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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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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톺아보기 ②]향랑의 죽음 - ‘수절’인가 ‘저항’인가 [선산 톺아보기 ②]시내 형곡동 열녀 ‘향랑’의 노래비와 무덤 향랑의 노래 ‘산유화가’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없는 책을 빌리러 형곡동의 시립 중앙도서관에 적잖이 들렀다. 도서관 주변을 빙빙 돌다가 간신히 차를 대고, 서둘러 책을 빌려 나오기 바빠서 도서관 구내를 돌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거기 생육신 이맹전의 유허비와 향랑(香娘, 1683~1702)의 노래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요즘 들어서다.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깐죽대지만, 우리는 정작 우리 주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도서관 건물 뒤쪽 정원에 이맹전(1392~1480) 유허비와 향랑의 노래비가 있다. 생육신 가운데 한 분인 이맹전의 유허비는 단청을 칠한 비각 안에 모셔져 있고, 향랑의 노래비는 3단으로 된 .. 2020. 9. 5.
[선산 톺아보기 ①] ‘충효’는 무엇이며, ‘열부’는 또 무엇이뇨 [선산 톺아보기 ①] 선산읍 봉한리 삼강정려(三綱旌閭) 고향 가까운 도시 구미로 옮아와 산 지 10년이 가깝다. 올 때만 해도 주말이면 작정하고 선산·구미의 골골샅샅을 더듬어 보리라는 포부가 만만했지만, 웬걸 사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초기에만 해도 얼마간 움직이긴 했는데, 정작 근처에 갈 만한 데가 없다고 여기면서 나는 슬그머니 주저앉아 버렸다. 갈 만한 데가 없다고 여긴 이유는 전에 살던 안동과 달리, 이 고을에는 가볼 만한 고가도 몇 안 된다는 걸 확인하면서다. 선산(善山)은 조선 인재의 반을 영남이 내고, 그 영남 인재의 반을 낸다는 고장이다. 안동과 달리 일찍이 개화해 버린 동네여서일까. 지역을 관향(貫鄕)으로 하는 성씨도 적지 않건만, 고색창연한 종갓집도, 문화재자료 등으로 지정된 고가도 .. 2020. 9. 3.
[2010 텃밭일기 ⑧] 거둠과 이삭(1) 늦장마가 띄엄띄엄 계속되고 있다. 가뭄으로 말라가던 고추는 아연 생기를 얻었고 뒤늦게 새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많이 늦었다. 이웃의 고추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고추도 이미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밭에 당도한 병충해는……, 결국 ‘불감당’이었다. 그럴 수 없이 잘 자라 미끈한 인물을 자랑하던 고추가 구멍이 뚫리거니 시들시들 고는 걸 지켜보는 것은 못할 짓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다. 결국 센 놈만 살아남는 것……,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아내와 나는 사나흘 간격으로 밭에서 익은 고추를 따 왔다. 고추를 따 보면 뜻밖에 내가 지은 농사가 만만찮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지은 농사가 수월찮지?” “그럼!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고추를 따다 먹은 지 아우? .. 2020. 9. 2.
한국 부자와 서양 부자 한국 부자와 서양 부자는 어떻게 다른가 # 미국과 유럽 풍경 · 미국 거대 부자에 대한 과잉보호를 그만두라(Stop Coddling the Super-Rich) “백만 달러 이상을 버는 이들의 경우 –2009년의 경우 모두 236,883가구– 나는 백만 불을 초과하는 과세대상 소득 –이것은 물론 배당과 자본이득을 포함한다– 에 대한 세율을 즉시 인상할 것이다. 그리고 천만 달러 이상을 버는 이들에 대해서는 –2009년의 경우 모두 8,274가구– 추가적인 세율 인상을 제안할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억만장자에 우호적인 의회로부터 그동안 충분히 과잉보호를 받아왔다. 우리 정부가 고통 분담에 대해 진지해져야 할 때다.” -워렌 버핏(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유럽 “빈곤층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긴축 정책이 .. 2020. 9. 1.
삼천오백 원, 혹은 음료 한 병의 ‘선의’ 폭염 속, 한 경관이 노점상 할머니에게 보인 선의 초중등학교에서 학생들 대신에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 청소를 도맡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엔간히 일반화된 상황 같다. 덕분에 아이들은 청소를 면제받고 아주 잘 관리된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밖에 없었던 20년 전을 생각하면 가히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하다. 잘 청소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가끔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를 만날 때마다 나는 몇 해 전에 ‘청소노동자’ 문제를 환기하게 된 홍익대 파업 투쟁을 떠올리곤 한다. 그 투쟁은 학생과 시민들의 연대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는 승리를 선사했지만, 예의 투쟁에 크고 작은 힘을 보탠 사람들에겐 우리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었던 것 같다. .. 2020. 8. 31.
‘녹천정’과 ‘통감관저’ 사이 통감관저터 표석 제막식 8월 29일은 꼭 1백 년 전에 나라를 빼앗긴 날이었다. ‘경술국치’라는, 저 20세기 초엽의 민족적 결기가 묻어나는 이름에 배어 있는 겨레의 분노와 한은 쉽게 잴 수 없다. 그러나 일백년 이쪽의 현재는 무심하고 심상하기만 하다. 한때는 청소년들이 ‘마이클 잭슨의 생일’로 기억한 이날은 일요일이었고 전국 각지에서 철늦은 여름비가 내렸다. 그 빗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모여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실현을 위한 한일 시민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고 뉴스는 전한다. 뒤늦었지만 양국 시민들이 ‘강제병합’이 무효임을 밝히는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통감관저 터’ 표식 제막 이날 공동선언에 앞서 양국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맺어진 서울 남산의 통감관저 터에.. 2020. 8. 30.
‘조국’의 시조 시인 정완영 선생 돌아가다 시조시인 정완영(1919~2016. 8. 27.) 오늘 새벽에 인터넷에서 시조 시인 정완영(1919~2016) 선생의 부음 기사를 읽었다. 기사는 지난 27일 오후 3시께 노환으로 별세한 선생을 ‘시조 문학의 큰 별’이라는 표현으로 기리고 있었다. 향년 98세. 초임 시절인 5차 교육과정 고교 국어 교과서에 그의 시 ‘조국’이 실려 있었으니 얼추 내가 그의 시를 가르친 것도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던 것은 시조라는 갈래가 가진 한계 탓이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이 오래된 민족 정형시는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겨우 교과서에 실리는 것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 전문 텍스트로 읽기] 3장 6구 45자 안팎이라는 정형 안에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정서를 그려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려운 일일까. .. 2020. 8. 28.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이삭, 파리에서의 낮과 밤 환승지 파리에서의 하룻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앞서 밝혔듯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은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지만 아주 싼 항공료에 꽂힌 딸애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파리로 가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들어갔고 나올 때도 역순이었는데, 대신 드골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를 갈아탄 점만 달랐다. 환승 때문에 하룻밤을 묵은 파리 7월 24일 오후 2시에 우리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파리 시내 호텔에 체크인한 게 3시쯤, 잠깐 휴식한 뒤, 우리는 서둘러 시내 관광에 나섰다. 우리 내외는 2016년 4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 딸애도 파리는 2011년에 이은 7년 만이었는데, 아들 녀석만 초행이었다. 2016년 .. 2020. 8. 27.
두 부음에 부쳐- 목순옥과 이윤기 천상병 시인의 부인, 전통 찻집 ‘귀천’의 주인 목순옥(1935~2010. 8. 26.)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 ‘목순옥’(1935~2010)이라고 하면 갸웃하다가도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라면 모두가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서울 인사동에 있다는 전통 찻집 ‘귀천’의 주인이다. 숱한 시인 묵객들의 명소가 되었다는 그 찻집을 나는 이름만 들었지 가보지 못했다. 천상병(1930~1993)의 시를, 그의 시 ‘귀천(歸天)’을 가르치면서 나는 가끔 그이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주곤 했다. 1967 동백림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아 폐인이 된 채 행려병자로 떠돌던 천상병 시인을 구한 이가 그이였다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그를 살려내고 그의 반려가 되었던 여인……. [시 전문 텍스트 보기] 1935년.. 2020. 8. 27.
‘뒷풀이’가 아니라 ‘뒤풀이’다 뒷말의 첫 소리가 된소리나 거센소리일 땐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다 한글 맞춤법에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사이시옷’이다. 이는 사잇소리 현상을 표시하기 위해 앞말이 모음으로 끝났을 때 받침으로 붙이는 ‘시옷(ㅅ)’이다. (1) 시내 + 가 [시내까] → 시냇가 (2) 초 + 불 [초뿔] → 촛불 위 보기처럼 두 낱말이 어울려 새 낱말을 이룰 때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걸 표시하기 위해 ‘사이시옷’을 쓰는 것이다. 물론 앞말에 이미 받침이 있을 때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다. (1) 산 + 길 [산낄} → 산길 (2) 호롱 + 불 [호롱뿔] → 호롱불 모든 말에 이런 원칙이 지켜지면 좋은데, 문제는 여기 예외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일이 그걸 다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몇 .. 2020. 8. 26.
[상트페테르부르크] 그 낯선 도시에서의 5일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⑤ 트롤리 버스와 안내원,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관람, 그리고 미련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여행은 일련의 과정이다. 여행이 단순히 마음에 둔 유적이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것은 길을 나서면서부터 돌아올 때까지 여행자가 겪거나 보고 들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소한 부딪힘, 감정의 파문, 인상과 느낌까지를 포괄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면서 설레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내외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그 설렘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특별한 기대나 마음의 결에 맺힌 곳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나이 듦 탓이었을까. 아마 내겐 새로 만나는 어떤 풍경이라도 담담.. 2020. 8. 25.
[순국] 선비는 ‘일왕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지 못함을 한’했다 순국 102주기, 만송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을 기리며 8월 26일은 경북 칠곡의 선비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의 순국 102주기다. 1918년 이날, 그는 보안법과 주세령 위반으로 복역하던 대구 감옥에서 8일간의 단식 끝에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다. 향년 77세.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오적(五賊)을 성토하면서 시작된 그의 항일 투쟁은 일제 치하의 납세뿐 아니라, 토지조사 사업까지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세 차례의 투옥 끝에 마침내 옥중 순국한 것이다. 유병헌은 1842년 경상도 인동도호부(현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강진마을)에서 유익원의 맏이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 호는 만송(晩松). 그는 진주 민란(1862)과 제너럴셔먼호 사건·신미양요(1871), 운요호사건(1875.. 2020.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