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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삼천오백 원, 혹은 음료 한 병의 ‘선의’

by 낮달2018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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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한 경관이 노점상 할머니에게 보인 선의

▲ 때로 우리가 베푸는 선의는 '기부'의 형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 아름다운 재단

초중등학교에서 학생들 대신에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 청소를 도맡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엔간히 일반화된 상황 같다. 덕분에 아이들은 청소를 면제받고 아주 잘 관리된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밖에 없었던 20년 전을 생각하면 가히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하다.

 

잘 청소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가끔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를 만날 때마다 나는 몇 해 전에 ‘청소노동자’ 문제를 환기하게 된 홍익대 파업 투쟁을 떠올리곤 한다. 그 투쟁은 학생과 시민들의 연대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는 승리를 선사했지만, 예의 투쟁에 크고 작은 힘을 보탠 사람들에겐 우리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었던 것 같다.

 

그이의 ‘30년 만의 여행’

 

홍익대 파업 투쟁은 청소노동자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지, 정부와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에 얼마나 무관심해 왔는지를 또렷이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또 투쟁을 통해 한때는 ‘투명인간’처럼 보였던 이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존엄한 ‘여성’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뜻 깊은 일이었다. [관련 글 : 청소노동자, ‘투명인간’에서 ‘여성’으로]

 

내가 무심하게 여성 노동자가 청소 중인 화장실을 이용하던 습관을 바꾸게 된 것도 그들 투쟁 이후의 변화다. 이 5, 60대의 여성들이 ‘인간’을 선언하며 투쟁에 나서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들이 화장실을 구성하고 있는 ‘소변기, 대걸레, 비품 상자 같은 사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상을 나누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우리 학교에도 여성 노동자 한 분이 아침 일찍부터 오전 내내 학교 안팎을 청소하고 있다. 물론 그이는 학교가 직접 고용한 게 아니라 용역회사 소속이다. 장화를 신고 남녀 화장실을 오가며 분주히 일하고 있는 이 아주머니를 만날 때마다 우리 교사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는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50대 아주머니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보다 더 나이 지긋한 분으로 바뀌었다. 작년엔 아침 시간마다 보충수업을 들어가느라 이분을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 그러나 올핸 아침 보충이 없는 때면 가끔 일하는 이 아주머니를 더러 만나곤 한다.

 

지난여름은 좀 더웠는가. 화장실 청소에다 계단 청소를 마치고 올라오는데 땀을 팥죽같이 흘리는 걸 보고 방송고 교무실로 잠깐 들어오시라고 했다. 냉장고에서 찬 비타민 음료 하나를 내어 드리고 잠깐 이야길 나누었다. 아마 청소하다가 제대로 의자에 앉아서 쉬기는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아이들이 많이 어지르지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많이 어지르지 않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녀석들 기특하구먼요.”

“대신 화장실에 소변보고 물을 좀 잘 내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냄새가 많이 나요. 그리고 밀대(봉걸레)를 쓰고는 보관대에 걸지 않고 던져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저분해지니 바퀴벌레도 생기고요…….”

 

나는 교사들에게 그걸 전해드리겠다, 앞으로도 잠깐 쉬러 들어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고맙다고 치하하면서 나가는 아주머니의 어깨가 유난히 가냘파 보였다. 나는 교내 쪽지로 담임교사들에게 아주머니의 부탁을 대신 전해 주었다.

 

지난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끝나갈 무렵이다. 화장실 앞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지나가다 내게 광복절 다음 날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느냐고 물었다. 보충은 광복절 전날인 14일에 마친다고, 그러니 16일에는 아이들도 쉰다고 했더니, 아주머니 얼굴이 환해졌다.

 

식구들 어디 가기로 했거든요. 30년 만에 처음 가는 거예요.

 

급하게 지나치는 바람에 나는 정작 그러냐고,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 남짓 남은 방학 동안 나는 줄곧 집에서 쉬었다. 지난주에 개학을 했고, 바로 3학년 중간고사 출제로 부산을 떨다 보니 어느새 9월이 코앞이다.

 

어제 문학 시간엔 70년대 문학사 단원을 배웠다. 전통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시인들로 조병화, 천상병과 함께 정호승의 이름이 나왔다. 천상병의 ‘귀천’과 함께 나는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를 잠깐 소개했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화자 ‘슬픔’이 청자인 ‘기쁨’에게 말하는 형식의 이 시가 겨냥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다. 아이들은 단박에 시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채는 듯했다. 시는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기십만 원에 이르는 물건을 단 일 원도 못 깎고 정가대로 사면서도 헐벗은 할머니 노점에서 이삼천 원어치 과일값을 흥정하는 데 길든 우리들의 모습을 아프게 환기해 준다.

 

삼천오백 원의 ‘선의’

 

내친김에 나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잠깐 만났던 한 ‘미담’ 기사를 소개했다. 지난 8월 중순에 소개된 <경향>의 기사[바로가기 ☞]다. 순찰하던 경찰이 노점에서 과자 파는 할머니가 폭염에 쓰러질까 걱정돼 과자를 다 사가는 사진 한 장이 SNS에 오르면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기사로는 할머니의 사정을 알 수 없다. 길거리에서 값싼 과자라도 팔아야 할 형편이라고 짐작하는 수밖에. 오후 7시께라고 하지만 햇볕이 뜨거울 때다. 순찰 경찰관들은 할머니가 팔고 있는 과자를 몽땅 사 주고 노인을 귀가하시도록 했다. 할머니의 과자 값은, 고작 3천5백 원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삼천오백 원의 ‘선의(善意)’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다. 삼천오백 원이라면 누구나 기꺼이 쓸 수 있는 소액이다. 그러나 그날, 할머니의 노점을 스쳐 간 사람들 가운데 그걸 모두 사 주는 선의를 베푼 사람은 두 경찰관뿐이었다.

 

누구나 베풀 수 있는 선의처럼 보이지만 기실 우리는 살기가 바빠서 이웃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이야기도 곁들였다. 물론 임금을 받고 일하시지만, 너희들 대신에 청소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만나면 인사라도 잊지 말도록 하라고 했더니 아이들 몇몇은 인사를 하는데요,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인은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라고 노래했지만, 세상에 ‘흘릴 줄 모르는 눈물’은 쌔고 쌨다. 그러나 그 차가운 마음에 ‘함박눈을 멈추겠다’라고 선언하지만, 그걸로는 아무도 아프게 할 수 없으리라.(‘함박눈을 멈추겠다’는 의미를 나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으로 해석하곤 한다.)

 

교실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에서 이기는 지식이 아니라, 남의 아픔에 연민하고 성찰할 줄 아는 능력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돌이켜 바라볼 줄 아는 오지랖이다. 밥만 먹으면 공부만 파고,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내 것을 덜어서 남에게 보태는 소박한 선의와 그것을 힘으로 이해하는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어저께 복도에서 다시 아주머니를 만났다. 우리 교무실에 와서 잠깐 쉬세요. 음료수도 한 잔 하시고요, 하고 말을 건넸더니 아니에요, 하고 손사래를 치셨다. 일이 바쁘거나 호의가 부담스러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들고 나갔더니 어느새 아래층으로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모레, 출근해 다시 아주머니를 만나면 지난여름의 여행이 어땠느냐고 여쭈어봐야겠다. 그이가 가족과 함께한 30년 만의 여행은 해외를 제집 드나들듯 나가는 이 땅의 중산층의 그것보다 훨씬 더 넉넉하고 훈훈한 시간이었음에 틀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

 

 

2013. 8.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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