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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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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업은 저 여인, 어딜 가는고 안동 서지리 ‘서낭당’과 ‘선돌’을 찾아서 소싯적 일이다. 이웃 마을에서 산 너머 동네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신작로로 가면 금방이었지만 자동차도 드물고 어지간한 거리라도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밋밋한 오르막 위 산등성이에 일부러 만든 듯한 묘한 돌무더기가 하나 있었다. 사람마다 거기다 돌멩이 하나씩을 던져 넣고 지나갔다. 그 마을 아이들은 그게 ‘아기 무덤’이라고도 했고, ‘귀신 무덤’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거기다 돌 하나라도 던져넣고 가지 않으면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우리를 은근히 을러대곤 했다. 지금은 아마 그 길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이 들이닥치면서 시골에 남아 있었던 공동체의 흔적 따위는 거짓말처럼 지워졌으니까. 그 미스터리의 돌무더기가 .. 2020. 6. 11.
2인칭 대명사 ‘당신’ 정치권의 2인칭 대명사 ‘당신’ 논란 요즘 ‘당신’이란 낱말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권발 소식이다. 거두절미, 요점만 따서 말하면 이렇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충청도에서 열린 당원 보고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국정원과 단절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 그래야 당신의 정통성이 유지된다.” 이 발언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 의원이 대통령에게 쓴 ‘당신’이라는 지칭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제2의 귀태’ 발언이라며 반발,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해찬 의원 측은 “‘당신’은 상대방이 없을 때 높여 부르는 말이지 막말이 아니”라고 일축했다고. 당신, ‘막말’인가, ‘높임말’인가 여기까지는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정치적 공방으.. 2020. 6. 11.
17세기 ‘후미에’, 21세기 한국에 오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검증’하라는 어떤 국회의원 현 정부 들어 이른바 ‘퇴행’이라고 할 만한 일이 하나둘이 아니긴 하다. 2012년 여름, 이 나라 역사는 바야흐로 된통 뒷걸음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6월 9일 자 의 사설은 새누리당이 연출하는 이른바 ‘매카시즘 광풍’을 빗대어 ‘6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질책한다. 1950년대 미국 정가를 휩쓴 ‘매카시즘 광풍과 판박이’라면서 말이다. ‘종북’을 후미에 식으로 ‘검증’하자? 이 ‘시대착오적 종북몰이’의 한복판에 새누리당의 한기호라는 국회의원이 있다. 그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종북 의원을 가려낼 수 있다”고 하며 “북핵 문제, 3대 세습, 주한미군 철수,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의 문제에 질문을 하면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단다. 그는 그 방법으로.. 2020. 6. 10.
‘예민한 살갗’의 외침 - 6·9 작가선언 작가들, 정치검찰과 수구 언론을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로 고발 시인, 작가 등 문인들이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땅에서 문인들의 현실 참여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졌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투쟁은 가장 좋은 예다. ‘절대 자유’를 추구하긴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시대와 현실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소설 의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는 시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책무를 ‘잠수함의 토끼’에 빗댔다. 그것은 사회적 위기를 확인하는 지표로 약자의 고통을 이용한다는 비유로 흔히 이해된다. 지금이야 기술 발달로 잠수함 내부의 산소 밀도를 쉽게 점검할 수 있지만, 작가가 잠수함 승무원이던 때만 해도 산소 감소의.. 2020. 6. 9.
‘고맙다’는 되고 ‘미안하다’는 안 된다 ‘고맙다’와 ‘미안하다’의 위계(位階) ‘고맙다’와 ‘감사하다’ 사이엔 뜻 차이도, 위계도 없다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의 손석희가 ‘감사합니다’ 대신 ‘고맙습니다’를 쓴다는 점을 가리키며 “‘고맙다’는 말 쓰는 것이 건방진 게 아니라는 점 인식할 필요 있다”고 환기해 주었다. [관련 기사 : 손석희는 왜 “감사합니다” 말고 “고맙습니다”를 쓸까] 나도 고마움의 인사는 ‘고맙습니다.’로 한다. 의례적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사를 진행할 때도, 여럿을 대표해 인사를 할 때도 ‘고맙습니다’만 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고맙다’보다 ‘감사하다’가 더 격식적인 성격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맙다’는 우리 고유어고, ‘감사(感謝)하다’는 한자어지만 이 두 낱말이 각각 뜻하는 바는 다르지 .. 2020. 6. 9.
멋있지 않아도 좋다! 건강하게 돌아와다오! 해병 신병 교육훈련 수료식 참관, 면회기 ‘그래도 군대는 가야 한다’는 ‘숙맥’ 조카[기사 바로 가기]는 기어코 입대했다. 조카는 군대를 마치고 복학하는 타이밍까지 고려해 육군에 응모했다. 그러나 지원자가 몰리는 바람에 입대에 실패한 조카는 궁여지책으로 해병대에 지원했다. “하필이면 해병대야. 그러잖아도 고생스러울 텐데 굳이 해병대를 지원할 게 뭐람.” 친지들의 근심도 당연히 컸다. 한 다리를 건너긴 했어도 나 역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도 전의 기억이긴 하지만 나도 해병에 대한 인상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렀다. 군대도 달라졌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전히 군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트라우마가 겹겹이 묻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도 녀석의 입대 결심을 말리.. 2020. 6. 8.
무기수 김신혜 앞에서 멈춘 ‘정의’ [서평] 박상규·박준영의 르포르타주 살아가면서 누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우리는 무심코 남의 물건을 동의 없이 가질 수 있고, 누군가를 속이고 위협하거나 때려서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행위의 결과가 곧 절도, 사기, 상해, 살인이라는 형사 범죄다. 그러나 소시민 대부분은 평생 그런 상황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감옥이나 법원은 말할 것도 없고 파출소에조차 한번 불려가는 일도 없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긴 하지만 누구나 무엇을 훔치고, 누군가를 속이거나 때리고 죽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법과 정의’에 대한 ‘로망’과 현실 모두에게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그런 상황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2020. 6. 7.
팔자에 없는 ‘종합소득세’를 내다 소액의 원고료 수입 때문에, ‘종합소득세’ 자진 신고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모든 봉급생활자처럼 ‘세금’에 관해선 나는 꿀릴 게 없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소득은 얼음같이 드러나 있는, 이른바 유리 지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월 세금을 공제한 급여를 받고, 연말에는 원천징수한 세액의 과부족을 정산한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자의는 아니지만, 가장 모범적인 납세자인 셈이다. 봉급생활이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소득에 매기는 세금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연말정산 때면 으레 가짜 약값 영수증 따위를 만들어 제출하던 시기에도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건 내가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걸 귀찮고 성가신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행위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 2020. 6. 6.
짧은 만남, 긴 여운 방송통신고에서의 짧은 만남 어제는 부산 동래고등학교에서 방송통신고 영남 연합 체육대회가 열렸다. 고교생(?)이 치르는 대회라기엔 대회 규모도 내용도 만만찮다. 우리 학교도 세 대의 전세버스 편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애당초 친선행사인 만큼 승부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 행사에 참가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았다. 영남권의 방송고는 모두 10개교다. 경북 4개교를 비롯하여 대구, 울산에 각 1개교, 부산과 경남에 각 2개교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남녀공학인데, 부산의 동래고는 남학교, 경남여고는 여학교라는 점이다. 입장식에서 모두 남녀가 같이 들어오는데, 두 학교는 단출하게 각각 남학생과 여학생만 들어왔다. 십 대 청소년도 아닌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는 광.. 2020. 6. 5.
‘표절 논란’ 이후, 독자는 ‘호갱’인가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 이후의 독자 ‘신경숙 표절 논란’을 다룬 “성공한 ‘작가’의 표절은 ‘무죄’다?”를 쓰고 난 뒤, 나는 적어도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게 일정한 변화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 아직 결과를 말하기엔 이른 건 사실이지만 - 나는 내가 아직도 순진하고 어수룩하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확인했다. 발 빠르게 창비가 관련한 입장을 밝혔고 신경숙도 창비에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신경숙은 “ 외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 은 모르는 작품이다. 독자들께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다.”고 밝혔다고 했다. 고종석, “창비는 돈 몇 푼에 제 이름을 팔았다” 신경숙의 입장은 요약하면 ‘나는 모르는 일이다. 믿어달라.. 2020. 6. 5.
“성공한 ‘작가’의 표절은 ‘무죄’다?” - 신경숙 표절 논란 작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부쳐 목하(!) 대한민국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중견작가 신경숙 문학의 ‘표절’을 제기한 동료작가의 고발이 화제다. 시인이자 작가인 이응준이 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드러난 표절 사실은 일단 꽤 충격적이다. [관련 기사 :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일단’이라고 전제한 것은 그가 제시한 표절 의혹이 아직 대중의 공감과 동의를 받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표절 혐의는 제시한 증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문가는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지만, 표절 혐의는 상식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동료작가가 고발한 ‘신경숙의 표절’ 이응준은 신경숙이 자신의 단편에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의 소설.. 2020. 6. 4.
‘조선의용대의 영혼’ 윤세주 열사, 타이항산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2년 6월 3일-윤세주, 타이항산 폔청 전투에서 전사 1942년 6월 3일, 조선의용대 화북(華北)지대 정치위원 석정(石正) 윤세주(尹世胄, 1901~1942)가 타이항산(太行山) 석굴에서 순국했다. 허베이(湖北)성 폔청(偏城)에서 일본군의 제팔로군 소탕 작전에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은 지 닷새 만이었다. 폔청 전투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중국 타이항산맥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운 타이항산 전투 가운데 후자좡(胡家庄) 전투·싱타이(邢台) 전투(1941)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1942년 5월 28일, 허베이성 셰현(涉縣)의 북쪽 가장자리 산시성 경계에 있는 폔청에서 시작된 이 전투는 일본군의 소탕 작전에 대항한 팔로군의 반 소탕전으로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5월 29일 항일.. 2020.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