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

우리 시대의 부음, 떠도는 죽음들

by 낮달2018 2020. 6. 15.
728x90

개인적 슬픔과 불행 너머 ‘시대의 부음’들

▲ 용산참사로 희생된 고인들. 모두가 주거 세입자나 영세 상가 세입자들이다.

<한겨레신문>에는 ‘궂긴 소식’이란 이름의 부음란이 있다. ‘궂기다’는 ‘(완곡하게) 윗사람이 죽다’(표준국어대사전)라고 하는 뜻의 우리말이다. 이 난에는 사회 저명 인사들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게재를 요청하는 일반인들의 부음도 실리는 것 같다.

 

숱한 죽음이 거기 실리지만 대부분은 나와 무관한 것들이다. 그나마 낯이나 귀에 익은 이름이면 아, 그이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나와 무관한 죽음이란 세상에 넘치고 넘친다. 망자를 알든 모르든 그 죽음은 숱한 죽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무슨 애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8일 자 신문을 읽다가 나는 문득 한 작가의 부음을 읽었다. 소설가 임동헌 씨. 나는 등허리로 서늘하게 지나가는 전율을 희미하게 느꼈다. 물론 나는 그를 모른다. 그가 ‘민통선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썼다는 것도 부음란에서 읽었다. 그러고 보니 그건 귀에 익은 작품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만나는 숱한 죽음들

 

▲<한겨레>에 실린 부음

소설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이름 모르는 소설가가 너무 많다’는 시건방진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좀 어이없다. 내가 전율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한 일주일 전쯤에 그가 쓴 책 한 권을 샀기 때문이다. ‘사진 찍는 소설가 임동헌의 디카 특강’이라는 부제가 붙은 <디카 씨>라는 책이다.

 

올해 클럽활동 부서로 나는 ‘디카반’을 열었는데, 아이들 11명이 왔다. 무언가 교재를 읽고 지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 산 책이다. 50% 할인한 데다가 에세이 집인 <풍경>이라는 소책자도 끼워주었다. 나는 <디카 씨>를 띄엄띄엄 필요한 부분만 읽었다. 그는 사진을 찍은 경력이 꽤 되었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한겨레신문>에서 그의 부음을 읽으면서 나는 내 책상 위에 얌전히 모셔 둔 그의 책 두 권을 생각했다. 이런! 그가 죽었다고? 아니 나이가 얼만데……. 예상대로 그는 쉰 하나, 젊다면 젊디젊은 나이다. 폐암이 그를 데려갔다고 한다. 나는 잠깐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까운 나인데…….

 

그러나 그게 다였다. 글쎄, 그건 그가 내가 익히 아는 사람, 이를테면 황석영이나 공선옥이었다 해도 다르지 않았을 거였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숱한 죽음들 가운데 하나다. 어떤 죽음은 내게 사무치기도 어떤 죽음은 심드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다음 날에는 한 후배가 부친상을 당했다. 향년 78세, 좀 더 살아계셔도 좋은 연센데 세상을 버렸다. 밤늦게 문상했는데, 늘 그렇듯 장례식장에 가라앉은 슬픔의 분위기 따위는 없었다. 노령이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니, 그게 조금 일찍 오거나 조금 늦게 오거나 하는 차이일 뿐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판에 박힌 정중한 조사를 주고받긴 하지만, 피차간에 알고 있다. 거기엔 수사 이상의 의미가 거의 없다는 걸. 오히려 망자를 매개로 산 사람들의 우정과 관계가 더 돈독해질 뿐이라는 걸. 일상 속의 죽음, 자연사나 노환 끝에 맞는 죽음은 그렇게 일상의 갈피 속에서 잊히는 것이다.

 

우리가 애달프고, 안쓰럽고 안타까이 여기는 죽음은 그런 일상의 질서에서 떨어져 있는 죽음이다.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 비명에 스러지거나 너무 이르게 찾아온 죽음, 아이나 젊은이에게 다가온 죽음은 슬프고 참담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일상의 주변에 이웃한 죽음이라면 더더구나.

 

그러나 내가 작가의 죽음을 안타까움만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의 죽음이 개인적인 것이었던 탓이리라. 내가 그와 생전에 어떠한 교유도 나누지 못한 탓도 있다. 그의 글이라곤 최근에 읽은 디카 특강 몇 자락이 다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교직한 세계를 만나지도 그가 창조한 삶에도 동참하지도 못했다. 결국, 고인과 나는 아무것도 공유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적 슬픔과 불행 너머 ‘시대의 부음’들

 

의례적인 부음란에 실린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사건으로 다가온 죽음을 최근 우리는 여럿 겪었다. 이른바 ‘정치 검찰’과 무책임한 언론에 의한 ‘정치적 타살’로 일컬어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용산참사 때 유명을 달리한 철거민들, 그리고 화물연대 박종태 지부장의 죽음이 그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러나 전혀 새로운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선 땅과 삶의 실존을 명징하게 드러내면서 그가 지향했던 가치를 성찰하게 했다. 그는 우리 이웃도 작가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살았던 삶의 단면을 통하여 그와 숱한 가치와 지향을 공유했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 고 박종태(1971∼2009) ⓒ화물연대

사람들에게는 쉬 잊혔겠지만, 새해 벽두에 용산구 한강로 2가의 건물 옥상 망루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다 숨져간 철거민들의 죽음은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아픈 표지(標識)로 다가온다. 그들의 희생은 부유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집권 여당에 의해 도시 테러로 매도당하고 남은 가족들마저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영면(永眠)에 들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 여겼던 화물연대 박종태는 자기 자신의 이해가 아니라, 택배 노동자 78명의 복직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화물연대와는 ‘30원’도 협상할 수 없다는 자본의 강경 대응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뒤늦게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력과 자본의 공격은 그것 자체로 폭력이다. 그것은 형식적 법 논리에 기대어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고 갈데없는 민중들의 삶을 압박하면서 양극화가 저들만의 새로운 질서라는 것을 은연중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 기득권의 시각에 따르면 철거민들은 이른바 그 ‘신질서’를 거부하는 ‘떼쟁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용산에서 일어난 비극적 죽음은 이 화해할 수 없는 간극 사이에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도시재개발 세력과 한 몸이 된 ‘공권력’이 벼랑에 몰린 가난한 세입자들을 밀어 버렸다고 한 일각의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많은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우리 시대의 가치와 지향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용산의 죽음에서 우리 시대의 야만적 자본과 권력의 결탁을 확인하고 그것이 이 시대 삶의 현주소라는 걸 새삼스럽게 되새긴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들의 죽음은 개인적 슬픔과 불행, 그 너머에 있다.

 

▲ 고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

작가와 후배 부친의 부음이 개인적 슬픔과 불행을 환기하는 것이라면 이들의 죽음은 개인사적 불행과 비극을 넘어 한 시대의 한계와 과제를 동시에 드러내 준 셈이다. 노무현의 그것이 여전히 후진적인 이 땅의 정치문화의 전근대성을 드러내 준 것이었다면 용산에서 숨져 간 사람들의 죽음은 이 ‘묻지 마’ 신자유주의 추종이 창출해 낼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는 것이다.

 

어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 국민적 애도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었고 그를 향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가운데 서거 이후, 바야흐로 새로운 전직 국가원수 죽이기의 에필로그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떠도는 죽음들

 

증오와 배제의 문법은 이 땅의 천박한 정치문화의 본질 같아 보인다. 정치가 ‘차선’과 ‘대안’의 모색이라는 평범한 명제는 무수히 오가는 증오와 배제의 수사 앞에서 진작 빛을 잃었다. 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 다투는 산 사람의 공방은 그 정도를 넘은 지 오래다.

 

노무현, 그리고 박종태와 용산 철거민. 이 두 죽음의 무게를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누가 더 무겁고 누가 덜 가볍다는 논의는 그저 세상의 논리일 뿐, 이 세상에 무겁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한 죽음 앞에서 다른 죽음은 묻히고 잊히었다. 한 죽음에 쏟아진 500만의 눈물과 애도 가운데 단 1할이라도 다른 죽음에 대한 위무가 되었다면…, 하는 가정도 부질없기는 마찬가지다.

 

140일이 넘도록 영안실 냉동고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는 다섯 사람의 죽음과 10살, 7살배기 남매를 남기고 떠난 서른여덟 살 먹은 사내의, 잊혀 가고 떠도는 이 시대의 죽음들을 생각하며 뒤늦게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훔쳐낸다.

 

 

2009. 6. 15.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