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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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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문학’의 거목, 작가 이호철 떠나다 ‘실향’ 소설가 이호철(1932~2016. 9. 18.)) 소설가 이호철(李浩哲,1932~2016)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던 작가는 지난 18일 오후 7시 32분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단신으로 월남했던 19살 청년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남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단신 월남 19살 청년에서 분단문학의 거목으로 일주일이면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고 삼팔선을 넘었던 작가는 결국 한반도 분단과 이산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고인은 1950년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참전한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됐다가 풀려난 뒤 이남에서 작가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형상화해 왔다. 1955년 단편 ‘탈향(脫鄕)’이 에 추.. 2020. 9. 18.
‘주류 일절’에서 ‘안주 일체’까지 잘못 쓰이고 있는 한자어 산길로 접어드는 출근길 어귀에 음식점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바깥벽에 여기서 취급하는 품목을 선명하게 써 붙여 놓았는데, 거기 요즘에는 보기 드문 낱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부산물 일절’과 ‘다대기 일절’.(‘다대기’는 일본어 ‘tata[叩]ki’에서 온 말이다.) 아직도 저 낱말이 쓰이는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저 습기 찬 6·70년대의 풍경과 정서를 고스란히 떠올려 주는 듯했다. 선술집이나 간이식당의 유리 달린 미닫이문마다 빨간 페인트(‘뺑끼’라고 불러야 더 어울리는!)로 써 놓은 메뉴는 십중팔구가 ‘주류 일절’, ‘안주 일절’이었다. 아직도 ‘일절(一切)’이 쓰인다 그것은 과자 부스러기나 석유를 팔던 동네 가게에도 붙어 있었다. .. 2020. 9. 17.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 돌아가다 의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 9. 16.)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에드워드 올비는 유진 오닐(1888~1953),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 아서 밀러(1915~2005)를 잇는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의 에드워드 올비 올비는 최초의 단막극 가 독일(1959)과 오프브로드웨이(1960)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래, (1967), (1975), (1994) 등으로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수상했다. 그가 남긴 30여 편의 희곡은 오늘의 미국 사회와 미국인이 안고 있는 소외·좌절·고독·허무와 절망적 삶의 모습을 다루.. 2020. 9. 16.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을 ‘저해한다’? 서술어, 함부로 생략해선 안 된다 술병에 붙이는 음주 경고문이 21년 만에 바뀌었는데 이 문구가 문법에 맞지 않은 비문(非文)이었다. 결국 논란 끝에 보건복지부를 이를 다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문제의 문구는 주어와 서술의 호응이 되지 않는 비문이라는 것이다. [관련 글 : ‘주어의 생략’을 ‘주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술병에 붙은 ‘과음 경고 문구’를 읽어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흡연 및 과음 경고 문구 등 표시내용’은 고시로 지정된 의무사항이다. 소주든 맥주든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모든 주류용기에는 지정된 경고 문구를 표시해야 한다. 이번에 개정된 고시의 경고 문구는 세 가진데 그 중 ‘임신 중 음주’의 위험성을 경고한 문구가 잘못 쓰였다. 해당 문구는 문장 안에 세 가.. 2020. 9. 15.
VOD로 만나는 ‘꽃보다 할배’들의 젊은 시절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만나는 원로 배우들의 전성기 문학 교과서에서 ‘삼포 가는 길’을 가르칠 차례다.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생략된 원문을 인쇄해 나눠주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영화 (1975)의 자료 사진을 찾아 나섰다. 30년이 훌쩍 지난 탓인지 마땅한 자료가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우 몇 장의 스틸컷과 아랫부분이 잘린 포스터를 갈무리할 수 있었다. 주초에 두 개 반은 그거로 수업을 했다. 스틸컷에 나온 낯익은 배우들은 아이들에겐 낯설기 짝이 없다. 그나마 주인공 영달 역의 ‘백일섭’은 안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머리를 갸우뚱한다. 분명 칼라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스틸컷은 흑백밖에 남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어저께 기사를 통해 한국영상자료원(http://www.koreafilm.o.. 2020. 9. 14.
‘햇빛’과 ‘해님’은 사이시옷 한 끗 차이? 합성어와 파생어에서 ‘사이시옷’ 쓰기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 소속의 김해님이란 선수가 있다. 언젠가 경기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았는데 등판에 새겨진 ‘김해님’이란 이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햇님’이라 쓰지 않고 이름을 제대로 썼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그는 2007년 방출되어 지금은 일본 독립 리그의 코치로 활동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의 화보에서 한 여성 모델을 만났는데 이름이 ‘김햇님’이었다.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성 연예인들의 풍만한 몸매를 ‘황홀한’, ‘아찔한’, ‘명품’, ‘이기적’ 따위의 꾸밈말로 소개하며 누리꾼들을 유인하고 있는 코너다. 푸근한 표정의 이 모델도 몸매보다는 그 이름에 눈길이 갔다. 프로야구 선수 김해님과 모델 김햇님 사람의 이름은 ‘고유명사’다. 따라서 .. 2020. 9. 12.
‘신관’은 훤하고, ‘심간(心肝)’은 편하다 ‘신관’은 얼굴, ‘심간(心肝)’은 심장과 간장 “원장님 심간이 아주 편하신가 보네, 이렇게 활짝 웃고 계시니. 집이 온통 불타고 있는데, 대체 어찌하겠다는 심산인지….” “아이고, 어르신 요즘 신관이 훤하신데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위의 것은 지난 주말 한 일간지 기사[관련 기사 : 김명수 대법원장은 묵언수행 중?]에 나온, 어떤 변호사가 웃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진을 보면서 뇌까린 말이고 아래는 우리가 시골에서 흔히 듣곤 하던 말이다. 기사를 읽다가 나는 ‘심간’이 낯설어서 순간적으로 “어! 이거 신관을 잘못 쓴 거 아냐?”하고 생각했다. ‘신관’, 남의 얼굴을 높여 이르는 말 ‘신관’은 요즘 젊은이들은 더는 쓰지 않는 말이지만, 시골에 가면 일상어처럼 쓰인다. 짐작했겠지만, 이 말은 흔히 .. 2020. 9. 11.
왜 ‘미친 사랑(crazy love)’은 ‘서글픈 사랑’이 되었나 블루진의 ‘서글픈 사랑’이 된 폴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 고등학교 신입생이던 1972년 겨울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동아리 친구 녀석이 ‘요즘 유행하는 노래’라며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단박에 느낌이 달랐다. 쥐어짜는 듯한 가수의 목소리가 떠난 사랑을 추억하는 노랫말과 맞춤하게 어울리는 노래였던 까닭이다. 그게 ‘서글픈 사랑’이다. 친구 녀석은 동무들 가운데 드물게 집에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고작 라디오를 통해서 인기 가요를 익히고 있었던 우리와 달리 녀석의 집에는 이른바 ‘엘피(LP)’판이라는 음반이 수북했다. 당연히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녀석이 훨씬 빨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이내 그 노래를 배워 흥얼거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쇠라도.. 2020. 9. 10.
그들을 더는 ‘가정부’라 부르지 말라 가사 노동자, ‘가정부’ 아닌 ‘가정관리사’로 “가사노동자를 가정부라 부르지 말라”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에서 방영할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의 제목을 바꾸라고 요구한 주체는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노동자회·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의 여성단체다. ‘가정부’라는 이름이 가사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직업을 비하’한다는 이유에서다. 어쩐지 낯설어 뵈지 않는다 싶더니 이 ‘가사서비스 노동자’와 관련한 제목 논란은 2011년도에 (KBS)에서도 있었다. 당시 한국방송은 ‘식모들’이란 제목의 드라마를 방송하려다 여성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로맨스 타운’으로 제목을 바꿨었다. 가정-부(家政婦) 「명사」 일정한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 · 가정부를 두다. · 그가.. 2020. 9. 8.
‘교원 단결권’ 되찾는 데 7년, 그건 너무 길었다 전교조 합법 지위 회복에 대한 퇴직 원년 조합원의 감회 오늘 새벽, 잠에서 깨어나면서 손을 뻗어 머리맡의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5분. 새로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내처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문득 며칠 전에 확인한 1989년 해직 동료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상식의 회복’ 앞에 모두 담담하다 대화방에선 뇌를 수술하고 정양 중인 내 띠동갑 일흔일곱 살 김 형님의 근황에 쾌유를 비는 후배들과 수도권으로 옮겨가 근무하다 최근 공모 교장으로 초빙된 동료 여교사에 대한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작 지난 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하다’는 대법원판결 소식은 누군가의 ‘노조 승리!’.. 2020. 9. 8.
빗돌로 남은 두 여인, ‘열녀’인가 ‘주체적 여성’인가 나라에서 정려한 구미 열녀 약가(藥哥)와 향랑(香娘)을 찾아서 코로나19로 사실상 칩거 생활을 한 지 꽤 오래됐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지자체의 ‘문화·관광’ 누리집을 길라잡이 삼아 인근 문화재를 찾기 시작했다. 누리집에서 나는 시뻐 본 구미에도 국가 지정문화재인 국보가 1점, 보물이 12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 지정문화재도 유·무형 문화재와 민속자료, 문화재자료 등 모두 69점이나 되는데, 그중 흥미로운 데부터 하나씩 들러 보기로 하면서 숨통을 틔우기로 했다. 삼강정려의 열녀 약가의 ‘주체적 수신(守信)’ 처음으로 찾은 데가 문화재자료인 선산 삼강정려(三綱旌閭)다. 삼강정려는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한 마을에서 나은 충신, 효자, 열부, 세 사람을 기린 정려각(旌閭閣)이다. 내비게이션을 .. 2020. 9. 6.
논란의 <한국사> 교과서, 정부의 직무유기 [서평] 역사교육연대회의 지음 뉴라이트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들이 주도해 국사편찬위원회 최종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아래 교과서) 때문이다. 6일부터 교사들에게 공개된다고 하는 의 전모는 아직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관련 보도를 종합해 보면 를 관통하는 관점을 짐작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의 근현대사를 꿰뚫는 관점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이승만·박정희 체제에 관한 기술은 ‘미화’에 가깝다는 게 관련 보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관한 기술은 축소·왜곡했고 조선인 친일 협력자 활동은 긍정적으로 서술해 친일 행위를 합리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제는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을 발표하고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들을 침략.. 2020.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