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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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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이래? -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들 ‘번역 투’의 국적이 의심스러운 문장 우리 민족이 더는 혈통의 순수성을 주장할 수 없듯, 우리말도 어차피 순혈은 아니다. 숱한 이민족의 침입을 겪었고, 더러는 실질적으로 그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말에 녹아든 이민족의 말도 여럿이다. 고려 시대에 실질적으로 우리의 지배했던 몽골도 그렇고 개화를 전후한 시기의 일본과 일부 서양 나라도 그렇다. 그러나 개화와 해방 이후 물밀듯 들어온 외국어-특히 영어와 일본어-와 접촉하면서 생긴 우리말의 변화는 훨씬 심각하다. 만남이 잦아지면서 원래 우리말에는 없었던 생소한 어법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흔히 이를 두고 ‘번역 투’라고 하는데 이런 국적이 의심스러운 문장을 쓰면서도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때로는 우리는 사.. 2020. 7. 8.
‘아내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에 숟가락을 걸치다 [퇴직 이후, 생활의 복원] 나의 시간이 가고 아내의 시간이 왔다 2016년 2월, 32년간의 교단생활에서 물러났다. 정년이 남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됐다는 걸 깨닫고 주저 없이 학교를 떠났다. 물론 그건 남은 동료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4년, 생계를 위한 노동과 그것이 규정하는 일과에서 벗어나 나는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다.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다, 고 생각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자유라기보다는 ‘일상’과 ‘생활’이었다.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하는 공간이었을 뿐인 집이 비로소 내 삶의 가장 주요한 공간이 되었다. 퇴직 후 내가 한 일은 내 일상과 생활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나는 늘 일해 가용(家用)을 벌어왔고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2020. 7. 7.
‘노숙(露宿)’의 기억 중앙인사위원회 앞 노숙 항의 지난 7월 25일 오후, 나는 복원된 청계천 시작점 옆, 한 빌딩 앞 인도에 마련된 야외용 매트에 동료 50여 명과 함께 앉아 있었다. 길 건너 동아일보사 건물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보수의 성채인 양 위압적으로 서 있었고, 끊임없이 오가는 행인들 너머 인도턱에 바투 세워 놓은 이동경찰서 차량(이른바 ‘닭장차’) 세 대가 차도에서 달려드는 매연을 막아주고 있었다. 지휘관인 듯한 사복 차림의 중년 사내가 주변을 서성거렸고 헬멧을 덮어쓴 대여섯 명의 의경들이 우리가 등지고 있는 건물의 현관 앞에서 방패를 앞세우고 마치 로마의 검투사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무표정한 눈빛 너머 현관 입구에는 ‘중앙인사위원회’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랬다. 우리는 중앙인사위원회에 복직 교사 원상회복을.. 2020. 7. 6.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노벨문학상 영화 ,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모니터 화면으로 영화 를 다시 보았다. 상영 시간이 무려 3시간 12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열네 살 때도 이렇게 길었던가, 그러나 거짓말처럼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의 어떤 장면에선 어렴풋하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맞아, 저랬어! 그러다가 문득 뒷날 이 영화를 새로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의 기억이란 기실 그리 믿을 게 못 되지 않은가. 나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성장의 어떤 길목에서 나는 닥터 지바고를 다시 만났을지도 모른다. 다시 본 영화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문득 나는 오랜 시간의 강을 이미 건너왔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미 알 만큼 아는 이야기니 새로울 게 무어 있겠는가.. 2020. 7. 5.
선돌, 구실 잃은 옛 ‘바위’들은 외롭다 안동 와룡면의 ‘자웅석’과 ‘선돌’ 을 찾아서 안동에 십 년 넘게 살아왔지만, 아직 안동에 대해선 모르는 게 더 많다. 이 경북 북부의 소도시가 드러내는 오늘의 모습을 살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서울의 2배가 넘는 땅덩이 곳곳에 숨은 이 땅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안동이 2006년부터 써 온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다. 글쎄, 안동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구호는 다소 민망한 구호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외부인들에게는 좀 다르게 다가가는 모양이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는 국가 브랜드 선정위원회가 전국 기초·광역단체 246곳의 브랜드를 평가한 ‘2010 국가 브랜드 대상’에서 전통문화 브랜드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니 말이다. 안동은 ‘한.. 2020. 7. 4.
우리나라 좋은 나라, 풍경 2제 [풍경 1] ‘최저임금’ 인상, 1,090원과 30원 사이 30원이냐, 1,090원이냐를 두고 다투던 최저임금 심의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지 못한 채 합의 시한인 어젯밤 자정을 넘겼다고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4,320원, 노동계의 요구대로 1,090원을 인상하여도 5,410원이다. 말하는 것조차 민망한 ‘30원’은 재계의 인상안이다. ‘비지니스 프렌들리’나 감세 혜택을 온전히 누린 재계가 내놓은 이 30원은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잊은 부끄러운 수치다. 이들은 마치 노동의 대가를 달걀값이나 설탕값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평균 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고작 32%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 중 16위에 그친다. 2011년 최저임금인 시급 4,320원으로는 밥 한.. 2020. 7. 3.
<서머타임 킬러>의 칼 말덴(Karl Malden) 지다 1912~2009.7.1. 오늘 아침 ‘궂긴 소식’은 미국의 원로 배우 칼 말덴(Karl Malden, 1912~2009)의 부음을 알린다. 향년 97세. 신문은 그가 ‘1950년대와 60년대를 풍미’한 배우였다고 전하지만, 나는 칼 말덴이 출연한 영화 몇 편으로만 그를 기억한다. 그가 출연한 작품 목록을 보면서 나는 아, 잠깐 탄성을 질렀다. 1970년대 흑백 TV 시절에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 등에서 만났던 영화 나, 도 그의 출연작인데, 정작 말론 브랜도의 포스가 너무 강렬했는지, 거기서 칼 말덴을 보았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다. 도시의 중학교로 진학해서 ‘문화 교실’로 관람한 첫 영화가 이다. 샤이안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싸움이 소재인 영화였는데, 정작 주연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보다 리처드.. 2020. 7. 1.
다시 ‘완장’을 생각한다 만만찮은 권력의 상징 ‘완장’ 난데없이 ‘완장’이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이게 된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의 일인 듯하다. 정권 교체기라면 ‘권력의 이동’이란 상식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 들어 뜬금없이 ‘완장’이란 낱말이 쓰이게 된 맥락은 좀 ‘거시기’하다. 권력을 장악한 정당이 정무직을 나누어 챙기는 것은 일종의 ‘전리품 배당’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걸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그런 ‘자리를 챙겨주기’ 위하여 법적으로 임기가 남은 전 정권 인사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내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완장’ 소동, 권력 이동기의 서글픈 소극 KBS 정연주 사장도 그렇지만, 현 정부 집권 이래,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에서 위와 같은 사례가 잦았다. 유인촌 장관이 그 ‘기관장 해임’에 앞장서면서 이른바 ‘완장.. 2020. 6. 30.
‘마누라’와 ‘와이프’, 우리 ‘아버지’와 너의 ‘어머님’ 마누라와 와이프 얼마 전, 어떤 인터넷 언론 기사에서 아내를 ‘와이프’라고 쓴 걸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에 게재된 기명 기사에 ‘와이프’가 여러 차례 쓰였다. 개인 블로그도 아닌 공식 기사에 당당히 쓰인 ‘와이프’는 그러나 천박하고 무례해 보였다. 신문이나 방송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라는 사실을 기자는 깜빡 잊었던 것일까. 공식 기사에서 그런 외국어를 쓰는 게 실례라는 걸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 기자 세대에서는 그 정도는 일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공적 장소에서 자신의 처를 가리키는 말은 ‘처’나 ‘아내’를 쓰는 게 맞다. 물론 ‘집사람’이나 ‘안사람’을 쓸 수도 있지만, 이는 여성의 성 역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 적절.. 2020. 6. 28.
윈도10에서 두벌식/세벌식 변환 ‘파워업’ 쓰기 윈도(Window) 10에서 두벌식과 세벌식 바꾸기 컴퓨터에 키보드를 이용하여 한글을 입력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사람들 대부분이 쓰는 ‘두벌식’과 소수의 이용자가 선택하고 있는 ‘세벌식’이다. 그런데 두벌식을 쓰는 이들은 이 ‘두벌, 세벌’의 뜻조차 잘 모른다. 블로그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한글 이야기’를 몇 차례 쓴 것은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세벌식, 한글 이야기(1) 세벌식 , 한글 이야기(1) 세벌식 글자판과 한글 입력 타자기를 처음 만지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먹지를 대고 공문서를 쓰고, 등사기로 주번 명령지를 밀던, 특전대대 행정서기병 시절이다. 어느 날, 중고 레밍턴 qq9447.tistory.com 두벌식 오타, 한글 이야기(3) 두벌식 오타, 한글 이야기(3) 요즘이야 모두 컴퓨.. 2020. 6. 26.
‘이문열’, 찢을까 살라버릴까 극우 냉전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어정쩡한 우파 이데올로그 이문열 작가 이문열이 화제다. 평역한 를 완간한 뒤 ‘촛불집회’를 ‘위대한 포퓰리즘’이라고 말할 때부터 이 양반이 잘하면 ‘한건’ 하겠다는 조짐은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불과 한 일주일 만에 시민들의 촛불을 ‘불장난’으로 헐뜯었고, 뜬금없이 ‘의병’을 거론하면서부터 온갖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부친은 해방 공간에서 좌익 활동에 참여한 이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와 어린 남매, 뱃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막내를 버리고 사회주의를 좇아 월북’했다. 냉전 이데올로기와 ‘레드 콤플렉스’가 개인과 일가의 삶을 갈가리 찢어 놓아 버린 세월이 우리 현대사였을진대, ‘빨갱이 자식’으로 세상살이를 배웠던 작가의.. 2020. 6. 25.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가 ‘페미니스트’? 의 이상한 ‘페미니스트’ 풀이 국립국어원이 의 2015년 2분기 수정내용을 공개했다. 수정한 낱말은 표제어와 관용구를 추가하거나 뜻풀이를 추가 또는 수정한 경우 등 모두 19개다. 그중 몇몇 눈에 띄는 낱말들을 살펴보았다. ‘도긴개긴’도 사전에 올랐다 표제어로 추가된 낱말 중에는 ‘도긴개긴’과 ‘도찐개찐’이 있다. 명사 ‘도긴개긴’에는 “윷놀이에서 도로 남의 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나 개로 남의 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비슷비슷하여 견주어 볼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붙었다. 이번 수정은 ‘도긴개긴’과 ‘도찐개찐’이 국어사전 등재와 무관하게 이미 일상에서 매우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현실을 추인한 것이다. ‘도.. 2020.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