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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거기 사람이 있다!”

by 낮달2018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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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조선소 크레인에 오른 노동자 김진숙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오른 영도조선소 크레인 ⓒ 울산노동뉴스
▲ 희망 버스로 한진중공업을 찾았던 시민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지난 주말 부산 영도조선소. 전국 각지에서 희망 버스를 타고 천여 명의 사람들이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파업 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찾았다. 오랜 싸움에 지쳐가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평범한 시민들이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그 연대의 만남은 사측이 동원한 용역의 폭력에 얼룩졌다고 한다. 경찰은 시종 사태를 방관했고, 보수언론은 사실을 왜곡 보도함으로써 ‘희망 버스’와 ‘시민 연대’가 가진 의미를 외면했다. <한겨레>에 실린 ‘이명수의 사람그물’ “그래야 사람이다”가 전하는 경위다.

 

“……한진 파업노동자 가족의 눈물 고백은 가슴이 저리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끼리 투쟁하다 우리끼리 말라죽는 거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매일 사원아파트에 모여서 울었습니다.” 희망버스는 그렇게 울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들은 홀로가 아니라고 손 내미는 행사였다.

 

……한진 노동자 가족들은 그곳에 왔다 돌아가는 이들에게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있다’는 노동자 가족들의 당부가 아프게 가슴에 걸린다. 그렇다. 거기 사람이 있다. ‘소금 꽃나무’의 김진숙만이 아니라, 파업으로 저항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그들의 가족이 있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노동자 가족들이 느꼈을 서러움과 고독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기 사람이 있다!…….

 

2003년이니 8년 전이다. 그해 10월, 같은 장소에서 김주익 열사(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가 구조조정 반대·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촉구하며 크레인 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한 심야 음악방송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가 새삼 되살아나고 있다.

 

이듬해 불의의 사고로 고인이 된 주인공은 MBC의 정은임 아나운서. 그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진행하면서 김주익 열사의 죽음을 전하고 외롭게 싸우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이미 8년이나 지난 일인데 들어보는 그의 목소리는 어제처럼 생생하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중에서

 

▲ 고 김주익(1963~2003) 열사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마지막 멘트는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2003년이면 참여정부 때다. 그녀는 심야 음악방송을 진행하면서 멘트에다 시대의 아픔을 담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진보한 이 시대에는 방송으로나마 그런 위로를 기대하기조차 언감생심이다.

 

8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김주익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구조조정 반대를 외쳤지만, 노동자의 삶은 그대로다. 또다시 구조조정, 해고의 칼바람이 노동자들을 덮쳤고, 그가 올랐던 크레인에는 이제 김진숙이 올라 있다.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났다. 어떤 가시적 변화도 없다. 자본과 권력은 노동자를 향해 돌팔매질을 열심히 할 뿐.

 

김주익 열사는 아이 셋을 남기고 갔다. 그 아이들에게 사줄 휠리스 신발(바퀴 달린 신발)을 마음에 내려놓지 못하고 그는 갔다. 남은 아이들에게 그것보다 안전한 신발을 안긴 이는 일하는 어머니와 그 동료였다. 한밤의 아나운서는 그 아픈 신발의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 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 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멘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 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 2003년 11월 18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중에서

 

김주익도 가고, 정은임도 갔다. 자본이 점령한 세상, 권력이 자본 앞에 무릎 꿇은 세상에 어디서 정은임의 따뜻한 위로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1천여 명의 시민은 희망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을 찾았다. 20대에서 80대까지 하나로 내민 연대의 손길은 동시대인의 위로고 격려다.

 

노동자들과 작별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우리 시대의 숱한 정은임이야말로 얼마나 따뜻하고 살가운 격려고 위로인가! 칼럼 끝에서 이명수 마인드 프리즘 대표가 나직하게 뇌까린 말은 그래서 더 크고 뜨거운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입이 있고 손이 있고

머리가 있어 말할 수 있고

행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에

함께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야 사람이다.”

 

 

2011. 6.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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