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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침략과 식민지배의 원점이자 그 상징”

by 낮달2018 201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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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일본 초등학교 역사교과서 ⓒ SBS 화면 갈무리

마침내 내년 신학기부터 일본 초등학생은 한국 영토인 독도(일본이 주장하는 명칭: 다케시마)가 일본의 ‘고유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이 실린 새 교과서로 공부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면서 자라게 되면 이 터무니없는 ‘국경 분쟁’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일본의 노림수는 거기 있을 것이다.

 

우리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독도 문제가 전혀 심각하지 않은, 일본이 가끔 주절대는 흰소리 수준에 그쳤다. 아무도 그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얘기다. 1982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히트했을 때, 새삼스럽게 그런 노래가 나온 배경이 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명토 박으며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 자위대 군용기를 긴급 발진 하는 사태까지 연출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우리 군의 ‘독도 방어 훈련’의 중지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 판결에 경제보복에 나서면서 한일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일관계 갈등 상황의 전개 앞에 시민들은 아주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으로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면서도 ‘노 재팬(No Japan)’이 ‘노 아베(No Abe)’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한국이 일찍이 보여준 것과 같은 역동성은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의 시민사회는 소수의 목소리나마 보편적인 상식과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 한일 간 갈등 상황에 대해서도 문제의 근원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음은 2012년 일본 지식인들이 독도 문제에 관한 ‘대국민 호소’를 다룬 글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양식 있는 시민사회가 앞장서 이어가는 국제연대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2019. 9. 15.

 


▲ 일본이 그 영유권을 주장하고 교과서에 이를 싣는 등 억지가 심화되면서 우리의 영토 수호 의지도 분명해졌다. ⓒ 외교부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첨예한 갈등에 대해 일본의 지식인들이 나선 모양이다. 오늘 자 <한겨레> 기사가 전하는 따끈따끈한 소식이다. 어제 오후 일본의 시민사회 대표들이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대국민 호소’를 발표했다고 한다. [<한겨레> 기사]

 

이들 호소의 핵심 전제는 “영토갈등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일본은 자신의 역사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반성하고, 그것을 성실히 밝혀야 한다”는 것. 일본의 지식인들과 시민 1270명이 서명한 호소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영토갈등은 근대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의 독도 편입은 러일전쟁 기간 일본이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진행하며 외교권을 박탈하려던 중에 일어난 일로, 한국인들에게 독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침략과 식민지배의 원점이며 그 상징이라는 점을 일본인들이 이해해야 한다.”
“일본에 한국과 중국은 중요한 우방이자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파트너이므로 일본 정부가 지난 식민지배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일본 지식인, “독도는 침략과 식민지배의 원점이자 상징”

 

이 ‘호소’에 참여한 일본의 지식인은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를 비롯하여 일본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잡지 <세카이>(世界)의 편집장을 지낸 오카모토 아쓰시(岡本厚), 오랫동안 한일 과거사 보상 소송에 참여해온 변호사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오다가와 고(小田川興), ‘헌법 개악반대 시민연락회’ 대표 다카다 겐(高田健) 등.

 

▲ 대국민 호소에 나선 일본의 지식인들. 노벨상 수상 작가 오에, 언론인 오카모토와 변호사 우치다, 시민운동가 다케다 등.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억지와 도발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한결같이 ‘독도는 우리 땅’만을 되뇌고 있었을 뿐 일본의 집요한 도발과 문제 제기에 별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부의 대응으로 기억나는 게 ‘독도’를 노래한 대중가요가 한때 한일 간의 ‘우호(!)를 해친다’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고작이니 말이다.

 

그러나 ‘독도가 자국의 영토’라는 일본의 집요한 주장과 도발은 어느 날 우리 대통령의 독도‘깜짝 방문’을 끌어냈고 한일 양국 간의 긴장과 갈등은 한껏 높아졌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아예 노골화되었고 극우시민단체들의 반한시위 등 애국주의 물결도 한창이라고 한다.

 

때맞추어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대국민 호소를 발표했다. 이 ‘호소’는 무엇보다도 식민지 시대의 반성을 비롯한 전후 청산을 줄곧 외면해 오면서 여전히 아시아 각국의 불신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에도 ‘보편적 양식과 양심’이 있다는 것은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 것이다.

 

일본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에 이어 두 번째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1935~ )는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작가다. 그는 ‘천황제’와 ‘자위대’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이다. 당연히 핵을 반대하며 ‘평화헌법’을 강력한 수호자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우리에게 그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던 듯하다. 당시 동료 교사로부터 그의 소설집 한 권을 받았지만 나는 그걸 채 다 읽지 못했고 이후로도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비판적·진보적 세계관은 일찌감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거나 문화훈장을 받는 문학가의 자세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스웨덴 국민이 주는 상으로 여기겠다”라며 노벨문학상은 받았으나, 그 직후에 천황이 손수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함께 수여하려 하자, “나는 전후 민주주의자이므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여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잘은 몰라도 일본 사회에서 ‘독도’ 문제에 관해서 최소한 중립적인 의견을 갖기조차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 한다. 일본의 교원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이른바 ‘친한파’로 불리는 진보적 교사들도 ‘독도’ 문제 앞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하니 말이다.

 

하루키, “국경 넘어 영혼의 길 막아선 안 된다.”

 

한편 일본의 저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도 이 문제에 대한 자기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아사히신문> 기고를 통해 최근의 영토분쟁이 지난 20년간 문화교류를 통해 성숙해온 동아시아 문화권을 파괴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며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경선이 존재하는 한 영토문제는 피할 수 없지만, 이는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하며 “영토문제가 ‘국민감정’ 영역으로 들어가면 출구 없는 위험한 상황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하루키의 입장은 좀 뜻밖이긴 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진보’나 ‘정치적 의제’가 아니라 ‘문화적 의제’로 이해한 것은 하루키답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가 다소 모호한 언어로 문제를 얼버무린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쨌든 오에 겐자부로는 아니기 때문이다.

 

‘호소’에 참여한 사람은 1270명, 공교롭게도 일본 인구 1억2천8백만 명의 약 0.00001%다. 그러나 ‘호소’는 철저히 국익을 겨냥해 이루어진 자기 나라의 국가적 욕망 앞에 시민의 ‘양식과 양심’을 새삼 확인했다는 점에서 뜻깊다. 참여 인사가 밝힌 것처럼 ‘일본에 반중, 반한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실마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201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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