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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풍경

6월의 연꽃 구경

by 낮달2018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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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는 학교 교정의 연꽃

▲ 학교 연못 옥련지(玉蓮池). 물은 그리 맑지 못하다.

학교 뒷산 기슭에 연못이 하나 있다. 학교 꽃이 수련(睡蓮)이어서 ‘옥련지(玉蓮池)’라 불린다. 물론 인공으로 조성한 못인데, 드는 물도 빠지는 물도 없으니 그 물의 사정은 짐작할 수 있겠다. 이 학교를 나온 딸애는 서슴지 않고 ‘4급수’라고 말할 정도다.

 

어느 날 보니 그 4급수 연못에 연꽃이 피고 있었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진흙과 연꽃’이란 비유는 ‘번뇌와 해탈’처럼 양극을 이루지만 사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즉 ‘불이(不二)’라고 하는 불교적 인식의 표현이다.

▲ 옥련지의 수련. 대부분 흰 꽃이고 붉은 꽃은 겨우 한 송이다.

나는 주변에서 연꽃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다.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처음으로 연꽃을 구경한 게 스무 살이 넘어서인 듯하다. 요즘은 대규모로 연을 재배하는 곳도 주변에 많다. 예천군 용궁면의 산택지는 여름이면 연못에 빽빽이 들어차 넘실대는 연꽃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연꽃 구경을 처음 간 게 재작년이다. 인근 녹전면에 있는 절집에서 연꽃을 부러 기른다는 TV 뉴스를 보고서였다. 덕왕사(德王寺)는 오래 묵은 절집이 아니라, 문 닫은 옛 초등학교 자리에 현판을 달고 문을 연 새 절집인데, 시방도 남아 있는 자그마한 두 동의 슬래브 건물 앞의 작은 연못과 주위를 빙 둘러가며 플라스틱 함지 수십 개를 놓고 거기다 여러 종류의 연꽃을 기르고 있었다.

 

8월 중순께였고 그 규모 덕분에 바투 다가가 조감하듯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아이들의 손을 붙들고 들른 외지인들도 제법 많았는데, 정작 연꽃을 기른 스님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것도 만만찮은 수행이었으리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 덕왕사(안동시 녹전면)의 연꽃들. 플라스틱 함지에 길렀다. 2005년 8월.

지난해엔 인근 의성에 있는 벼락지(이름이 썩 매력적이지 않은가)로 연꽃 구경을 다녀왔다. 7월 중순이었다. 8월은 되어야 제대로 핀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도 굳이 길을 나선 것은 낯선 길, 낯선 땅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벼락지는 의성군 단북면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못이다. 이 연못은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는 슬픈 ‘아기 장수 설화’를 담고 있다. 비범하나 천출로 태어난 아이의 장래를 두려워한 부모가 아이를 없애려 하는 순간에 하늘에서 뇌성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그의 집은 흔적 없이 파였고 용마(龍馬)가 울면서 하늘로 날아갔다.

 

벼락지의 연꽃들은 이제 겨우 막 눈을 뜨고 있었다. 못과 둑의 경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수풀이 우거져 못둑에 오르기가 망설여졌다. 길섶에서 줌으로 당겨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정작 찍고 나서는 속살을 숨김없이 드러낸 활짝 핀 꽃잎보다 다소곳이 만개를 준비하고 있는 꽃송이들이 훨씬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 무욕의 기품이 마치 숨결처럼 느껴졌다.

▲ 벼락지(경북 의성군 단북면)의 연꽃. 철이 일러 얼마 피지 않았다. 2006년 7월.
▲ 벼락지. 와전되어 지금은 벼루못으로 불린다.

연꽃은 아시아 남부와 호주가 원산지인데, 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식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식물이다. 연못에서 자라고 논밭에서 재배하기도 하는데, 땅속줄기는 연근(蓮根)이라 하고 널리 식용한다. 연은 일반적으로 수련(睡蓮)을 포함한 개념인데, 영문으로는 연을 lotus, 수련을 waterlily로 표기한다. 잎이 수면 위에 펼쳐져 뜨거나 꽃이 거의 수면 높이에서 피는 연이 수련이라 한다.

 

연꽃은 대체로 종교적으로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부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것은 인도에서 이 꽃이 만물을 탄생시키는 창조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며, 꽃이 맑고 깨끗하며 여느 꽃과 달리 진흙 속에서 자라는 까닭이다.

 

인도의 고대민속에서 연꽃은 여성의 생식을 상징하고 다산(多産), 힘과 생명의 창조를 나타낸다. 힌두교에서도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최초의 식물’로 귀히 여겨지며 자이나교에서도 사원을 화려한 연꽃 조각으로 장식한다고 한다. 민간에서 연꽃을 다산의 징표로 본 것은 연이 종자를 많이 맺기 때문이다. 여인의 옷에 연꽃의 문양을 새겨 넣는 것도 이 같은 다산의 소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며칠 동안 옥련지를 오르내리며 나는 연꽃이 더 피기를 기다렸다. 거의 날마다 새 꽃이 피어났고, 꽃은 햇살 속에 몸을 활짝 열었다가 오후가 되면 잎을 오므려 버리곤 했다. 제 빛깔이 아닌 지저분한 물속에서도 연잎은 그 하트 형의 몸매를 수면에다 넉넉하게 펼쳐 놓는다.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더니 어느 날 아침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붉은 연꽃 한 송이가 자태를 드러냈다.

▲ 학교 연못 옥련지의 수련. 붉은 꽃은 지금 이 한 송이뿐이다 .
▲ 수련은 백련과 홍련 같은 연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꽃이라 한다.

우중충한 물속에 뜬 노란 꽃술의 흰빛 수련, 자줏빛이 도는 붉은 수련은 야단스러워 보이지 않는데도 놀라운 기품을 은은하게 뿜어낸다. 송나라 성리학자 주돈이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다.”라고 하며 연꽃의 덕성을 칭송한 까닭이 여기 있을 터이다.

 

조선 세조 때의 문인이자 화가인 강희안이 지은 원예에 관한 책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연꽃의 품성을 “깨끗한 병 속에 담긴 가을 물”이라고 한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사람들은 연꽃잎이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게 하지 않음도 연의 덕성으로 꼽는다. 물은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떨어질 뿐,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까닭이다.

 

서둘러 연꽃 얘기를 주절댔지만, 연꽃은 이제 겨우 개화를 시작했을 뿐이다. 전국에서 이름난 연꽃 축제가 벌어지는 때가 7월 말에서 8월에 걸쳐 있는 것은 그 시기에 연꽃이 절정에 이르기 때문이다. 연꽃 축제는 부여의 궁남지, 전남 무안, 강화 선원사 등에서 베풀어지는 게 유명한데 모두 다 여기서는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길 떠나기가 쉽지 않다.

 

옥련지의 연꽃이나 지켜보거나, 의성 벼락지를 제때에 찾는 거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벼락지로 갈 때 나는 한적한 지방도로를 택했다.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는 데다 중앙선 표시도 없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은 마치 60년대의 고향길 같았다. 구불구불하고 억새가 우거진 길섶이 썩 정겨운 그 길을 다시 밟는 것도 가외의 즐거움이겠다.

 

 

2007. 6.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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