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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감자 캐기, 그리고 노략질 기행

by 낮달2018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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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감자 수확 돕기

▲ 참외 상자에 담은 감자.  이것 말고도 비닐봉지로 그만큼을 가져왔다.
▲ 씨알이 고르지 않았지만,  수확의 기쁨은 다르지 않았다.
▲ 이처럼 씨알이 고르지 않았다. 줄기를 뽑으면 익은 감자가 쏟아지는 감자 캐기는 즐겁고 행복했다.

어제 처가를 다녀왔다. 고추 하우스 옆에 갈아놓은 장모님의 감자를 수확하기 위해서다. 안노인이 일손도 없이 땡볕에서 감자를 수확한다고 애를 쓰실 것 같아서 아내는 일찌감치 준비했다. 일손을 돕는 것도 돕는 것이지만, 햇감자를 넉넉하게 얻어올 수 있으리라, 하는 것도 가외의 목적이다.

 

어정거리다 좀 늦게 밭에 나갔더니 그새, 아내와 장모님은 감자를 거의 다 캐놓았다. 거름도 거름이거니와 손을 대지 않아서……. 감자 씨알이 형편없다고 노인은 말씀하시지만, 줄기를 뽑으면 여러 개의 씨알이 거짓말처럼 허연 몸뚱이를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유쾌하다. 이 갯밭에서 이 구근식물이 굵어져 온 시간을 나는 잠깐 생각했다.

 

감자 씨알은 모두 제각각이다. 주먹보다 굵은 놈부터 아이들 구슬보다 조금 큰 놈까지. 참외 상자에다 굵기별로 나누어 담고, 잔챙이는 버린다. 이런 건 아무 소용이 되지 않는다며 작은 씨알을 밭 너머로 집어 던져 버리는 장모님의 모습은 위대해 보인다. 그건 몸소 땀 흘려 일구고 거두는 사람들만이 오롯이 가진 권리이다.

▲ 장모님의 고추 하우스. 웃자란 고추의 키가 가슴팍까지 차오른다.
▲탐스럽게 열린 고추. 벌써 빨갛게 익은 것도 숱하다.

장모님의 하우스를 한 바퀴 도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하우스 안쪽에 도사린 뜨끈뜨끈한 기운에 숨이 막히는 것이다. 하우스 안에는 고추가 자라고 있다. 내 텃밭에 상기도 힘겹게 자라고 있는 고추와는 견줄 수 없는 것이다. 키도 거의 가슴께까지 오고, 길쭉하고 속이 찬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더러는 빨갛게 익은 녀석들도 더러 눈에 띈다.

 

하우스 끄트머리엔 재미 삼아 심었다는 토마토와 오이가 실한 열매를 달고 서 있다. 토마토는 웃자라 하우스에 구멍을 내고 밖으로 줄기를 내어놓았다. 장모님은 주저 없이 오이 몇 개를 따서 비닐봉지에 넣는다. 짬을 내지 못해 버려둔 부추밭에서 부추를 베어서 넣고, 이제 겨우 여물고 있는 애호박 서너 개도 챙긴다.

 

두 시간쯤 후에 작업이 끝났다. 장모님의 돌아갈 딸네를 위해 중간 씨알의 감자 한 상자, 그리고 굵은 놈으로 큰 봉지 하나를 챙기지만, 딸은 농사지은 이가 좋은 걸 드셔야 한다고 그걸 반 너머 덜어놓는다. 그래도 결국 우리가 노략한(?) 건 두 상자에 가깝다. 오이와 애호박과 대파, 들깻잎까지 알뜰히 챙겨 주신다. 아내는 돌아오는 길에 인근 밭에서 수확한 양파 한 자루까지 사서 차에 싣는다.

 

집으로 돌아가 장모님께서는 다시 가정용 정미기를 돌려 쌀 반 가마가량을 찧어 주신다. 저녁상에는 내가 좋아한다고 귀한 갈치자반과 돼지고기 수육이 오른다.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부추전도 곁들여진다. 없는 살림에 늘 이렇게 맏사위라고 챙기시는 노인, ‘빙모(聘母)’ 앞에서 나는 부끄럽고 황송하기만 하다.

 

다음 주에 쌀값하고 부쳐 드릴게요. 아내는 코 먹은 목소리로 노인에게 치하하고 우리는 출발했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아무리 딸년이라도 좋은 거만 골라주는 거, 나는 못 하우. 아내는 우정 어머니에게 들으라고 투정이지만 장모님은 무심하게 그걸 들어 넘기신다. 여든을 바라보는 상노인인데 여전히 일을 놓지 못하는 장모님 앞에 채소며 곡식을 가득 싣고 떠나는 딸과 사위는 그저 땅의 과실들을 노략질하는 ‘도적’일 뿐이다.

▲ 감자밭 옆 쇠비름. 말 이빨을 닮은 이 나물은 고추장으로 무쳐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 오늘 아침 식탁에 오른 쇠비름나물. 옛 맛 그대로였다.

 

2008. 6.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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