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정완영(1919~2016. 8. 27.)
오늘 새벽에 인터넷에서 시조 시인 정완영(1919~2016) 선생의 부음 기사를 읽었다. 기사는 지난 27일 오후 3시께 노환으로 별세한 선생을 ‘시조 문학의 큰 별’이라는 표현으로 기리고 있었다. 향년 98세.
초임 시절인 5차 교육과정 고교 국어 교과서에 그의 시 ‘조국’이 실려 있었으니 얼추 내가 그의 시를 가르친 것도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던 것은 시조라는 갈래가 가진 한계 탓이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이 오래된 민족 정형시는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겨우 교과서에 실리는 것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 전문 텍스트로 읽기]
3장 6구 45자 안팎이라는 정형 안에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정서를 그려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려운 일일까. 교과서에서 만나는 정인보, 이병기, 김상옥, 이호우, 정완영 같은 시인들을 통해서 학생들은 어쩌면 ‘구색’으로 현대시조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시인의 시조는 비록 낡은 형식에 담겼지만 놀라운 격조와 울림을 보여준다. 더는 시대와 함께 가기 어려운 시 형식이 아닌가 싶다가도 이 시인들의 시조를 읽으면서 이 갈래의 생명력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완영 시인은 인근 김천 출신이다. 1946년 ‘시문학 구락부’를 만들어 활동하다 <국제신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와 동시가 당선되고,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조국(祖國)’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호우 시인과 함께 ‘영남 시조 문학회’를 창립하였고, 한국시조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제1회 가람시조문학상을 비롯하여 중앙일보 시조대상(제3회), 만해 시문학상(제2회)을 수상하였으며, 1995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시조집으로 <채춘보(採春譜)>, <묵로도(墨鷺圖)>, <산이 나를 따라와서>, <세월이 무엇입니까>, 산문집 <나비야 청산 가자>, <차 한 잔의 갈증> 등과 동시집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2016)을 펴냈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고 지금은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대표작 ‘조국’은 가야금의 애절한 가락에 빗대어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작품이다. 절제된 언어로 살려낸 긴축미와 유장한 가락의 울림과 ‘분단 조국의 슬픔’을 시적 여운을 통해 드러낸 점이 남다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리거나 모의고사 등에 흔히 출제되는 ‘부자상’은 조부에서 부친을 거쳐 이어지는 피의 순환을 노래하고 있다. 평이한 시어인데도 독자들의 마음의 현을 울리는 것은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되는 치사랑에 대한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두메산골 외딴집에 온 봄, 거기 피어나는 복사꽃을 노래한 ‘복사꽃’의 울림도 또 다르다. 익숙한 장별배행(章別配行) 대신 구별배행(句別配行)을 선택한 시는 각장을 3행으로 늘여서 그 쓸쓸한 여운을 맺고 있다.
그의 고향인 김천시에서는 대항면에 2008년, 그의 호 ‘백수(白水)’를 딴 백수문학관을 세우고 해마다 백수문학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백수문학제도 포스터로나 만났고 직지사 인근에 있다는 백수문학관을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선생의 영결식은 오는 31일 오전 7시 한국시조시인협회가 주관하는 문인장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김천시에서도 백수문학관에 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한다고. 장례는 수목장으로 치러져 선생은 백수문학관 뒷산으로 돌아간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언제 말미를 내어 김천을 다녀와야겠다.
2016. 8.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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