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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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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까’ 사다리와 ‘고까’ 도로 한자어, 발음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지난달 중순께 한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 ‘고가사다리’를 [고까사다리]라 말하는 걸 들었다. 다행히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앵커도 기자도 아닌 방재업체 관계자였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역시 공중파 뉴스에서 ‘고가도로’를 [고까도로]라고 발음하는 기자의 리포트를 들으면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이 ‘고가’로 써도 ‘시렁 가(架)’ 자를 쓴 ‘고가(高架)’와 ‘값 가(價)’ 자를 쓴 ‘고가(高價)’는 명백히 다르다. ‘시렁’이라면 요새 사람들은 낯설지 모르겠다. “물건을 얹어 놓기 위하여 방이나 마루 벽에 두 개의 긴 나무를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든 것”이 시렁이다. ‘값비싼’ 사다리와 도로? ‘고가(高架)’는 [고가]로 읽고 ‘고가(高價)’는 [고까]로 읽는다... 2020. 9. 26.
‘직녀에게’의 시인, 문병란 떠나다 시인 문병란(1935~2015.9.25.) 지난 25일, 문병란(文炳蘭, 1935~2015)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군부 독재정권에 맞서 민중과 통일을 노래하는 참여시를 꾸준히 발표해 온 시인은 1962년 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조선대학교 교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5·18기념재단 이사,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등을 지냈다. 문 시인은 1970년대 이후 ‘죽순밭에서’, ‘벼들의 속삭임’ 등을 발표하며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한 민중문학을 선보였다. (인학사·1971)(창작과비평·1981), (풀빛·1984), (청사·1986) 등 시집 여러 권을 냈고, 전남문학상(1979), 요산문학상(1985)과 박인환 시문학상(2009) 등을 수상했다. 선 굵은 민중시.. 2020. 9. 25.
소설가 최인호를 보내며 최인호(1945∼2013. 9. 25.) 소설가 최인호 씨가 세상을 떠났다 한다. 조금 전 새벽잠에서 깨어 뒤척이다 들여다본 스마트폰 뉴스를 통해서였다. 아내에게 그의 부음을 일러 주었더니 어젯밤에 진작 들었다는 무심한 답이 돌아왔다. 벌써 그렇게 된 거야? 한 70 되었을걸, 하고 대답하다가 그가 1945년생, 해방둥이, 우리 작은누나와 동갑이란 사실을 기억해 냈다. 1970년대 초반 고등학교에서 문예 동아리 활동으로 공연히 바쁘고 심각할 때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 (1967)와 꽤 반향을 일으켰던 ‘당선 소감’을 읽으면서 우리는 문학에 입문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성장에 별 관심이 없다. 아이가 제대로 자라면 고마워할 뿐…….’ 이라는 요지의 수상 소감을 우리는.. 2020. 9. 25.
2020 텃밭 농사 시종기(3) 고추 농사 ② 처음으로 고춧가루 20근을 거두다 좋은 모종으로 시작한 고추 농사 올해는 고추를 심되 비싼 모종, 상인 말로는 족보가 있는 모종으로 심었다는 건 이미 말한 바다. 글쎄, 긴가민가했는데 고추가 자라면서 이전에 우리가 10여 년 이상을 보아온 고추보단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고 우리 내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암만, 돈을 더 준 게 돈값을 하는구먼.” “그러게. 엄마가 지은 고추가 전부 이런 종류였던가 봐.” 그렇다. 일단 키가 좀 훌쩍하게 크는데, 키만 크는 게 아니라 검푸른 빛깔을 띠면서 뻗어나는 가지의 골격이 심상찮았다.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고, 그게 쑥쑥 자라서 10cm 이상 가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선보이자, 우리 내외는 꽤 고무되었다는 얘기도 앞서도 했었다. 처음으로 익은 고추는 지난 회에서.. 2020. 9. 24.
♂개는 ‘수캐’고 ♀고양이는 ‘암고양이’다 ‘암수’가 붙어 거센소리로 축약되는 예는 정해져 있다 창(窓) 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배목걸쇠 크나큰 장도리로 둑닥 박아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잇다감 하 답답할 제면 여다져 볼가 하노라. - 청구영언(靑丘永言) 이 노래는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사설시조다. 사설시조만이 갖는 특징적인 수사법과 해학이 넘치는 작품이다. 과감한 비유, 그리고 열거와 반복으로 만드는 특유의 가락은 흥겹기만 하다. 물론 그 재료는 민중들의 일상적 언어다. 마음속에 쌓인 비애와 고통,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면서 시적 화자는 자기 가슴에 창을 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대의 온갖 문의 종류(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를 나열하고, 암톨쩌귀와 수톨쩌귀에.. 2020. 9. 23.
‘하사(下賜)’, 왕조시대의 언어와 근대 버리지 못하는 왕조 시대의 언어들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강제 병합되면서 봉건왕조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이 난만한 민주주의 시대에도 왕조시대의 수직적 질서와 관련된 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시절의 권위적 언어가 남은 것은 20세기의 100년으로도 완고한 봉건적 질서를 넘기가 간단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사(下賜), 왕조시대의 언어들 뜬금없이 ‘봉건’을 얘기하는 것은 한가위를 앞두고 대통령이 군 장병에게 특별휴가와 간식을 주기로 하면서 쓴 ‘하사(下賜)’란 표현으로 인한 논란 때문이다. 굳이 국어사전을 펴보지 않아도 ‘하사’가 왕조시대의 언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으로 풀이된 하사의 ‘사(賜)’는 ‘주다’의 뜻이긴 하다. 그러나.. 2020. 9. 23.
그 ‘상처’로 오늘이 여물었네 ‘실천시선’ 200호 기념 시선집 어제, 며칠 전 주문한 책 몇 권을 받았다. , , 같은 책 가운데 흰 표지에 노랑 띠를 감은 ‘실천시선’ 200호 기념 시선집 가 끼어 있다. 특별히 이 책을 주문한 이유는 없다. 아마 ‘200호’라는 데 마음이 간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1989년 해직 교사 출신 시인들 차례를 천천히 훑는데 낯익은 이름과 시편 몇이 눈에 들어왔다. 김진경, 도종환, 배창환, 김종인, 정영상, 조재도, 신용길, 조향미……. 서울과 경상도, 충청도 어름의 중고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89년 해직의 칼바람을 맞았던 이들이다. 정영상(1956~1993)과 신용길(1957~1991)은 해직 기간에 고인이 되었다. 신용길 시인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나는 생전의 그이를 알지 못했.. 2020. 9. 22.
늦은 메밀꽃, 이른 단풍 1. 임기리의 ‘늦은’ 메밀꽃 강원도 봉평 메밀꽃 구경을 나섰다가 영주 무섬에 다녀온 게 지난 9월 5일이다. 우연히 봉화 소천면 임기리 메밀밭 소식을 듣고 거기서 ‘원수’를 갚겠다고 별러 온 지 2주였다. 썩 내켜 하지 않는 가족들을 구슬려 집을 떠난 게 오후 2시가 훨씬 넘어서다. 봉화군 소천면 임기리 지역은 50ha에 메밀을 재배하고 있는 국내에서 최대의 메밀 생산지라고 한다. 당연히 축제도 베풀어진다. ‘소천 메밀꽃 축제’는 9월 19·20일 이틀에 걸쳐 현지에서 베풀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종 플루가 번지면서 이 축제는 취소되었다. 나는 축제가 취소돼 한적한 임기리를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었다. 일부러 내비게이션이 일러 주는 낯선 길을 선택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임기리 근처.. 2020. 9. 21.
남과 북이 기리는 양세봉 장군, 그 ‘유일(唯一)’의 역설 [역사 공부 ‘오늘’] 1934년 9월 20일,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 장군 순국 1934년 9월 20일, 랴오닝성 환인(桓仁)현 대랍자구(大拉子溝)에서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1896~1934) 장군이 매복한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교전하다가 전사, 순국했다. 향년 38세. 이십 대 초반에 무장 항일투쟁을 시작한 이래, 단 한 순간도 총을 내려놓지 않았던 사람, 양세봉은 전투의 현장에서 죽었다. 그는 조선혁명군으로 싸운 다섯 해 동안 일본군과 만주국 군경과 80여 차례 전투를 벌여 일본군 1천여 명을 죽였고, 흥경성, 노구대, 쾌대무자 전투를 승리를 이끈 이였다. 독립군이 좌우로 갈려 좌익은 중국 공산당 휘하로 들어가고, 우익은 중국 본토로 옮겨갔을 때, 만주에 남아 일제와 싸운 독립군은 그의 휘하 조.. 2020. 9. 20.
문명의 철길 위에 펼쳐지는 ‘슬로우’ 바이크 [여행] 강원도 정선 레일바이크 탑승기 철길을 걸어 보았는가. 흔히들 ‘영원한 평행선’이라는 진부한 비유로 기억되는 기찻길을.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태어나 굉음을 지르며 들판을 달려오는 기차를 사람들은 ‘쇠말[철마(鐵馬)]’이라고 불렀다. 여전히 봉건 시대의 질곡을 채 빠져나오지 못한 시기에 그것은 마치 이후 물 밀듯 들어온 낯선 문명의 전초병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기관차는 증기에서 디젤로, 그리고 전기로 가파르게 발전해 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기차가 철로를 따라 달리고 역에서만 선다’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기차는 ‘떠남’의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운송 수단이다. 평행으로 이어져 소실점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철길은 ‘부재’의 의미를 새삼 환기해 주는 것이다. 기차여행이 버스나 승용차.. 2020. 9. 20.
‘지’라고 다 같은 ‘지’ 아니다, 의존명사 ‘지’만 띄어 쓴다 의존명사 ‘지’와 ‘어미’ ‘-지’나 ‘-ㄴ지’, ‘-ㄹ지’는 구분하라 지난해 3월에 ‘지’의 띄어쓰기에 관해 쓴 바 있다. 요지는 의존명사 ‘지’는 당연히 띄어 써야 하지만 나머지 ‘어미’로 쓰이는 ‘-지’나 ‘-ㄴ지’, ‘-ㄹ지’ 따위는 띄어 써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말에서 ‘의존명사’는 의미적 독립성은 없으나 다른 단어 뒤에 붙어서 명사 구실을 하므로, ‘단어’로 다루어진다. 독립성, 즉 혼자서 쓰일 수 없으므로 앞 단어에 붙여 쓰느냐 띄어 쓰느냐 하는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쓴다’라는 원칙에 따라 띄어 쓰는 것이다. 혼자 쓰일 수 없는 ‘의존명사’ 다음은 가장 흔히 쓰는 의존명사들이다. ‘주어성’이라 함은 주어로 쓰이는 성질이란 뜻이다. 주어로 쓰이는 이들 .. 2020. 9. 19.
이문열, 그도 그 ‘험한 꼴’의 일부가 아닌가? 이문열은 ‘보수우익’의 ‘백기사’? 가 작가 이문열의 인터뷰 기사(2010.9.5)를 실었다. 글쎄, 이 굳이 이문열을 만난 것은 인터뷰 서두에 나온 대로 ‘인사청문회-유명환 딸 특채 파동’ 등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이 ‘보수우익 작가’로부터 ‘쾌도난마’식 해법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문열은 요즘 같은 ‘보수가 몰리는’ 시기에 등장하는 우익의 ‘백기사’ 노릇을 계속해 왔으니 말이다. 그는 현시기에 대해서 “정말 험한 꼴을 못 봐서 그렇다”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물론 이 비판이 겨냥하는 곳은 보수 진영이다. “좌파에 정권뿐만 아니라 국회 권력까지 다 넘겨줘 봐야 정신 차릴까? 한심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정신 차릴 주체’를 따로 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 보수는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배와 .. 2020.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