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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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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고추 농사(Ⅱ) 복합비료로 죽은 모종, 다시 심다 우리 반 교실 앞 통로에다 고추 모종 네 포기씩을 심은 화분 두 개를 갖다 놓은 건 지난 4월 24일이다. 모종을 사며 함께 산 의심스러운 ‘복합비료’가 문제였나 보다. 처음 일주일 가까이는 싱그럽게 자라는 듯하더니만 연휴 끝에 돌아오니 잎이 마르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집에 가져가 화분에 심은 고추에서는 진딧물이 끊기 시작하고……. 결과적으로 처음 심은 고추는 실패였다. 미련을 끊고 뽑아 버리고, 새 모종을 심었다. 지난번에는 화분 하나에 네 포기를 심었는데, 아무래도 달다(경상도에서 ‘간격이 좁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싶어서 세 포기로 줄였다. 처가에서 얻어온 쿰쿰한 냄새가 나는 퇴비를 적당히 흙을 헤집고 넣어주고 며칠이 지났더니 단박에.. 2020. 6. 17.
우리 반 고추 농사(Ⅰ) 신록(新綠), 고추 심기 4월도 막바지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은 일제히 ‘열공’ 모드로 들어갔고, 며칠 동안 출제 때문에 끙끙대다 다시 맞는 날들이 어쩐지 수상하고 어수선하다. 한 학기가 ‘꺾여서’인지 다소 숨 가쁘게 달려온 두 달간의 팍팍한 시간이 불현듯 막연해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가, 블로그를 살피고 돌보는 일도 시들하고 심드렁해졌다. 모두들 바쁜 모양인지 오블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로 느껴진다. 이웃들 집을 한 바퀴 도는 일도 뜨악해지고, 퇴근해서는 아예 컴퓨터 근방에도 가지 않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나는 신록이 그나마 변치 않는 감격을 선사해 준다. 학교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언덕길 오른편은 조그만 숲인데 이 숲은 시방 .. 2020. 6. 17.
고 김관홍 잠수사의 ‘진실’과 산 자의 ‘부끄러움’ ‘구해내지 못한 아이들’ 곁으로 떠난 민간 잠수사 김관홍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그 죽음을 아파하게 될 유족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하기도 하지만 때로 망자의 삶이 환기해 주는 어떤 ‘삶의 진실’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때로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선 자리와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확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1973~2016)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2016년 6월 1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내와 세 아이를 남겨두고 마흔셋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김관홍의 ‘진실’과 산 자의 부끄러움 김관홍은 세월호 참사 발생 7일 만에 수중 선체 수색 작업에 합류해 실종.. 2020. 6. 16.
‘박정희 고향’ 구미에서 첫 민주당 시장 탄생 ‘보수의 본산’ 구미는 왜 민주당 시장을 선택했을까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고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참패했다. 그것은 전국적 상황이지만 유일하게 참패를 면하면서 보수의 ‘성지’임을 거듭 확인한 동네가 대구·경북이다. 대구 시장과 경북도지사에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하면서 기초단체장도 대부분 석권한 것이다. 부산·울산·경남이 뒤집히고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이 선전한다는 뉴스가 이어지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파란’에 대한 기대가 부풀긴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역사나’였다. 교육감도 보수 후보가 당선했는데, 대구는 단일화에 실패한 두 진보 후보가 당분간 시민들의 원성과 매를 감수해야 할 듯하다. 경북은 안동, 김천, 울진, 봉화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 2020. 6. 15.
우리 시대의 부음, 떠도는 죽음들 개인적 슬픔과 불행 너머 ‘시대의 부음’들 에는 ‘궂긴 소식’이란 이름의 부음란이 있다. ‘궂기다’는 ‘(완곡하게) 윗사람이 죽다’(표준국어대사전)라고 하는 뜻의 우리말이다. 이 난에는 사회 저명 인사들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게재를 요청하는 일반인들의 부음도 실리는 것 같다. 숱한 죽음이 거기 실리지만 대부분은 나와 무관한 것들이다. 그나마 낯이나 귀에 익은 이름이면 아, 그이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나와 무관한 죽음이란 세상에 넘치고 넘친다. 망자를 알든 모르든 그 죽음은 숱한 죽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무슨 애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8일 자 신문을 읽다가 나는 문득 한 작가의 부음을 읽었다. 소설가 임동헌 씨. 나는 등허리로 서늘하게 지나가는 전율을 희미하게 느꼈.. 2020. 6. 15.
감자 캐기, 그리고 노략질 기행 장모님의 감자 수확 돕기 어제 처가를 다녀왔다. 고추 하우스 옆에 갈아놓은 장모님의 감자를 수확하기 위해서다. 안노인이 일손도 없이 땡볕에서 감자를 수확한다고 애를 쓰실 것 같아서 아내는 일찌감치 준비했다. 일손을 돕는 것도 돕는 것이지만, 햇감자를 넉넉하게 얻어올 수 있으리라, 하는 것도 가외의 목적이다. 어정거리다 좀 늦게 밭에 나갔더니 그새, 아내와 장모님은 감자를 거의 다 캐놓았다. 거름도 거름이거니와 손을 대지 않아서……. 감자 씨알이 형편없다고 노인은 말씀하시지만, 줄기를 뽑으면 여러 개의 씨알이 거짓말처럼 허연 몸뚱이를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유쾌하다. 이 갯밭에서 이 구근식물이 굵어져 온 시간을 나는 잠깐 생각했다. 감자 씨알은 모두 제각각이다. 주먹보다 굵은 놈부터 아이.. 2020. 6. 14.
6월의 연꽃 구경 근무하는 학교 교정의 연꽃 학교 뒷산 기슭에 연못이 하나 있다. 학교 꽃이 수련(睡蓮)이어서 ‘옥련지(玉蓮池)’라 불린다. 물론 인공으로 조성한 못인데, 드는 물도 빠지는 물도 없으니 그 물의 사정은 짐작할 수 있겠다. 이 학교를 나온 딸애는 서슴지 않고 ‘4급수’라고 말할 정도다. 어느 날 보니 그 4급수 연못에 연꽃이 피고 있었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진흙과 연꽃’이란 비유는 ‘번뇌와 해탈’처럼 양극을 이루지만 사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즉 ‘불이(不二)’라고 하는 불교적 인식의 표현이다. 나는 주변에서 연꽃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다.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처음으로 연꽃을 구경한 게 스무 살이 넘어서인 듯하다. 요즘은 대규모로 연을 재배.. 2020. 6. 14.
“거기 사람이 있다!” 영도조선소 크레인에 오른 노동자 김진숙 지난 주말 부산 영도조선소. 전국 각지에서 희망 버스를 타고 천여 명의 사람들이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파업 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찾았다. 오랜 싸움에 지쳐가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평범한 시민들이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그 연대의 만남은 사측이 동원한 용역의 폭력에 얼룩졌다고 한다. 경찰은 시종 사태를 방관했고, 보수언론은 사실을 왜곡 보도함으로써 ‘희망 버스’와 ‘시민 연대’가 가진 의미를 외면했다. 에 실린 ‘이명수의 사람그물’ “그래야 사람이다”가 전하는 경위다. “……한진 파업노동자 가족의 눈물 고백은 가슴이 저리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끼리 투쟁하다 우리끼리 말라죽는 거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매일 사원아.. 2020. 6. 14.
“말려 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달라” [서평] 밀양 구술 프로젝트 … ‘슈퍼 갑’ 국가에 맞선 할매 할배 외국으로 이주하지 않는 한 제가 나고 자란 나라(국가)를 부정할 수 있는 백성은 없다. 속지주의니 속인주의니 하는 복잡한 개념을 보탤 필요 없이 사람은 태어나면서 절로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 그것도 개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주어지는. 그래서일까. 여느 사람들의 삶에서 국가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납세나 병역, 교육과 같은 의무도 습관처럼 받아들일 뿐, 개인이 구체적 문제의 당사자로서 국가를 상정하는 일은 드물다.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대회 같은 국가 대항의 스포츠 경기 등에서 국가적 동일성을 인식할 때 나라는 때로 구체적이고 친근한 이웃의 얼굴로 돌아올 뿐. 그러나 국가가 요령부득의 이유로 내 신체나 거.. 2020. 6. 13.
6월에 익어가는 것들, 혹은 ‘화해와 평화’ 6월, 익어가는 꽃과 열매, 그리고 남북의 화해 6월, 익어가는 것들 6월이다. 한동안 다투어 피어나던 꽃들도 고비를 맞았다. 찔레에 이어 온 동네를 붉게 물들이던 장미꽃이 아마 동네에서 만난 마지막 봄꽃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불타오르기 시작한 장미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시작하여 인근 공립 중학교, 그리고 산 아래 이어지는 주택가 담장으로 번져갔다. ·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이미 곁에 당도한 봄을 주절댄 게 지난 15일이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3월의 막바지, 이제 꽃은 난만(爛漫)하다.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꽃봉오리가 벙글고 � qq9447.tistory.com · 동네 한 바퀴 ② 살구와 명자.. 2020. 6. 12.
‘고객님’에서 ‘사장님’까지 - 우리말의 ‘호칭’ 생각 두루뭉술한 우리말의 ‘호칭어’ 접객업소나 가게 따위에서 ‘사장님’으로 불린 경험은 중년 이후의 남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글쎄, 그런 호칭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실 ‘사장’과는 무관한 사람이 그런 호칭을 들어야 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런 호칭을 선택한 것은 일종의 예우다. 그가 사장이든 아니든 그건 별문제가 아니다. 이 호칭은 본인의 지위와는 무관한 ‘말치레(립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장’으로 불린 사람이 이걸 가지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껏해야 지나가는 말로 ‘나 사장 아닌데…….’ 하고 얼버무리는 게 고작인 것이다. 사장님, 아버님… 나는 집 앞의 이용소에서 10여 년 가까이 ‘사장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었다. 상.. 2020. 6. 12.
아이 업은 저 여인, 어딜 가는고 안동 서지리 ‘서낭당’과 ‘선돌’을 찾아서 소싯적 일이다. 이웃 마을에서 산 너머 동네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신작로로 가면 금방이었지만 자동차도 드물고 어지간한 거리라도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밋밋한 오르막 위 산등성이에 일부러 만든 듯한 묘한 돌무더기가 하나 있었다. 사람마다 거기다 돌멩이 하나씩을 던져 넣고 지나갔다. 그 마을 아이들은 그게 ‘아기 무덤’이라고도 했고, ‘귀신 무덤’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거기다 돌 하나라도 던져넣고 가지 않으면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우리를 은근히 을러대곤 했다. 지금은 아마 그 길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이 들이닥치면서 시골에 남아 있었던 공동체의 흔적 따위는 거짓말처럼 지워졌으니까. 그 미스터리의 돌무더기가 .. 2020.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