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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금오산의 가을, 단풍 풍경

by 낮달2018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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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환경연수원 부근에 머무는 가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경북 환경연수원의 환경교육관으로 가는 길의 단풍나무 가로수. 잎이 빨갛게 물들었다.
▲ 경북 환경연수원의 진입로. 100m 가량 직원들이 가꾼 갖가지 빛깔의 국화를 장식한 꽃길을 만들어 놓았다.

구미에 옮겨온 지 10년째지만, 나는 여전히 금오산에 오르지 못했다. 어쩌면 ‘오르지 않았다’라고 쓰는 게 훨씬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금오산 제1폭포 아래까지는 오른 적이 있었다. 기억도 희미한데,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외지를 떠돌다가 2012년에 구미에 들어왔다.

 

구미 산 지 10년, 아직도 금오산에 오르지 못했다

 

칠곡은 지척이니 누구는 고향에 돌아온 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구미를 고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적어도 유년 시절의 기억이 남은 공간이 아니라면, 거기를 고향이라 할 수 없다. 내 고향은 지금은 인구 2만을 넘겨 읍으로 승격하면서 옛 모습을 거의 잃어가고 있는 칠곡의 석적이고, 구미는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찾은 타관이기 때문이다.

 

2012년에 구미에 전입하면서 언젠가 금오산을 오르리라 여겼었는데, 나는 10년을 고스란히 흘려보냈다. 누구와도 함께 오를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굳이 거기 올라야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오르자는 얘기도 몇 번인가 했지만, 둘 다 무릎이 시원찮아서 차일피일하다가 공수표가 되었다. 

 

금오산(金烏山 976m)은 원래 이름이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해 손색없다고 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고도 하였다. ‘금오산’이란 이름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금오(金烏)]가 나는 모습을 보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산의 능선을 유심히 보면 ‘왕(王)’자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인데,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도 이 산을 보고 왕기가 서려 있다고 하였다.(박정희를 숭앙하는 이들은 이쯤에서 그가 왕기를 타고 태어났다고 굳게 믿을 것이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기록은 여기서 멈춘다) 산은 경사가 급하고 험난한 편이나, 산정(山頂) 쪽은 비교적 평탄한데 이곳에 금오산성이 있다.

 

아도화상이 만난 ‘황금빛 까마귀’[금오(金烏)]

 

금오산은 구미시가 성장하면서 관광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좁고 긴 계곡 입구에는 해방을 전후하여 조성한 금오산 저수지[금오지(金烏池)]가 있다. 시에서 저수지 가장자리를 빙 둘러 총 2.4㎞의 길을 내어 ‘금오산 올레길’이라 부르는데, ‘큰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뜻하는 제주도 말’인 올레를 붙이는 게 그리 온당해 보이진 않으나 이 길은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나도 2013년 봄에 금오지 둘레를 한 바퀴 돌았었다. [관련 글 : 금오산 봄나들이]

▲ 금오산 저수지(금오지). 단풍이 물든 산 아래로 데크로 만든 둘레길이 보인다. 구미 성리학역사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금오산은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공영 주차장 맞은편 계곡 너머에 고려 말의 충신이요, 성리학자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유덕을 추모하려 1768년(영조 44)에 세운 채미정(採薇亭)이 있다. 채미정 옆으로 곧장 오르면 호텔 금오산을 거쳐 본격적인 금오산 주 등산로다.

 

등산로 입구에 대혜폭포[大惠瀑布, 이칭 : 명금(鳴金)폭포]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가 있다. 대혜폭포는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고 새겨진 27m 높이의 작은 폭포이나,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여 ‘명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앞에는 의상이 수도하였다는 도선굴(道詵窟)과 해운사(海雲寺)와 약사암(藥師庵)이 있다.

 

정상의 암벽에는 1968년 보물로 지정된 4m 높이의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 시대의 마애불이다. 금오산성은 험준한 정상부와 계곡을 이중으로 두른 석축산성인데,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때 보수하였고, 1410년(태종 10) 국가적 사업으로 크게 고쳐 쌓았으나 외적의 침입이 없자 차츰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병자호란과 1868년(고종 5)에 계속해서 고쳐 쌓았다.

 

해발 800m에 비교적 평탄한 분지 형태를 이루며 형성된 습지가 있다. 한때 사람들이 살기도 해 ‘성안마을’로 불리기도 하는 성안습지다. 금오산은 화강편마암을 뚫고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암류가 뚫고 들어가서 형성된 산이어서 산세가 기복이 심하다. 해발 700m 높이 부근에서 급경사와 절벽, 깊은 골짜기를 이루어 물을 머금지 못한다. 그런데도 금오산의 골짜기들에 물길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성안습지에 형성된 고위 평탄면이 빗물을 받는 커다란 양동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금오산 현월봉. 사진 : https://www.ramblr.com/

금오산의 정상은 ‘달을 걸었다’라는 뜻의 현월봉(懸月峯 976m)으로 주 등산로로 이어진다. 금오산 도립공원에서 구미 성리학역사관을 지나 나타나는 골짜기에 경북 환경연수원이 있다. 환경연수원의 교육관을 거쳐서 오르면 칼다봉(715m) 쪽으로 오를 수도 있고, 반대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금오지 전망대에 이른다. 나는 칼다봉엔 오르지 못했지만, 금오지 전망대는 한번 들렀었다.

 

환경연수원 주차장에는 주차비를 따로 받지 않고, 연수원 뒤편으로 잘 가꾸어진 길로 오르는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해서인지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마 주 등산로 쪽으로 가는 게 부담스러운 이들이 여기로 모이는지도 모르겠다.

 

환경연수원에는 실내 교육시설 말고도 수생태 체험학습장, 야외 학습체험장, 숲속 교실 등 야외 체험 시설 주변엔 조경이 잘 돼 있다. 또 연수원 진입로 일대 100여m 구간은 직원들이 가꾼 국화 ‘힐링의 길’로 개방하고 있는데 갖가지 빛깔의 국화로 장식한 길에 시민들이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 경북 환경연수원의 교육관 아래에 억새가 하얗게 피었다.
▲ 수생태 체험학습장으로 오르는 언덕길 오른쪽 울타리에 국화가 피었다.

지난 토요일 오전, 산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칼다봉 쪽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연수원에 들렀는데, 칼다봉으로 오르는 진입로 쪽을 막아놓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산불을 예방하고자 주 등산로만 빼고 나머지 등산로는 모두 폐쇄했다는 것이다.

 

가을 산에는 단연 단풍을 즐기려고 하지만, 막상 단풍은 보도 사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곱지도, 맑지도 않다. 햇살은 맑고 투명하지만, 그 햇살만큼 단풍잎은 투명하지 않다. 맑고 고운 잎이 만들어지려면 햇볕과 바람, 이슬과 온도 등의 조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유아자연놀이학습장인 색동원 부근
▲ 아직 푸른 단풍잎과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이 어우러진 산비탈 풍경.
▲ 숲속 놀이체험공간인 숲속 학교 근처
▲ 단풍잎이 푸른색, 빨강, 노랑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 단풍나무 몇 그루가 각기 다른 단풍잎으로 어우러져 있다. 전통교육관 아래.
▲ 칼다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서 막혀 돌아서자, 마른 계곡에 돌로 쌓은 조그만 탑들이 모여 있다.
▲ 전통교육관 부근. 청소년들의 전통교육, 명륜교실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 단풍잎은 햇볕을 받으면서 비로소 맑고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 숲속 교실 부근.
▲ 내려오는 길. 수생태 체험학습원 부근.
▲ 일반 감보다는 훨씬 적은 돌감(산감)이 다닥다닥 달린 나무.

나는 후보정을 통해, 사진의 밝기를 조정하고, 빛깔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맑게 조절했다. 후보정에 대한 결벽이 있는 사진가도 있지만, 나는 거기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나는 글쓴이로서 독자에게 풍경을 정리해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단풍을 보면서 찬탄을 금하지 못하는 풍경은 내장산 단풍[관련 글 :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이나, 팔공산 단풍길[관련 글 : 이토록 비현실적인 단풍 터널’, 딱 이번 주까지입니다]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넉넉히 마음에 품을 수 있다면 금오산에서 만나는 단풍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도 남겠다. 

 

 

2022. 11.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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