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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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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누적된 모순은 가공할 폭발력을 감춘 채 19세기로 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③ 예카테리나 궁전과 여제의 시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넷째 날 일정은 예카테리나 궁전이었다. 우리는 버스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푸시킨의 피서지인 차르스코예 셀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에 닿았다. 푸시킨? 그렇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를 쓴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1799~1837)이 한때 머문 이 도시는 1937년에 그의 이름을 따 푸시킨 시가 되었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푸시킨시에 있다 버스 승객들은 물론 대부분 궁전으로 가는 관광객이었다. 관광객은 우리가 탄 버스만 아니었다. 현지에는 전세 버스로 닿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떠들썩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 2020. 8. 1.
‘행복한 눈물’이 당신들의 ‘힘’이다 한국방송(KBS)의 파업에 부쳐 KBS 새 노조(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이 그들 현업 방송인(언론인)들의 ‘존재 증명’이라는 글을 쓴 것은 지난 7월 19일이다. 시청자(요즘은 KBS를 거의 보지 않고 있긴 하지만)라는 걸 빼면 방송과는 아주 무관하면서도 굳이 글을 쓴 것은 물론 ‘공정방송 회복’에 대한 동의뿐 아니라, 파업을 선택한 언론노동자들에게 짙은 동질감과 연대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KBS 언론노동자들이 흘린 ‘행복한 눈물’ 나는 그들 방송노동자가 감행한 파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라고 썼다. 그리고 ‘때로 이상을 지키거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기는 싸움뿐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싸움도 피하지 못한다’라고도 썼다. 신영복 선생의 어법으로 표현하면 ‘이길 수 없는.. 2020. 8. 1.
그날, 장진홍은 죽어서도 ‘독립만세’를 불러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 장진홍 의사 순국 90주기 추모제 열려 지난 30일 저녁 7시 30분에 구미시 진미동 동락공원에서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1927)의 주역 장진홍(張鎭弘, 1895~1930) 의사의 9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장진홍 의사 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에서 연 이 추모제는 탄신 120주년 추모식 및 동상 제막식(2015)과 매년 3·1절의 약식 추념식을 빼면 순국일 전야에 치러지는 추모제는 처음이다. 그는 죽어서도 재소자 1천여 명의 ‘독립만세’를 불러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로 대구지방법원과 대구복심법원의 사형선고를 받은 뒤, 고등법원 상고가 기각되어 장진홍의 사형이 확정된 것은 1930년 7월 21일이었다. 8월 1일, 예정대로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일제는.. 2020. 7. 31.
[오늘] 작가 생텍쥐페리, 정찰 비행 중 실종되다 [역사 공부 ‘오늘’]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 정찰 비행 중 실종 1944년 7월 31일 오전 8시 25분, 정찰기 P38 라이트닝을 타고 출격한 『어린 왕자』의 소설가이자, ‘야간 비행’의 선구자 앙투안 마리 장 밥티스트 로제 드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1900~1944)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비무장으로 6시간분의 연료를 싣고 이륙했으나 6시간이 지나도록 기지로 귀환하지 않았다. 8시간 반 뒤에 실종 보고가 들어와 그는 공식적으로 실종 처리가 되었다. 1948년 프랑스 당국은 그의 실종을 사망으로 보고 전사로 인정하였다.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낙방.. 2020. 7. 30.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 -차중락의 ‘사랑의 종말’ 차중락이 부른 대중가요 ‘사랑의 종말’ 가수 차중락(1941~1968)은 내겐 실재감이 없는 존재다. 더 까마득한 시대의 인물인 김정구나 현인 같은 이와는 달리 나는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몇 곡의 노래와 풍문으로 내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노래와 풍문으로 다가온 사람, 차중락 그가 죽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죽음을 훨씬 뒤에야 알았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야 형이 부르는 몇 편의 노래를 통하여 그와 그의 노래를 만났다. 형이 애절하게 불렀던 그의 노래들―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을 나는 꽤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이내 그 노래를 배웠고 내 방식으로 노래가 전하는 사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랑과 이별을 이해하.. 2020. 7. 29.
‘먹을 만하다’와 ‘주먹만 하다’, 어떻게 다르나 보조 형용사 ‘만하다’는 띄어 쓰고, 조사 ‘만’은 붙여 쓴다 (1) 사과가 모양은 그래도 먹을 만하다. (2) 화를 낼 만도 하다. (3) 아기가 주먹만 하다. 위의 세 문장에서는 모두 ‘-만 하다’라는 부분이 들어 있다. (1)과 (2)의 다른 점은 (1)은 ‘만하다’를 붙여 썼고, (2)는 ‘만’과 ‘하다’를 띄어 쓰고, ‘만’에 조사인 ‘도’가 붙은 것이다. (3)은 ‘만’이 앞말에 붙었고, ‘하다’는 띄어 썼다. 이들의 문법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사과가 모양은 그래도 먹을 만하다. ➜ 보조 형용사 (2) 화를 낼 만도 하다. ➜ 의존명사 (3) 아기가 주먹만 하다. ➜ 조사 1. 만하다 : 보조 형용사 (1)의 ‘만하다’는 보조 형용사다. 보조 형용사란 본용언 아래에서 그것을 돕는 구실을.. 2020. 7. 28.
동해 두타(頭陀)산성 샌들 등정기 동료들과 여행으로 찾은 동해 두타산성 바야흐로 이 나라의 여가 문화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의복, 장비 등 관련 산업의 융성으로 이어진다. 어쩌다 아무 준비 없이 면바지 바람으로 인근 산이라도 오른 이들은 마치 경쟁하듯 전문 산악인의 복장과 장비로 중무장(?)한 등산객들의 기세에 기가 질릴 지경이 되었다. ‘히말라야 복장’은 아니라도 ‘샌들’은 곤란 오죽하면 “동네 뒷산 오르는데, 등산복은 ‘히말라야 등반용’”이라는 얘기가 떠돌겠는가.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아웃도어 고급품 풀 장착 시 가격’은 417만 원이다. 이쯤 되면 등산도 부자들이나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짚신에서 고무신, 그리고 이른바 ‘지까다비’를 거쳐온 우리에게 수십만 원짜리 고어텍스 등산화.. 2020. 7. 28.
나무는 살아남았고, 사람들은 과거를 잃었다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 기행 100년, 한 세기를 넘으면 사람이나 사물은 ‘역사’로 기려진다. 백 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의 누적에 그치지 않고 그 나이테 속에 한 나라, 한 사회의 부침과 희비와 온갖 곡절을 아로새기기 때문이다. 거기엔 물론 아직도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년을 넘지 못하는 까닭도 있을 터이다. 굳이 아흔아홉을 ‘백수(白壽)’라 부르는 까닭도 그 백 년이 쉬 다다를 수 없는 시간이라는 반증이다. 그러나 백 년을 넘기더라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존재의 한계’라는 표현은 그런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백 년을 훌쩍 넘기는 사물로 눈을 돌려본다. 백 년을 넘겨 장수하는 사물 가운데 고건축을 제외하면 생명을 가진 것으로는 나무를 꼽을 .. 2020. 7. 27.
‘모래사장’과 ‘선취 득점을 올리다’ 우리말의 ‘겹말’ 생각 프로야구 경기 중계를 시청하다 보면 진행자가 쓰는 말에 머리를 갸웃할 때가 더러 있다. 흔히 캐스터(caster)로 불리는 이들 전담 아나운서들은 시청자들에게 경기 진행 상황을 중계하면서 그 흐름과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는 등의 구실을 한다. 그런데 어느 한 팀이 먼저 점수를 낸 상황을 전하는 이들의 해설은 어느 채널이든 비슷하다. “○○이 ‘선취점’을 올립니다.” “○○이 ‘선취득점’을 하는군요.” “○○이 ‘선취득점’을 올립니다.” 겹말, 되는 말과 되지 않는 말 ‘선취점’은 “운동 경기 따위에서, 먼저 딴 점수”다.() 관용구로 ‘선취점을 올리다’가 주로 쓰인다. 그러나 ‘선취(先取)’의 ‘취’가 이미 ‘취하다(따다)’의 뜻이니 뒤에 쓴 ‘득(得, 얻음)’이든, ‘올림’이든 불.. 2020. 7. 26.
[상트페테르부르크] 성장통과 혁명의 시대, 그리고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② 카잔 성당과 피의 구원 성당, 그리고 레닌그라드 포위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우리 숙소가 있는 넵스키(‘네바강의 거리’란 뜻)대로는 네바강 강변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번화가다. 이곳은 원래 늪지대였는데 1710년에 처음으로 길이 뚫리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문화,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아름다운 거리 주변에 카잔 성당과 성 이사크 성당, 피의 구원 성당뿐 아니라, 호텔,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들, 음악당 등이 모여 있다. 제정시대의 권력의 상징하는 30층 높이의 성 이사크 성당 성 이사크 성당을 찾은 것은 넷째 날, 페트르고프궁(여름 궁전)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이 성당은 성경 창세기의 ‘이.. 2020. 7. 25.
나무와 숲은 결코 ‘거저’가 아니다 우중 여행, ‘천리포수목원’을 다녀와서 지난 7월 16일부터 1박 2일 동안 나는 충남 서산과 태안 일원을 돌고 있었다. 여름방학에 들면서 동료들과 함께한 여행길이었다. 공주를 지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우리가 만리포를 떠날 때까지 쉬지 않고 내렸다. 우리는 폭우 속에서 예산 수덕사와 해미읍성을 둘러보았고 잠깐 비가 그친 틈을 타 서산 마애 삼존불을 답사했다. 가야산 중턱에서 만나게 된 예의 ‘백제의 미소’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삼존불의 아름다운 미소는 마음에 새겨 두기로 한다. 서툰 몇 줄의 글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리석은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만리포 인근의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우리는 태안군 소원면 의향리의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나는 여느 사람들과.. 2020. 7. 25.
군불은 ‘때고’ 책은 ‘뗀다’ 방송에서조차 ‘때다’와 ‘떼다’를 혼동 인터넷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어법에 어긋난 낱말이 눈에 띄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워낙 유(類)가 많아서 그런지 온라인 신문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아직은 굳건히 기본을 지키고 있는 곳은 종이신문이다. 아마 교열 부서라는 거름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교열 부서를 당연히 갖추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건 영 볼썽사납다. 온 국민이 들여다보고 있는 이른바 골든 타임에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막이 눈을 의심하게 할 땐 시청자인 내가 다 무안하다. 지난 주말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진짜 사나이’를 잠깐 보다가 어법에 어긋나게 쓰인 자막 때문에 결국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실수.. 2020.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