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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75

까발려진 미국의 빈곤과 계급, 그리고 ‘아메리칸드림’ [서평] 세라 스마시 지음 우리는 가난하고, 그리고 여자로 태어났지. 이것만 해도 이 세상에서 우리 몸은 투 스트라이크를 당한 거야. 게다가 엄마는 남자들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외모를 가졌고, 나는 원하지 않은 아이였으니, 안 그래도 위험한 세상에서 흔들리던 우리가 각각 원 스트라이크씩을 더 먹었지. 하지만 엄마는 자기가 쓰레기가 아니란 걸 알았어. 자기 딸도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도. - 책 130쪽 1977년 9월, 캔자스주 위치토시의 트레일러 주차장 옆 작은 교회에서 마흔다섯 살 난 농부 ‘아니’가 열세 살이나 어린 신부 베티와 결혼식을 올렸다. 베티는 나이는 서른둘이지만 여섯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해 온 여자였다. 두 사람의 혼인으로부터 누대에 걸친 세라 스마시(Sarah Smarsh)의, 가.. 2020. 10. 11.
신석정과 신석정문학상, 그리고 도종환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교사도 공부를 꽤 많이 해야 한다. 대학에서 건성으로 건너뛰었던 우리 문학을 ‘수험용 각론(各論)’으로 이 잡듯이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문학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문학 교사 개개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입시교육을 흘러가는 것이다. 좋아도 가르치고 싫어도 가르쳐야 하는 이 ‘씁쓸한 문학 교실’에서 시를 조각조각 내다보면 때로 자신이 가졌던 시인에 대한 이해가 뒤바뀌기도 한다. 시 ‘꽃 덤불’을 가르치면서 신석정(辛夕汀.1907∼1974)을 ‘슬픈 목가’류의 서정시인으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다. 신석정의 시를 처음 만난 게 중학교 시절이었다. 국어 교과서에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배웠는데 참 신기하게 여긴 게, 어른인.. 2020. 9. 29.
그 ‘상처’로 오늘이 여물었네 ‘실천시선’ 200호 기념 시선집 어제, 며칠 전 주문한 책 몇 권을 받았다. , , 같은 책 가운데 흰 표지에 노랑 띠를 감은 ‘실천시선’ 200호 기념 시선집 가 끼어 있다. 특별히 이 책을 주문한 이유는 없다. 아마 ‘200호’라는 데 마음이 간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1989년 해직 교사 출신 시인들 차례를 천천히 훑는데 낯익은 이름과 시편 몇이 눈에 들어왔다. 김진경, 도종환, 배창환, 김종인, 정영상, 조재도, 신용길, 조향미……. 서울과 경상도, 충청도 어름의 중고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89년 해직의 칼바람을 맞았던 이들이다. 정영상(1956~1993)과 신용길(1957~1991)은 해직 기간에 고인이 되었다. 신용길 시인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생전의 그이를 알지 못했.. 2020. 9. 22.
논란의 <한국사> 교과서, 정부의 직무유기 [서평] 역사교육연대회의 지음 뉴라이트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들이 주도해 국사편찬위원회 최종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아래 교과서) 때문이다. 6일부터 교사들에게 공개된다고 하는 의 전모는 아직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관련 보도를 종합해 보면 를 관통하는 관점을 짐작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의 근현대사를 꿰뚫는 관점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이승만·박정희 체제에 관한 기술은 ‘미화’에 가깝다는 게 관련 보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관한 기술은 축소·왜곡했고 조선인 친일 협력자 활동은 긍정적으로 서술해 친일 행위를 합리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제는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을 발표하고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들을 침략.. 2020. 9. 6.
개천마리… 그 사나이의 삶과 진실 [서평] 박상규의 모르긴 몰라도 국내서 출판되는 문학 서적 가운데 으뜸은 ‘수필(隨筆)’이 아닐까 싶다. 이 ‘붓 따라 가는 글’은 때론 ‘수상(隨想)’이나 ‘에세이(essay)’란 고급스런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기실 그것은 ‘신변잡기’라는 분류로 뭉뚱그릴 수 있는 ‘잡문(雜文)’이기 십상이다. 에세이? 혹은 신변잡기? 본격적 교술 장르로서 삶에 대한 묵직한 성찰이 담긴 ‘수상’이나 ‘에세이’는 언감생심인데도 스무 살짜리 새파란 젊은이에서부터 예순이 넘은 여배우들까지 자신의 책에 어김없이 ‘에세이’를 붙인다. 시인, 작가, 학자들이 쓴 수상집이 넘치듯 연예인과 체육인 등 이른바 대중 스타들이 쓴 수필집도 차고 넘치는 요즘이다.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이런저런 글을 끼적이다 보니 인사치레로 ‘책을 내지.. 2020. 8. 22.
포복절도하다 등이 서늘… 끝내주는 <충청도의 힘> [서평] 남덕현의 …정말 감칠맛 납니다 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에 실린 기자 칼럼에서다. 기자는 이 책에 나오는 노인의 말씀을 제법 길게 소개했다. “세상일이란 한 가지로 똑 떨어지는 법은 없다. 원래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새끼를 치니까. 1번 되었다고 너무 야코 죽지 말아라. 5번 찍었으면 반드시 5번이 새끼 칠 날이 올 거니깐….”(눈치챘겠지만 지난 대선 이야기다. 5번 찍은 사위에게 건넨, 1번 찍은 장인어른 말씀이다.) 머리를 갸웃했지만, 무슨 책 이름이거니 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에 8월호에 실린 어떤 글을 읽다가 퍼뜩 짚이는 게 있었다. ‘수덕사가 워디 가?’라는 제목의 글은 포복절도하고도 남을 이야기였다. 책을 읽다가 거의 대굴대굴 구를 지경으로 배를 잡은 건 거의 십몇 년 만이.. 2020. 8. 18.
19세기 서울의 춘향전, <남원고사(南原古詞)> [서평] 19세기 서울의 춘향전, 을 비롯한 이른바 판소리계 소설은 조선 후기 평민 의식의 성장이 빚어낸 서민문학의 결정판이다. 이들이 국민 문학(소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아이들은 배밀이로 방바닥을 길 때부터 울긋불긋한 그림책에서 춘향이와 어사또를, 심청이와 뺑덕어미를, 그리고 흥부와 ‘다리 부러진 제비’를 만나기 시작한다.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동화 형태로 예의 이야기를 읽게 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일부이긴 하지만 그 원문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줄거리는 뚜르르 꿰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야기의 구체적인 전개, 그 세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한글 고전소설의 묘미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뻔한 줄거리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2020. 8. 6.
“말려 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달라” [서평] 밀양 구술 프로젝트 … ‘슈퍼 갑’ 국가에 맞선 할매 할배 외국으로 이주하지 않는 한 제가 나고 자란 나라(국가)를 부정할 수 있는 백성은 없다. 속지주의니 속인주의니 하는 복잡한 개념을 보탤 필요 없이 사람은 태어나면서 절로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 그것도 개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주어지는. 그래서일까. 여느 사람들의 삶에서 국가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납세나 병역, 교육과 같은 의무도 습관처럼 받아들일 뿐, 개인이 구체적 문제의 당사자로서 국가를 상정하는 일은 드물다.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대회 같은 국가 대항의 스포츠 경기 등에서 국가적 동일성을 인식할 때 나라는 때로 구체적이고 친근한 이웃의 얼굴로 돌아올 뿐. 그러나 국가가 요령부득의 이유로 내 신체나 거.. 2020. 6. 13.
무기수 김신혜 앞에서 멈춘 ‘정의’ [서평] 박상규·박준영의 르포르타주 살아가면서 누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우리는 무심코 남의 물건을 동의 없이 가질 수 있고, 누군가를 속이고 위협하거나 때려서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행위의 결과가 곧 절도, 사기, 상해, 살인이라는 형사 범죄다. 그러나 소시민 대부분은 평생 그런 상황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감옥이나 법원은 말할 것도 없고 파출소에조차 한번 불려가는 일도 없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긴 하지만 누구나 무엇을 훔치고, 누군가를 속이거나 때리고 죽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법과 정의’에 대한 ‘로망’과 현실 모두에게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그런 상황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2020. 6. 7.
‘표절 논란’ 이후, 독자는 ‘호갱’인가 ‘신경숙 표절 논란’을 다룬 “성공한 ‘작가’의 표절은 ‘무죄’다?”를 쓰고 난 뒤, 나는 적어도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게 일정한 변화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 아직 결과를 말하기엔 이른 건 사실이지만 - 나는 내가 아직도 순진하고 어수룩하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확인했다. 발 빠르게 창비가 관련한 입장을 밝혔고 신경숙도 창비에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신경숙은 “ 외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 은 모르는 작품이다. 독자들께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다.”고 밝혔다고 했다. 고종석, “창비는 돈 몇 푼에 제 이름을 팔았다” 신경숙의 입장은 요약하면 ‘나는 모르는 일이다. 믿어달라.’는 것이다. 신경숙의 작품집을 출판하.. 2020. 6. 5.
“성공한 ‘작가’의 표절은 ‘무죄’다?” - 신경숙 표절 논란 목하(!) 대한민국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중견작가 신경숙 문학의 ‘표절’을 제기한 동료작가의 고발이 화제다. 시인이자 작가인 이응준이 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드러난 표절 사실은 일단 꽤 충격적이다. [관련 기사 :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일단’이라고 전제한 것은 그가 제시한 표절 의혹이 아직 대중의 공감과 동의를 받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표절 혐의는 제시한 증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문가는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지만, 표절 혐의는 상식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동료작가가 고발한 ‘신경숙의 표절’ 이응준은 신경숙이 자신의 단편에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의 소설의 한 단락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는 .. 2020. 6. 4.
그 삶과 시- 박영근 유고시집『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시집 몇 권을 샀다. 지난번 글(노동시인 조영관과 임성용의 만남)을 쓰면서 온라인 책방 보관함에 갈무리해 둔 조영관 유고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 임성용 시집 『하늘공장』,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등이다. 생각난 김에 민음사에서 펴낸 소월 시집 『진달래꽃』과 만해 시집 『님의 침묵』에다 릴케 시집 『형상시집 외』도 샀다. 『진달래꽃』은 중학교 1학년 때 읍내 문방구에서 100원을 주고 산 이래 두 번째로 사는 소월 시집이다. 그러고 보니 그 손바닥만 한 문고본의 조악한 시집이 내가 난생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책이었다. 시의 ‘효용’, 국밥과 소금? 아이들에게 소월과 만해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서가에는 그들의 시집 한 권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좀 황당했다. 하긴 .. 2020.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