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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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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아줌마들을 위하여 딸들에게 - 홈에버의 40대 여성 노동자 오늘 나는 수업에서 너희들에게 ‘인간’과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존엄성’을 이야기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신분과 학력, 경제력, 미추와 노소를 떠나 저마다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지니고 살아간다고 말이다. 박완서 ‘황혼’의 여주인공 ‘늙은 여자’ 모든 사람이 저마다 지니고 살아가는 ‘자존감’은 달리 말하면 ‘자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인 동시에 그 존엄성의 인식’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존재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지. 인간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능멸하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그 야만적 얼굴로 인간의 존엄을 허물어뜨리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상식을 넘는 체벌도 마찬가지다. 체벌은 아이들의 신체에 아픔으로 남는다기보.. 2020. 7. 24.
기지개는 ‘켜고’ 어깨는 ‘편다’ ‘켜는’ 것과 ‘펴는’ 것은 따로 있다 기지개는 ‘켜고’ 어깨는 ‘편다’ 어저께 어느 유수 일간지 기사에서 ‘기지개를 펴다’라고 쓴 표현을 보았다. ‘펴다’라고 쓰기도 하는가 싶어 검색했더니 그걸 제목으로 쓴 기사가 여럿 뜬다. 궁금했던 사람이 또 있었던 듯, 국어원과 몇몇 매체의 관련 기사는 똑 부러지게 ‘틀리다’고 하진 않고 “‘켜다’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답하고 있다. 국어사전의 예문에 ‘기지개를 펴다’는 없다. 은 “(‘기지개’와 함께 쓰여) 팔다리나 네 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펴다.”로 풀이하고 있다. 의미로만 보면 기지개를 펴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관용구로서 ‘기지개를 켜다’가 언중들의 언어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착용하다’의 뜻으로 쓰는 말은.. 2020. 7. 23.
이호우·이영도 시인의 생가를 찾아서 경북 청도군 청도읍 유천길 46 시조시인 이호우, 이영도 오누이 생가 지난 일요일, 오래된 벗들과 밀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출발이 이른 편이어서 운전대를 잡은 친구에게 가다가 운문사(雲門寺)에 들르자고 청했다. 어쩌다 보니 청도 호거산(虎踞山) 운문사는 내가 가보지 못한 절이다. 위치가 경북 남부에 치우쳐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까닭이다. [관련 글 :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지키는 비구니의 수행처] 청도 쪽 길에 워낙 어두운지라 무심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데, 어느 한적한 시골 거리에 차가 선다. 대구 인근은 물론이거니와 틈만 나면 온 나라 골골샅샅을 더듬고 있는 친구가 시인 이호우·이영도 남매의 생가라고 알린다. 차에서 내리니 좁고 한적한 길 건너편에 ‘이호우·이영도 시인 생가’라고 쓴 높.. 2020. 7. 23.
‘뿐’과 ‘-ㄹ뿐더러’, 띄어쓰기는 어렵다? [가겨 찻집] 의존명사 ‘뿐’과 보조사 ‘뿐’, 그리고 어미 ‘-ㄹ뿐더러’ 어쩌다 텔레비전 한글 퀴즈 쇼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갑자기 머릿속에 하얘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 부분이 띄어쓰기다. 요즘 글을 쓰면서 ‘한글 2018’의 맞춤법 기능이 얼마나 기막힌 것인가를 실감하고 있다. 정말 생광스럽게 이 기능의 도움을 받고 있다. [관련 글 : 뒤늦게 아래 아 한글에서 맞춤법을 배우다] 띄어쓰기는 어렵다? 띄어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같은 단어인데도 그 문법적 기능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조사인지 접미사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의존명사와 어미의 구분도 모호할 때도 있다. 모든 단어를 띄우는 로마자가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1)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2) 모란이 지고 나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2020. 7. 22.
[2010 텃밭일기 ⑦] 나는 아직 ‘고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배추벌레와 교감하는 시인, 그러나 지난 일기에서 고추에 벌레가 생겼다고 얘기했던가. 어저께 밭에 가 보았더니 고추에 병충해가 꽤 심각하다. 열매 표면에 구멍이 나면서 고추는 시들시들 곯다가 그예 고랑에 떨어진다. 열매가 허옇게 말라붙어 버린 것도 곳곳에 눈에 띈다. 장모님께 귀동냥한 아내는 그게 ‘탄저(炭疽)병’이라는데 글쎄, 이름이야 어떻든 번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아내가 처가를 다녀오면서 약이라도 좀 얻어 오겠다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정작 장모님께선 별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딸네가 짓는 소꿉장난 같은 고추 농사가 서글프셨던 것일까. “어떡할래?” “번지지나 않게 벌레 먹거나 병든 놈을 따내고 말지 뭐, 어떡해…….” 두 이랑에 불과하지만, 선배의.. 2020. 7. 22.
‘사리(沙利/砂利)’가 ‘자갈’이라고? 법제처의 법률에 남은 일본식 용어 정비 법제처에서 법률에 남은 일본식 용어를 정비하기로 했다고 한다. ‘납골당’과 ‘엑기스’ 등 법률 36건, 대통령령 105건 등 모두 310건의 법령에 쓰이고 있는 일본식 용어 37개를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법제처에서는 이 용어들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내년에 수정할 계획이란다. 이르면 내년 후반기부터 이 37개 용어는 공식 법률에서 퇴출당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이 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듯하다. 37개 낱말을 훑어보고 난 느낌은 좀 씁쓸하다. ‘납골당’이나 ‘엑기스’야 워낙 자주 쓰이는 말이니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해득하기 어려운 다음 낱말들은 어떤가. 법.. 2020. 7. 21.
악법, 법 맞다! 위대하다, 자본주의! 장면 # 1 “여러분의 이번 파업은 법률상 위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 있고 돈 많은 몇 사람만을 위한 법은 법이 아니다. 저 산동네 철거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법이 위반됐다고 집을 뜯는다. 노점상인들은 도로교통법에 걸어 목판을 차버린다. 이렇게 밥을 못 먹게 하는 법은 법이 아니다.” 지난 1988년 당시 한 초선 의원이 작업복을 입고 128일간 파업 중이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앞에서 토해낸 사자후의 한 대목이다. 그 국회의원의 이름은 바로 ‘노무현’. - 윤태곤, (2007.7.19.) 장면 # 2 · 경찰 20일 오전 연행된 이랜드 노동자 167명을 유치장에 입감. · 경찰, 20일 오전 9시 40분께 홈에버 월드컵점과 뉴코아 강남점에 .. 2020. 7. 21.
[상트페테르부르크]예르미타시, 러시아 제국의 ‘영광’과 혁명의 ‘격랑’ 사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① 예르미타시, ‘피의 일요일’과‘2월·10월 혁명’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각 여행기를 쓰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도 같이 복기하여야 한다. 2년이 흘렀는데, 사진을 펼치니 그때의 느낌과 인상이 고스란히 복원되는 듯했다. 지워진 기억은 동행한 가족과 함께 되살려냈다. 이 지각 여행기를 에 송고했더니, 가급적 3개월 이내(계절이 바뀌기 전, 겨울에 여름 여행 기사는 채택 하지 않음), 해외는 다녀온 지 1년 이내 정도라야 기사로 채택한다는 규정 상 싣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해 왔다. 백 번 옳은 말이다. 2년이나 게으름을 피운 결과다. 그래서 이 글을 러시아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역사기행.. 2020. 7. 21.
‘선글라스’, 장신구에서 눈 보호기기까지 선글라스 이야기 선글라스의 계절이다.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선글라스는 극소수의 한량들이나 끼는, 일종의 특권적 장신구였다. 5·16 쿠데타 후에 찍은 사진 속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와 그 휘하 장교들의 모습이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당시에 그걸 선글라스라고 부른 이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그걸 ‘색안경’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보안경’과 함께 지금 ‘선글라스’를 대체하는 우리말 순화어가 되었다. 그 무렵, 선글라스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라이방’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이웃 마을의 동무들에게서 들었다. 그들은 한창 멋을 부리는 형들 덕분에 새로운 유행어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색안경’의 어두운 기억들 단순히 색안경과 동의어라고 알고 있었던 .. 2020. 7. 21.
한글날, 공휴일로 복원! 나라글자를 기리는 국경일, 22년 만에 공휴일로 복원 내년부터 한글날이 다시 국가공휴일이 된다. 행정안전부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11월 8일부로 입법 예고했다. 처음 공휴일로 지정된 1949년 이래 한글날은 41년 동안 국경일의 지위를 누려왔지만 1991년에 ‘경제’에 발목이 잡힌다. 1990년 공휴일 제외 사유 “노동생산성 떨어진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쉬는 날이 많아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라는 이유로 한글날을 ‘국군의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후 한글 관련 단체들의 끊임없는 공휴일 재지정 청원에도 불구하고 한글날은 복원되지 못했다. 2005년에는 한글날이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격상된 게 고작이었다. 이번 ‘관공서의 .. 2020. 7. 20.
180일, ‘나라’가 ‘국민’을 ‘버린 시간’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2년’, 혹은 ‘야만의 시간’ 오늘로 각각 180일, 60일이 지났다. 용산 참사와 평택 쌍용차 파업 농성 이야기다. 올 1월 20일에 벌어진 참사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는 뜻이다. 참사의 희생자 다섯 분-이상림(72), 양회성(58), 한대성(54), 이성수(51), 윤용현(49)-은 지금도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서 장례를 기다리고 있다. 180일 동안, 무려 180번의 추모문화제가 베풀어졌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집전하기 시작한 미사가 100일을 넘기면서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은 ‘남일당 본당’이라고 불리게까지 되었다.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정부에 촉구한 이래 각종 시국선언마다 용산 문제는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명박 정부.. 2020. 7. 20.
내가 일할 때는 아내가 차마 요구하지 않았던 일 [퇴직 이후, 생활의 복원] 재활용 쓰레기 배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들거나 재활용 쓰레기를 가득 담은 수레를 밀고 가는 남자들을 만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출근 시간에 쓰레기봉투를 쓰레기장의 폐기물 보관 용기에 서둘러 집어넣고 종종걸음을 치는 젊은 남자를 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제 더는 집안일이 여자 몫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하는 일이 된 것이다. 퇴직하기 전에만 해도 내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내가 바빠서 손이 모자라거나, 내가 하던 작업을 정리하느라고 가끔 쓰레기장에 들르는 일이 고작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손수 버린 기억은 따로 없다. 뒷날, 아내는 '종일 일하다 들어온 이한테 그거까지 해 달라고 하기가 거시기해서' 차마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해 주.. 2020.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