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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한국 부자와 서양 부자

by 낮달2018 2020.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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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자와 서양 부자는 어떻게 다른가

▲ 미국의 최상층 부자들이 산다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피셔 아일랜드. 서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부자동네다.

# 미국과 유럽 풍경

· 미국

거대 부자에 대한 과잉보호를 그만두라(Stop Coddling the Super-Rich)

 

백만 달러 이상을 버는 이들의 경우 –2009년의 경우 모두 236,883가구– 나는 백만 불을 초과하는 과세대상 소득 –이것은 물론 배당과 자본이득을 포함한다– 에 대한 세율을 즉시 인상할 것이다. 그리고 천만 달러 이상을 버는 이들에 대해서는 –2009년의 경우 모두 8,274가구– 추가적인 세율 인상을 제안할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억만장자에 우호적인 의회로부터 그동안 충분히 과잉보호를 받아왔다. 우리 정부가 고통 분담에 대해 진지해져야 할 때다.

     -워렌 버핏(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유럽

“빈곤층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긴축 정책이 아닌 부유층에 대한 증세만이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50만 유로(7억8000만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유층에 향후 2년간 연 5%의 세금을 더 부과해, 1000억 유로의 세수를 확보하자.”

   - 전직 의사 디터 렘쿨을 비롯해 교사·의사·사업가 등 50명으로 구성된 ‘자본 과세를 요구하는 부자들’

 

“세금을 더 낸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 미하일 오토(함부르크에서 해운회사 경영)

 

“국가의 부채를 줄이는 데 사용된다면 세금을 높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 마르틴 킨트(하노버 축구 구단주)

 

“절약해야 하는 일반 가정이 아니라 억만장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위르겐 훈케(함부르거보험 전 소유주)

 

“2~3%의 세금을 더 낸다고 부자가 가난해지지는 않는다. 더 낸 세금이 국가부채 탕감에 쓰인다면 모두가 더 부자가 될 수 있다.”    - 마리우스 뮬러(가수)

 

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나에게 세금을 더 걷으라(Tax me more)”

 -  릴리안 베탕쿠르(화장품 업체 로레알의 최대 주주) 등 프랑스 기업인 16명

-   에티엔 다비뇽(벨기에의 국적 항공사 브뤼셀항공의 공동 창업주

-   루카 디 몬테체몰로(이탈리아 자동차 업체 페라리 회장)

 

# 대한민국 풍경

▲ 서울의 타워팰리스는 한국 부유층과 기득권의 상징이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먹고사는 정신을 길러야지, 무상급식 운운하면 빌어먹는 정신만 생긴다. 또 그렇게 마구 퍼주면 재정은 어떻게 견딘단 말이냐?”

   - 서초구 주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투표한다. 국가의 정의를 위해서 투표하러 왔다. 오세훈 시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으며 자기 한 몸 던진 것이다. 복지는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가 세금으로 무상 급식하는데, 세금 잘 써야 된다.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된다. 그래서 이번에 투표했다.”

“나라의 중심을 잡아주려고 투표하러 나왔다. 지금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이다.”

   - 이상 타워팰리스 주민들

 

“(사람들이) 무상급식 막으려고 투표한 게 아니라 세금 걱정돼서 투표한 것 같다.

   - 타워팰리스 인근 부동산업자

▲ 워런 버핏(미국), 릴리안 베탕쿠르(프랑스), 에티엔 다비뇽(벨기에 )

이게 단순 비교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해서 저들 ‘선한 부자’들만 있는 게 아니고 이들의 움직임이 그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정치권이 이들의 제의를 제대로 수용하기 쉽지 않고, 그에 대한 반발이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또 저들의 움직임은 경제 위기에 대한 대안적 제의인 데 반해 한국의 그것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강남 부자들의 반응이라는 점도 평면 비교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서양 부자들의 움직임이 단순히 일회성 촌극(해프닝)이 아니라 부자들의 진지한 성찰의 결과라는 것과 강남 부자들의 ‘투표의 변’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어 보인다.

 

이 나라 재벌들이 벌이는 행태들, 중소기업 고유 업종 무시 등 돈 되는 일이라면 어디든 발을 들이미는 후안무치와 문어발식 확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구제금융(IMF) 시기에 강남의 건배사가 ‘이대로!’였다던가. 그것은 그들이 이웃의 삶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기득권만으로도 행복에 겨운 ‘천민 자본주의’의 노예라는 사실의 전면적 고백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부유한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하며 ‘이기적’이라 했다. 부자 등 성공한 사람일수록 고립적·이기적 성향을 보이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므로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이웃’이 없으면 그들의 ‘부’도 증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잊은 게 하나 있다.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의 부는 더는 증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웃들의 보잘것없는 구매력이 자신의 부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그는 자신의 부가 다수 이웃의 삶을 지탱해 주는 원천이라는 사실에 과도히 의존한다. ‘노동자 없이는 자본가도 없다’라는 진실에 그들은 굳이 눈을 감는 것이다.

 

세금 증세를 요구하는 서양의 부자들이 이 땅의 천박한 돈의 노예와 다른 점은 바로 거기다. 그들은 이웃들이 자신의 부를 있게 한 당사자라는 점을, 그들과 함께 나누는 삶과 여유가 자신의 부를 더 두껍게 해 주리라는 걸 너무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그 두 부자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다. 단지 ‘세금 부담’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번 주민투표에서 타워팰리스의 한 투표구에서 세운 59.6%의 투표율은 경이다. 그것은 진중권의 말처럼 ‘강남사람들 괜히 잘 사는 게 아니다’라는 징표이되, 자기 기득권의 성채를 지키는 데는 너나가 따로 없는 그들 세계의 ‘사랑법’을 유감없이 드러낸 계급적 표지이기도 한 것이다.

 

 

2011. 9.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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