에 제주에서 타오른 4·3과 오감을 자극하는 아이스크림의 대비는 어쩐지 서글프고 쓸쓸하다. 그것은 마치 이 시대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한 은유 같아 보인다.

 

제주 출신의 화가 강요배의 그림 ‘젖먹이’와 4·3을 기록한 오래된 몇 장의 흑백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어미 위에 엎드려 아이는 젖을 빨고 있다. 그림은 4·3의 비극과 그 비극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제주 사람의 생명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4.3평화공원에 있는 '비설'. 당시, 어머니와 아기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제주 4·3특별법이 제정 공포(2000)되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2006) 등으로 4·3은 합당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제주의 역사로만 한정되고 있는 4·3 63주년, 사람들은 바래어가는 역사가 아니라 봄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일요일 오후, 날도 저물고 있는데 굳이 한갓진 이야기로 4·3을 주절대는 것은 어쩐지 이날을 그냥 보내는 게 민망해서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오래된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들으며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에서 보내준 <4·3 자료집>을 뒤적여 본다.

 

2011. 4. 3.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