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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118

독동리 반송, 그 다소곳한 자태로 ‘천연기념물’이 되다 [선산 톺아보기 ㉑] 선산읍 독동리 반송(盤松)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가끔 2일과 7일에 각각 서는 선산 장에 들르곤 한다. 마트에서와 달리 인심이 넉넉하고, 때로 에누리도 해 주는 시골 장의 풍경이 좋아서다. 특히 아내가 즐겨 드나드는데 며칠 전에는 김장용 마늘을 사러 들렀다. 아무래도 잘 고르면 실한 놈을 시내보다 싸게 살 수가 있다. 2일과 7일에 서는 ‘선산 오일장’ 우리는 그냥 ‘선산 장’이라고 부르는데 정식 이름은 ‘선산 전통 시장’, 또는 ‘선산 봉황시장’이란다. 선산 읍성 남문인 낙남루(落南樓) 뒤편으로 비봉산에서 흘러내린 단계천(丹溪川) 복개도로로 이어진 시장판은 늘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친다. 우리는 낙남루 뒤쪽 도로변에 .. 2022. 11. 29.
‘나그네’ 여헌이 15년간 유랑 끝에 돌아온 옛터 모원당(慕遠堂) [선산 톺아보기 ⑳] 구미시 인의동 모원당(慕遠堂)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퇴직하겠다고 고향 인근인 구미로 전입한 게 2012년이다. 퇴직은 뜻밖의 걸림돌 때문에 미루어져 4년 뒤에야 간신히 할 수 있었다. 퇴직하면 시간이 온전히 자기 것인 줄 알았지만, 인동의 대종가와 여헌의 종택인 남산고택(南山古宅)을 찾은 건 퇴직 4년 뒤인 2020년 9월이 되어서였다. 인동장씨 대종가 ‘옥산고택(玉山古宅)’ 인동동의 인동장씨 대종가 옥산고택(玉山古宅)은 초등학교 때 선친을 따라 들렀던 고색창연한 고가가 아니라 2000년에 새로 지은 집이었다. 시조인 삼중대광공(三重大匡公) 금용(金用)의 유허지로 고려 초에 창건한 뒤 그 집에서 천여 년 동안 종손이 대.. 2022. 11. 27.
여헌기념관에 고인 ‘중세(中世)의 훈향(熏香)’과 21세기 사이 [선산 톺아보기 ⑲] 중세의 대학자 여헌 장현광과 여헌기념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인동장씨 가문에서 낸 대학자 여헌 장현광 선친으로부터 여헌(旅軒) 선생 이야기를 들은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이야기라고 해도 우리 집안에 그런 대학자가 계셨었다는 정도였을 뿐이었고, 나는 그의 함자도 몰랐다. ‘만회당(晩悔堂) 할배’ 이야기는 더 자주 들었으나, 역시 함자를 따로 말씀하시진 않으셨다. 여헌이 조선 중기의 대 유학자 장현광(張顯光) 선생임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철학 교재에서였다. 퇴계의 문인이 아니면서도 독자적 성리학 체계를 이룬 학자라고 소개된 글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그저 끄덕였을 뿐이다. 그의 학문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어서였는.. 2022. 11. 25.
그 서원은 여헌이 심은 4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지키고 섰다 [선산 톺아보기 ⑱] 구미시 임수동 동락서원(東洛書院)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동락서원(東洛書院)은 구미시 임수동 373번지, 낙동강 강변의 나지막한 산비탈에 자리 잡았다. 서원 앞이 아닌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좌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4년에 개통한 낙동대교가 산 앞을 성큼 막으며 공단동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도로를 지나며 서원을 굽어보며 지나야 한다. 서원이 깃들인 산은 1970년대까지 우리 집안의 선산이었다. 지금도 거기엔 우리 집안 윗대의 묘소가 10여 기 남아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한가위 전이면 나는 집안의 재종숙(再從叔), 그러니까 내 칠촌 아저씨와 함께 그 산에 .. 2022. 11. 21.
금오산의 가을, 단풍 풍경 경북 환경연수원 부근에 머무는 가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구미에 옮겨온 지 10년째지만, 나는 여전히 금오산에 오르지 못했다. 어쩌면 ‘오르지 않았다’라고 쓰는 게 훨씬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금오산 제1폭포 아래까지는 오른 적이 있었다. 기억도 희미한데,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외지를 떠돌다가 2012년에 구미에 들어왔다. 구미 산 지 10년, 아직도 금오산에 오르지 못했다 칠곡은 지척이니 누구는 고향에 돌아온 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구미를 고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적어도 유년 시절의 기억이 남은 공간이 아니라면, 거기를 고향이라 할 수 없다. 내 고향은 지금은 인구 2만을 넘겨 읍으로 승격하면서 옛 모습을 .. 2022. 11. 7.
해동초성이 시서(詩書)를 즐기던 ‘매와 학’의 정자 [선산 톺아보기 ⑰] 고아읍 예강리 매학정 일원(梅鶴亭一圓)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구미시 해평면에서 고아읍으로 들어오려고 낙동강 다리 숭선대교를 건너면 오른쪽 강변 나지막한 산비탈에 팔작지붕의 정자 하나가 보인다. 매학정(梅鶴亭).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정자라 싶으면서도 워낙 산뜻한 모습이 그리 유서 깊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고아읍 예강리 매학정은 고산 황기로 유적 2012년에 구미로 옮겼지만, 이듬해 3월이 되어서, 해평 쌍암고택에 다녀오는 길에 처음 그 정자를 찾은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문화재 안내판에 고산 황기로(1521~1575 이후)의 유적이라고 씌어 있었지만,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하고 많은 선비 중 한 사람이겠거.. 2022. 9. 17.
온몸으로 불 꺼서 주인 구한 의견(義犬), ‘의구총’으로 전한다 [선산 톺아보기 ⑯] 해평면 낙산리 의구총(義狗塚) 구미에는 ‘의로운 소’의 무덤만 있는 게 아니라 ‘의로운 개’의 무덤 ‘의구총(義狗塚)’도 있다. 의구총은 산동면 인덕리 의우총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상주로 넘어가는 길, 해평면 낙산리 큰길가에 있는 조선 후기 개 무덤이다. 낙산리 삼층석탑에서 10여 분만 더 가면 길 오른쪽의 의구총에 이른다. [관련 글 : 구미 의우총 이야기, 소의 의로움이 이와 같았다] 25번 국도 따라 의우총 이어 ‘의구총’도 있다 의구총의 유래담도 1655년(현종 6) 선산 부사 안응창(1603~1680)이 지은 ‘의구전조(義狗傳條)’에 전해져 온다. ‘의구’의 일은 ‘의우의 일’이 있기 오래전에 일어난 일로,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선산부(善山府) 동쪽 연향(延香 .. 2022. 9. 6.
고갯길 마애불과 구미 제2공단, 혹은 경제 논리 [선산 톺아보기 ⑮] 황상동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1992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은 인동광장에서 옥계2공단로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돌고개(석현, 石峴) 왼쪽에 솟은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磨崖佛)이다. ‘마애(磨崖)’란 ‘갈 마(磨) 벼랑 애(崖)’ 자를 써서 “석벽에 불상이나 글자, 그림 따위를 새김”(다음한국어사전)이라는 뜻이다. 마애불, 노출된 바위에 새긴 부처 마애불은 엄밀한 의미에서 노출된 바위 면에 조각된 불상을 말한다. 그러나 조각된 면이 깊이 들어간 불감(佛龕 : 불상을 모셔 두는 집 모양으로 된 장. 좌우에 여닫는 문이 있다)이나 사람의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큰 석굴 사원의.. 2022. 8. 17.
청화산 중턱 폐사지, 무너진 불탑은 복원될 수 있을까 [선산 톺아보기 ⑭] 청화산 주륵사지(朱勒寺址) 폐탑(廢塔)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경북 문화재자료 주륵사지 폐탑을 찾아서 선산에 문화재로 등록된 불탑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죽장리 오층석탑(국보)과 낙산리 삼층석탑·도리사 석탑(이상 보물), 그리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주륵사지 폐탑’이 있다. 주륵사지(朱勒寺址)는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 산 123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 주륵사의 절터고, 그 절터에 석탑재(石塔材)와 초석(礎石)만 남은 탑이 주륵사지 폐탑이다. 주륵사에 대한 문헌 기록은 소략하다. 에 “주륵사는 냉산(冷山) 서쪽에 있다. 고려 때 안진(安震)이 지은 승(僧) 혜각(慧覺)의 비명(碑銘)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 충렬왕 21년.. 2022. 8. 12.
도리사, 드는 이 편안히 품어주니 ‘최초 가람’ 아닌들 어떠랴 [선산 톺아보기 ⑬] 태조산(太祖山) 도리사(桃李寺)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태조산 도리사(桃李寺) 일주문은 도리사 2Km 앞 아스팔트 길 위에 세워져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로 지은 이 산문에는 금빛으로 쓴 ‘해동 최초 가람 성지 태조산 도리사’란 현판이 달려 있다. 도리사는 거기서 느티나무 가로숫길로 산길을 십여 분 더 가야 있다. 정말 도리사는 ‘해동 최초 가람’일까 태조산(太祖山 691.6m)은 선산의 진산인 비봉산의 동쪽 줄기에 해당하는 산으로 원래 이름은 냉산(冷山)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산에 어가(御駕)를 두어 숭신산성을 쌓고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왕건은 925년 후백제 견훤과의 팔공산 전투에서 크.. 2022. 8. 6.
폐사지를 지켜온 돌탑, 그 천년의 침묵과 서원 [선산 톺아보기 ⑫] 선산읍 죽장리 오층석탑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죽장사(竹杖寺)는 선산 읍내에서 서쪽으로 약 2km쯤 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나들목 어귀 오른쪽에 있는 죽장리에 있다. 죽장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오층석탑이 서 있다. 죽장리 오층석탑은 높이가 10m에 이르러 전탑형의 5층 탑으로는 나라 안에서 가장 높다. 1968년에 국보로 지정됐다. 4백여 년 폐사지를 지켜온 오층석탑 죽장사에 있는 오층석탑이니 당연히 ‘죽장사 오층석탑’으로 불리어야 하지만, 아직도 ‘죽장리 오층석탑’이다. 죽장사는 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지만, 이력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관련 기록으로는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권29 선산 도.. 2022. 8. 4.
문성지의 연꽃과 고라니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구미시에 붙은 고아읍 원호리와 문성리는 구미 시내와 진배없다.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 새로운 시가지를 형성하면서 ‘원호’나 ‘문성’으로 불린다. 원호리에서 한 블록쯤 더 떨어진 문성리에는 에 “둘레가 3천6백70척이고 못 안의 민가가 크게 부유하니 관개(灌漑)의 이로움이 많았다.”라고 기록된, ‘여우못’으로 전해 오는 저수지가 있다. 우리는 지금껏 ‘들성지’, 또는 ‘들성못’으로 불러왔는데, 확인해 보니 정식 이름은 ‘문성지’다. ‘못’은 순우리말이고, ‘지(池)’는 한자어다. 대체로 한자어 이름 뒤에는 ‘지’가 붙고, 순우리말 뒤에는 ‘못’이 붙는 경향이 있다. 금오산 아래에 있는 ‘금오지’나 ‘대성지’가 그렇고.. 2022.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