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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by 낮달2018 2020. 3. 17.

▲ 폭설이 내리던 날 벙글기 시작한 산수유꽃 .  만개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3.14.)

겨울에서 봄으로

 

지난겨울은 춥고 길었다. 겨울에 혹독한 추위라고 할 만한 날이 거의 없는 우리 고장에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듭되었으니 말이다. 산과 면한 뒤 베란다에 결로(結露)가 이어지더니 그예 여러 차례 얼기도 했고 보일러 배관이 얼어붙는 사태(!)도 있었다.

 

엔간한 추위면 꾸준히 산에 올랐던 지지난 겨울과 달리 지난겨울에는 산과 꽤 멀어졌다.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니는 게 무릎과 넓적다리관절에 주는 부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행이 뜸해져 버린 것은 결국 추위 때문이었다.

 

평탄한 길 위주의 새 등산로를 찾아내고도 여전히 길을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길과 추위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그리 솔직한 태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부실해진 몸이 그걸 내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해 사이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눈에 띌 만큼 떨어진 것이다.

 

서서히 회복되던 날씨는 지난 8일 폭설로 이어졌지만 이미 동장군의 기세는 꺾였고 봄은 이미 성큼 다가와 있다. 사흘 걸러 한 번씩 오르던 산으로 가는 발걸음도 잦아졌다.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산에 올라 이것저것 새로운 풍경을 둘러보면서 나는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 지난겨울을 넘기면서 말라붙고 바스러지고 있는 청미래덩굴 열매.  열매가 진 자리에 새 열매가 영글 것이다.
▲ 겨울을 잘 견뎌내고 새봄을 맞이한 청미래덩굴 열매.  혼자서 상찬을 바라는 듯 뻐기고 있는 듯하다.
▲ 새봄인데도 여전히 지난가을의 빛깔을 잃지 않고 있는 청미래덩굴 열매.
▲ 중학교 울타리의 장미꽃 자취.  지난해  5월의 그 영광을 기억이나 할까.

산의 높이와 마을과의 거리에 따라 풍경도 달라진다. 새로 다니는 산길에는 유난히 청미래덩굴이 많다. 지난가을에 익었던 열매는 겨울을 견뎌내고 이 봄에 다시 빨갛게 빛나고 있다. 더러는 시들고 바스러지는 열매들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 빨간 열매는 마치 자신이 이겨낸 시련을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중학교 담장에도 지난여름의 자취가 남아 있다. 울타리를 이루던 장미꽃, 말라붙고 시들어 버렸지만 몇몇 꽃잎은 저 화려하던 시절의 자취로 이 시나브로 깨어나고 있는 봄을 환기해 주는 것이다.

 

산을 오를 때마다 꽃이 피었나 주변을 살펴보곤 했지만, 꽃소식은 ‘아직’이었다. 그런데 폭설이 내린 날 아파트 화단에서 눈을 뒤집어쓰고도 벙글고 있는 산수유꽃을 만났다. 꽃눈이 자라는 걸 곁눈질로 바라만 보았더니 어느새 꽃은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던 게다.

 

▲ 폭설이 내리던 날의 산수유 .  막 벙글기 시작한 꽃잎 주위로 내린 눈이 얼어붙어 있다. (3.8.)
▲ 눈이 녹아서 물로 떨어지려는 순간의 산수유꽃. (3.8.)
▲ 산등성이여서 햇볕이 부족했던 것일까. 산등성에서 만난 생강나무. 그러나 꽃은 이미 피었는지 모른다. (3.12.)
▲ 나날이 윤기를 더해가고 있는 진달래 꽃봉오리. 산자락이 붉게 물들 날도 멀지 않았다.
▲ 박남준 시인이  ‘시름 많은 이 나라 햇나락’이라고 표현한 산수유꽃.  만개 직전이다 . (3.14.)

그리고 다시 며칠, 어제 들렀더니 산수유는 ‘왕관’ 같기도 하고 ‘햇나락’ 같기도 한 꽃잎을 활짝 열고 있었다. 정작 먼저 피었어야 할 생강나무는 어떤가 싶어 산에 올랐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닫혀 있던 꽃눈이 열리고 있었다. 진달래 봉오리도 연둣빛 윤기를 더해가고 있다.

 

그렇다. 꽃은 피기 시작하면 시나브로 이 산하를 물들여 버린다. 개나리도, 매화와 살구꽃, 벚꽃을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이 꽃으로 덮이고 나면 사람들은 꽃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른 더위를 성가시다고 느끼게 될 터이다.

 

2018. 3. 15. 낮달

 

*덧붙임

 

불과 하루 만이다. 오늘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래도 오른 산, 생강나무꽃은 활짝 피었고, 진달래 꽃봉오리는 벙글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 중학교 담장의 개나리는 아직 봉오릴 맺었을 뿐인데 성질 급한 놈 몇몇이 서둘러 피었다.

 

'아직은, 아직은…' 하면서 성큼 와 버린 봄을 추인하기 두려워하는 당신, 겉옷을 벗고 뜰로 내려오라. 누가 뭐래도 이제 봄은 대세이니 말이다.

 

▲ 강원도에서는 ‘개동백나무’로 불리는 생강나무. 김유정의 소설이 '동백꽃'인 이유다.
▲ 진달래도 자줏빛 얼굴을 내밀었다.  온 산이 이 꽃 물결로 물들일 날도 멀지 않다.
▲ 중학교 담장을 둘러싼 개나리 울타리 한쪽에 성미 급한 개나리 한 송이 피었다. 곧 화사한 꽃 물결이 일리라.


코로나19로 몸살을 앓는 2020년, 사람들은 삼가느라 봄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듯하다. 동네 주변을 걸으며 만나는 매화꽃을 찍어왔지만, 그걸로 글 한 편 쓰는 게 쉽지 않다.

 

202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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