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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에 ‘홍동백서(紅東白西)’는 없다?

by 낮달2018 2019.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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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에서 “차례상 규칙, 근거가 없다”고 발표

▲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한가위를 앞두고 명절 차례와 관련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오래되고, 감히 아무도 바꿀 수 없다고 여겼던 명절날 의례의 관습을 무화하는 듯한 꽤 무거운 소식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두 매체 외엔 모두 이를 뜨악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성균관, “차례상 규칙, 근거가 없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차례상 규칙 근거 없다.”
“차례라는 말 자체가 기본적인 음식으로 간소하게 예를 표한다는 의미”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간소하게 차리고)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 올바른 예법이다.”

 

홍동백서? 4대 봉제사(奉祭祀)에다 한가위와 설날 차례까지 모두 10번쯤 제사를 모셨던 집안에서 자란 내게는 익숙한 성어(成語)다. 어릴 적부터 선친으로부터 제사상 진설(陳設)에 관련된 예법에 관해서 들은 말이 적잖다. 어동육서(魚東肉西), 동두서미(東頭西尾), 동조서율(東棗西栗)…….

 

이 땅은 의례도 많고, 그 의례의 규칙도 유난히 많은 동네다. ‘가가례(家家禮)’에다 “남의 잔치[장/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다. ‘가가례’는 ‘각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풍속 따위’를 이르는 말이고 뒤의 속담도 남의 제사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차례상 맨 앞줄에 진설하는 과실의 순서가 대추·밤·감·배[조율시이(棗栗枾梨)]냐, ‘조율이시’냐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았던 게 바로 ‘가가례’의 직접적 증거다. 감과 배의 배열순서란 근본적으로 예의 본질과 무관한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예에 관한 한, 정설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 설 차례상 차림. ⓒ 양파티브이뉴스

우리네가 유난스레 형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 형식에 대한 집착은 그 전통이 연면하다. 일찍이 조선조 현종과 숙종 대에 일어난 서인과 남인 간의 예송(禮訟) 논쟁이 대표적이다. 임금과 왕비의 복상(服喪) 기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은 결국 이념 대결로까지 치달았다.

 

송시열과 노론을 중심으로 연면히 계승되어 온 모화사상, 모든 가치 판단의 준거로서의 중화(中華)는 정작 종주국을 제치고 이 땅에서 난만히 꽃피었다. 그래서 정작 종주국보다 더 완고하고 경직된 형식주의가 이 땅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가위를 앞두고 우리나라 예학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성균관에서 그것도 의례부장이 “차례상을 차리는 데 언급되는 엄격한 규칙은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그간 차례상을 차리는 일로 골머리를 썩였던 이들은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성균관 박광영 의례부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구구절절 옳다. 그런데 정작 차례상으로 골머리를 앓아본 적이 없는 사람도 이 기사 앞에 어쩐지 맥이 빠진다. 죽으라고 정성을 모았는데 정작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차례라는 말 자체가 기본적인 음식으로 간소하게 예를 표한다는 의미”

 

“많은 분이 차례라고 하면 어떤 절차나 법칙이 있지 않으냐고 묻고는 합니다. 하지만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말은 어떠한 유학 서적에도 나오지 않는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책에도 그냥 과일을 올리라는 이야기만 나올 뿐이죠. 어떤 과일을 쓰라는 지시도 없습니다. 중국 문헌에는 바나나를 썼다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조상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여기는 인식도 잘못된 일…….”

“차례 음식은 음복하는 겁니다. 요즘 세상에 사는 후손들이 하는 행사이니 요즘 시대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올려도 예에 맞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음식이 아닌 시기에 맞는 시물(時物)을 올리면 됩니다.”

 

명절 대목장마다 기십 만 원을 들여 제수를 장만해야 했던 주부들, 제수를 마련하고 그걸로 음식을 장만하는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고스란히 명절 스트레스로 삭여야 했던 사람들에겐 억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왜 그걸 이제야 알려주느냐고 되받을 만하지 않은가.

 

건전 가정의례 준칙과 가정의례법이 제정된 것은 1969년이었다. 허례허식을 피하고 검소한 제례를 갖추도록 권장하면서 가정의례는 관혼상제의 복식 같은 부문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둔 듯하다. 그러나 명절 차례는 특별한 날의 의례여서 쉽게 간소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 성균관은 우리나라 유교 문화의 본산이다 . 사진은 성균관 대성전의 모습. ⓒ 위키백과

매해 명절마다 제수 비용이 주요 뉴스가 된 건 그런 까닭이다. 차례상 비용이 20만 원을 상회하는 것은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물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던가 말이다. 차례를 위해선 조기나 문어 같은 어물은 말할 것도 없고, 과일이나 고기와 떡 등 정한 품목을 갖추어야 했다.

 

의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고착된다. 차례상을 진설하는데 정작 예법에도 없다는 갖가지 규칙이 생겨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규칙을 4자짜리 성어로 규범화한 것은 식자들의 호사 취미였을까.

 

효의 본질과 무관하게 ‘형식화’된 의례

 

언제부터 관례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보편적 의례의 준칙으로 자리 잡아 온 것이다. 성균관의 박 의례부장은 이를 옛 전통을 찾고자 하는 생각에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차례상을 올리는 과정에서 ‘올바른 예’가 아닌 ‘허례허식과 관습’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나라 유교 문화의 본산인 성균관에서 이 오래된 관습을 정리해 준 것은 다행이다. 비록 관습적으로 계승해온 의례지만, 그것이 효의 본질과 무관하게 형식화되어 버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홍동백서나 어동육서에 얽매인 의례의 형식이 ‘전례 없는 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한 것은 차례를 형식화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힘이다. 그것은 여전히 전근대의 유습이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뒤늦게 확인하는 ‘근대’라는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에 주희(朱熹)를 신으로까지 흠앙했던 이 나라 유학이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면서 확인한 21세기 유교의 초상일까. 형식보다 정신을 강조한 성균관 박 의례부장의 발언이 새삼스럽게 읽히는 이유다.

 

“유교는 보수를 지향하고 변화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시대에 따라 바꿀 부분은 과감하게 바꾸는 사상이 유교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한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차례를 지내도 예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죠. 하지만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은 내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인 효입니다. 이번 명절은 형식에서 벗어나 이 정신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2015. 9.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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