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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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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과 시- 박영근 유고 시집『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노동시인 박영근(1958~2006)의 삶과 죽음 시집 몇 권을 샀다. 지난번 글(노동시인 조영관과 임성용의 만남)을 쓰면서 온라인 책방 보관함에 갈무리해 둔 조영관 유고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 임성용 시집 『하늘공장』,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등이다. 생각난 김에 민음사에서 펴낸 소월 시집 『진달래꽃』과 만해 시집 『님의 침묵』에다 릴케 시집 『형상시집 외』도 샀다. 『진달래꽃』은 중학교 1학년 때 읍내 문방구에서 100원을 주고 산 이래 두 번째로 사는 소월 시집이다. 그러고 보니 그 손바닥만 한 문고본의 조악한 시집이 내가 난생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책이었다. 시의 ‘효용’, 국밥과 소금? 아이들에게 소월과 만해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서가에는 그들의 시집 한 권 .. 2020. 6. 2.
백선엽과 필리프 페탱, ‘구국’과 ‘반역’ 사이 백선엽 현충원 안장 관련 논란... ‘국가반역자’를 기리지 않는 프랑스 최근 한국전쟁의 ‘영웅’이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한 백선엽(1920~ ) 예비역 대장과 관련 뉴스가 뜨겁다. 언론이 올해 100세가 된 백 대장을 불러낸 것은 그가 사망하게 되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찬반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기 때문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와 ‘한국전쟁 영웅’ 사이 한국전쟁 초기 전세를 뒤집은 ‘낙동강 다부동 전투(1950)’를 비롯하여 ‘평양전투(1950)’와 ‘중공군 춘계공세(1951) 저지’ 등 여러 차례 승전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백선엽에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은 충분하다. 그가 이명박 정부 때 우리나라 최초의 ‘명예 원수’로 추대될 뻔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2020. 6. 1.
고정희, 우리 모두에게 이미 ‘여백’이 된 고정희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좋은 시인이나 작가를 제때 알아보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부채감은 꽤 무겁다. 그것은 성실한 독자의 의무를 회피해 버린 듯한 열패감을 환기해 주는 까닭이다. 제때 읽지 못했던 시인 작가로 떠오르는 이는 고정희 시인과 작가 공선옥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훌륭한 시인·작가는 수없이 많을 터이다. 요컨대 내가 말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공선옥은 내게 그를 너무 늦게 읽은 걸 뉘우치게 한 작가다. 2003년에 그의 소설집 『멋진 한세상』을 읽고 나서 나는 책 속표지에다 그렇게 썼다. 너무 늦었다……. 나는 삶을 바라보는 공선옥의 눈길과 태도에 전율했다. 나는 그이의 삶과 그가 그리는 삶이 어떤 모순도 없이 겹.. 2020. 6. 1.
그들만의 커뮤니티, 광고 두 개 아이들만의 공통체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침 8시에 등교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하니 아이들은 무려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학교는 아이들이 일상이 보장되는 온갖 형식을 갖추고 있다. 유리창에 매달린 칫솔, 교실 콘센트마다 꽂힌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등의 충전기, 정오를 전후하여 행정실 옆 공간에 쌓이는 택배상품들(아이들은 책이나 생활필수품 등을 택배로 학교에서 받는다.)은 말하자면 이 입시경쟁 시대가 낳은 새로운 학교 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양이 한참 떨어지는 낡은 교실의 수업용 컴퓨터로 메일을 받거나 숙제를 하고, 도서와 상품을 주문하는 일을 빼면 아이들은 인터넷과 한참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2020. 5. 31.
오월의 산, 숲은 가멸다 어느덧 오월도 막바지입니다. 오늘은 대구 지방의 온도가 섭씨 35도에 이를 거라니 계절은 좀 이르게 여름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서재에서 바라보는 숲은 더 우거졌고 산색도 더 짙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도 얼마간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한동안 베란다에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도 숙지는 듯합니다. 바람을 통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이 풍매화(風媒花)는 이제 꽃가루를 날리고 받는 일은 끝낸 것일까요. 수분(受粉)에서 수정에 이르는 6개월 뒤에 비로소 암꽃은 솔방울을 달게 되겠지요. [관련 글 : 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올에 유난히 짙은 향기로 주민들의 발길을 붙들던 아까시나무꽃도 이제 거의 졌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아까시나무 꽃잎은 산길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밟히고 있습니다. 싸리꽃도 .. 2020. 5. 29.
우리 아이들이 본 다큐 영화 <우리 학교>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 교원, 학생들과 함께한 3년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는 김명준 감독이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함께 3년여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해방 후 재일 조선인들에 의해 세워진 조선학교의 역사와 그 현재에 관한 이야기며, 타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자기 민족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키려는 민족 구성원들의 이야기이다. 지난 5월 18일부터 지역의 한 대학 강당에서 DVD로 가 상영되었다. 이틀 동안 2회 상영된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약 6백여 명, 그중 100여 명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세계 인식의 폭을 넓히는 매우 좋은 기회임을 역설했고 아이들은 이른바 나의 ‘강추.. 2020. 5. 28.
슬픔’과 ‘분노’를 넘어 ‘여성성’으로 황석영 장편소설 황석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기쁨이면서 고통이다. 마치 잘 벼루어진 끌이나 대패로 미끈하게 다듬어 놓은 얼개와 짜임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라면, 그것들이 냉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저며내는 이 땅의 사람 살이의 모습들은 둔감해진 정수리를 날카롭게 베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70년대 이후 내내 진보적 문학 진영을 짓눌렀던 화두였던 ‘리얼리즘’을 황석영만큼 건조하게 천착해 온 작가가 또 있을까. 파란과 격동의 20세기 말의 문학적 연대기인 을 거쳐 이데올로기의 광기와 그 덫에 걸린 한 시대를 조감한 을 거쳐 그는 이제 고대사회의 인신공희(人身供犧)라는 제의적 공간과 불교적 환생의 세계에 침잠해 있던 심청을 냉혹한 근대화 시대의 저잣거리로 끌어낸 듯하다. 이 소설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본격화와 .. 2020. 5. 25.
50대 중반에 첫 시집, 조성순을 지지함 [서평] 조성순 첫 시집 며칠 전, 학교로 우송되어 온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조성순 시집 (2013년, 작은숲). 그는 내 고등학교 후배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문예 동아리 ‘태동기(胎動期)’의 2년 후배, 1974년 그가 입학해 문예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나는 3학년이었다. 고교 문예 동아리 후배 시집을 내다 글쎄, 선후배 간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후배가 별로 없는 것은 세월이 꽤 흐른 탓일 터이다. 아, 시집 로 유명해진 서정윤이 그의 동기다. 별 교유가 없었어도 나는 그가 예천 촌놈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학년 초였을 게다. 우리 학교만 있었던 동아리 교실에서임은 분명하다. ‘문예실’이라는 그 방은 늘 일상적 잡담과 시건방진 요설, 문학적 일탈을 모의하곤 하던 우리들의 .. 2020. 5. 24.
캠프 캐럴에 묻힌 ‘고엽제’, 혹은 주둔 50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소재 미 주둔군 캠프 캐럴과 ‘고엽제’ 인터넷에서 맹독성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가 대구 인근 미군기지 안에 대량으로 파묻혀 있다는 표제를 읽은 것은 오늘 정오께다. ‘대구 인근 미군기지’라면 더 볼 게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기사는 그 기지가 칠곡군 왜관읍에 소재한 ‘캠프 캐럴’이라고 전하고 있다. 1978년 캠프 캐럴에 묻힌 ‘에이전트 오렌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왜관읍은 칠곡군청 소재지다. 조선 시대 일본인이 통상을 위해 머물던 집단 거주지였던 보통명사 ‘왜관(倭館)’이 고유명사로 남은 고장이다. 아시아 최대 군수 보급기지라는 캠프 캐럴(Camp Carrol)이 왜관에 자리 잡은 것은 1959년이다. 군은 아니지만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 미군.. 2020. 5. 24.
‘일베’와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과 일베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진작부터 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가 가진 위험성과 해악이 우려되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5·18 광주항쟁 33돌을 즈음하여 수구 우익 매체들의 도발적 역사 왜곡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일베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증오 범죄’의 해악은 심상치 않다는 게 분명해졌다. 나는 어저께 잠깐 일베에 접속한 것을 빼고 한 번도 이 극우 사이트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 보도를 일별하는 수준에서 나는 일찌감치 일베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잘라버렸다. 매체라기보다는 비열하게 편향된 관점에 기초한 천박하고 지질한 배설적 언설로 점철된 이 쓰레기 사이트에 관심을 가질 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 달 전쯤이다. 수업 중에 3학년 아이들이 .. 2020. 5. 23.
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송홧가루와 박목월 시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이야기 박목월의 시 「윤사월」을 배운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첫 국어 수업에서다. 1972년이었고, 국어과 담당 교사는 도광의 시인(관련 글 : 옛 스승 도광의 시인과 제자들)이셨다. 제2차 교육과정 시기였는데 그 시는 국판의 조그만 교과서 맨 앞쪽에 ‘권두시’ 형태로 실려 있었다. 「윤사월」을 배우던 시절 몸소 시를 쓰시는 분이시라 과연 선생의 강의는 남달랐다. 그 시 한 편을 배우는데 한 시간은 너끈히 걸렸으리라. 선생께선 대단한 열정으로 시의 느낌과 의미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시려 했던 것 같은데, 정작 그때 배운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내게 ‘송홧가루’는 낯설었다. 글쎄, 어릴 적부터 지게를 지고 땔나무를 해야 했.. 2020. 5. 23.
아내 생일에 생일에 아내는 손수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렸다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는 손수 끓인 미역국에다 엊저녁에 해 둔 밥으로 식탁을 차렸다. 그 식탁에 앉기가 좀 민망했다. 딸애는 뒤늦은 공부 때문에 해외에 머물고 있고, 아들 녀석은 서울에 있다. 그렇다고 아내의 생일이라고 내가 안 하던 밥을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일날인데……, 미역국도 손수 끓여서 먹어야 하는구먼, 하고 내가 겸연쩍게 말하자, 아내는 심상하게 밥도 엊저녁 밥인데 뭘, 하고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다. “어쨌든, 당신 같은 사람을 내게 보내주어서 나는 참 행복했어. 당신이 태어나 주어서 정말 고마워.”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예전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수준의 아첨이지만, 나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면.. 2020.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