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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벗의 도화원(桃花源), 그 연분홍 안개

by 낮달2018 2020.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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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초전리 오막재를 찾아서

▲ 의성 탑리의 외진 시골 마을에서 사는 벗이 제 복숭아밭에 복사꽃이 절정이라고 전해 왔다 .

의성 탑리의 외진 시골 마을, 완만한 산자락에 조립주택과 황토방 하나씩 짓고 사는 친구가 제 복숭아밭에 복사꽃이 절정이라고 전해 왔다. 3월을 맞아 잔뜩 심란해져 있을 때, 안부를 물어온 친구에게 나는 복사꽃이 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금요일 퇴근해 집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길을 떠났는데도 근처 시장 거리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초전리(草田里) 그의 집을 찾았을 때는 어둠 살이 내리고 있었다. 황토방 너머 그의 복숭아밭, 복사꽃은 부윰한 빛을 내면서 어둠 속에 아련하게 떠 있었다. 시간은 넉넉하니까……. 복사꽃을 만나는 일에 서두를 일은 없었다.

 

그의 황토방에서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몇 병의 소주가 동나자, 그는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누룩으로 발효한 술을 증류시켜 만든 꽤 독한 술을 꺼내 놓았다. 열 시가 넘어 그것마저 비우고 나서 친구는 본채로 올라갔고 나는 자리에 들었다.

 

군불을 넣은 방바닥은 따끈했고,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잘 잤다. 새벽녘에 한 번 일어나 아래편 자두밭을 향해 소피를 보았는데 산 중턱의 공기가 목덜미에 아주 포근하게 감겨왔다. 그 어둠이 낯익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 소년 시절의 어느 날을 가뭇없이 떠올렸던 것 같다.

▲ 그의 과원 한쪽에 핀 배꽃 . 소박하지만 기품이 엿보인다 .

새벽녘에는 친구의 개들이 짖는 소리, 닭장 안에 홰를 치고 있는 닭 울음소리, 그리고 아득하게 들려오는 새소리까지 온갖 소리의 향연을 느긋하게 즐겼다. 글쎄, 얼마쯤 여기 살면 짐승들 울음소리가 슬슬 지겨워질까. 나는 개와 닭, 새 울음소리가 환기해 주는 새벽의 적막을 뻐근하게 받아들였다.

 

도화원, 소리가 깨우는 ‘적막’

 

친구는 새벽녘부터 일어나 도합 네 마리나 되는 개의 먹이를 주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작업복 바지에다 장화를 신고 밭을 둘러보는 그는 제법 그럴듯한 농사꾼 같아 보였다. 세 해 전에 그가 명퇴하고 이 산비탈에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썩 미더워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의 변신은 기실 눈부셨다.

 

그는 40여 그루 복숭아밭 농사에 봄여름을 온전히 쏟아부어 수백만 원(!)의 수입을 올렸고, 보조를 받아 관리기 따위의 농기구를 구입하고, 창고를 새로 지었으며, 지역 농민들이 설립한 영농조합의 조합원이 되기도 했다. 원래 군살이 없던 그의 몸은 더욱더 실팍해졌다.

 

동이 터오자, 나는 사진기를 들고 과수원으로 나갔다. 황토방 뒤로 미명 속에 그의 복숭아밭이 고운 분홍빛 물살처럼 떠올랐다. 복사꽃 빛깔은 분홍과 진홍 사이의 경계를 어지러이 오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련한 연분홍으로 보일 때는 소박한 수채화처럼 보이다가도 더 짙은 빛깔일 때는 마치 유화 같은 질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도연명(陶淵明)이 노래한 ‘도화원(桃花源)’은 복숭아꽃 숲이었다. 그가 동양에서 그려지는 전통적 ‘이상향’을 복숭아 꽃잎이 펄펄 바람이 날려 떨어지는 동네로 그린 것은 복숭아가 고대 중국에서부터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 선과(仙果)라 하여 주술적인 나무로 신성시해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숭아의 주술과 여성성

▲ 백중의 복숭아. ⓒ <민속대백과>

복숭아나무가 주술적인 힘을 가졌다고 믿은 것은 <산해경>이나 <회남자> 등의 기록에 나온 것처럼 악귀를 물리치는 데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이나 몽둥이가 쓰였기 때문이다. 도교에서 복숭아를 신선이 먹는 불사의 과일이라 하여 천도(天桃), 선도(仙桃) 등으로 부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유사>에 복숭아나무와 관련된 기록이 전한다. 권5 감통 편의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조의 신라 건국 신화 가운데 불로장생의 복숭아가 열리는 선도산의 선도 성모 사소(娑蘇)가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시조를 낳고 나라를 창건하게 한 성모의 신성한 힘에 복숭아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 같은 책 ‘가락국기’조에는 가야의 왕비가 된 허황옥이 하늘의 계시에 따라 김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바다에서 대추를 구하고 하늘에서 반도(蟠桃, 복숭아)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서 대추는 후손 번창을 의미하고, 복숭아는 국모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징표로 등장하는 것이다.

 

복숭아나무가 축귀(逐鬼)와 불로장생이라는 두 가지 상징성을 지니게 된 근거는 복숭아가 이른 시기에 봄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양기 충만한 나무이기 때문으로 본다. 자연히 복숭아에 음기를 쫓는 힘이 강하다고 여긴 것이다. 또 복숭아의 생김새가 여근(女根), 여체를 연상케 하고 열매가 많아 강한 생산력과 생명력을 지닌 여성성을 상징하게 되어 불로장생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유추하는 것이다.

 

복숭아나무는 민속신앙에서 삿된 기운과 귀신을 쫓기 위한 주술적인 도구로 쓰인다.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이나 홍만선의 <산림경제>에서 “복숭아나무는 백귀(百鬼)를 제압하니 선목(仙木)이라 부른다.”라고 한 것은 바로 복사나무에 담긴 주술성을 지적한 것이다.

 

복숭아, 제사상에 오르지 못하는 까닭

 

복숭아나무는 한편으로 미와 건강을 유지해 주고 정력과 생식력을 강화해준다고 믿었다. 처녀가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예뻐진다든가 복숭아나무를 사타구니에 끼고 앉아 밤을 새우면 정력이 강해진다는 속신(俗信)은 복숭아나무가 양기와 생명력이 충만하고 과일의 형상이 여성의 성적 상징을 닮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복숭아나무가 가진 주력(呪力)은 역으로 귀신을 쫓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적극적 금기를 부른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거나 집안에 복사나무를 심지 않는다. 조상신이 찾아왔을 때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들어오지 못하고 되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전 소설 <흥부전>에 놀부 내외의 극에 달한 심술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이 제사상에 숯불을 피우고 복숭아를 괴어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혼백이 가장 싫어하는 숯불과 복숭아를 통해 이들 내외의 막심한 불효를 드러내는 것이다.

 

복숭아의 형상과 연분홍빛은 성적 상징과 연결되어 ‘도색(桃色)’이라 하여 남녀 간 색정을 이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 왕성한 힘과 생산력을 취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부정적 의미로 복숭아의 상징성을 새기는 것이다. 복숭아에 대한 금기에는 이런 측면도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서당에서 학동들의 재주가 달아난다고 해 복숭아나무 회초리를 쓰지 않는 게 좋은 예다.

▲ 복숭아밭 어귀에서 복숭아밭을 지키고 있는 세 마리 개들도 이 도화원의 주인이다 .

사진기를 들고 복숭아밭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데 친구가 다가왔다. 그는 과수원 주변에 피어 있는 꽃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과원 가장자리에 외롭게 선 배나무엔 배꽃이 한창이었지만 앵두꽃은 끝물이었다. 과원 저편의 산비탈엔 조팝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품종에 따라 꽃도 빛깔이 좀 달라. 이쪽 꽃보다 저쪽 꽃이 더 진하지?”
“그렇구먼. 연한 쪽이 훨씬 보기가 좋네. 깨끗하고.”

 

연분홍 꽃은 꽃잎이 크고 선명한 데다 수술도 단정해서 기품 있게 보였다. 그러나 빛깔이 짙은 쪽은 꽃잎이 오종종하니 작은 데다가 짙은 빛깔 때문에 오히려 경망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어떤 가지는 그 두 가지 꽃이 의좋게 피어 있기도 했다. 친구는 가지마다 빽빽이 들어찬 봉우리와 꽃을 가리켰다.

 

“제대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이들은 적과(摘果)뿐 아니라, 적뢰(摘蕾), 적화(摘花)까지 거친다네. 나는 고작 적과나 하고 말지만.”
“적화는 꽃잎을 따는 거겠는데, 적뢰는 뭔가.”
“‘뇌’는 꽃봉오리야. 그러니까 꽃이 피기 전, 봉오리일 때 이를 솎아 주는 게지.”

 

하긴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라는 농작물이 어디 벼뿐이겠는가. 봉오리든, 꽃이든, 열매든 적당히 솎아 주는 게 과실의 크기나 품질을 결정한다는 걸 농부가 아닌들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농부들의 부지런한 발걸음도 그 농사의 풍흉을 결정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친구가 온전히 그 농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인가, 아닌가.

▲ 농부의 근면만으론 그 풍흉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농사의 특징이다 . 지난해 8월 친구의 복숭아 .
▲ 그의 테라스 앞 꽃밭에는 튤립이 봉우릴 맺고 있었다 . 나는 이 꽃 두어 포기를 얻어 왔다 .

그의 황토방 툇마루에 앉아 나는 잠깐 망연히 앉아 있었다. 그가 꾸려가고 있는 시골에서의 삶을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했지, 나는 그것을 나의 삶과 이어서 바라보지 않았다. 그건 그가 가외로 얻는 삶일 뿐, 내 삶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득 나는 언제쯤 내 삶이 그가 구한 변화의 실마리라도 상상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시골에서의 단순한 생활을 몸에 붙여가고 있는 그의 삶이 어떻게 내 삶의 어느 허술한 부분을 헤집고 들어오고 있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쯤일까. 그의 삶의 어떤 방식을 나의 그것으로 이어 생각하게 된 것은. 새벽의 미명 속에서 내가 들었던 개들이 짖는 소리, 홰를 치고 있는 닭 울음소리,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면서였을까. 복사꽃 아련한 향기, 그 연분홍 꽃잎들의 전언을 들으면서였을까.

 

아침을 먹고 나는 벗의 꽃밭에 마치 조화처럼 피어 있는 튤립 두어 포기를 얻었다. 나는 친구 내외와 작별하면서 우정 그렇게 말했다. 나도 이제 슬슬 어떻게 해야 시골에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겠어. 잘 있게. 나는 그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에서 뒷거울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집과 복숭아밭의 분홍빛 연무(軟霧)를 잠깐 건너다보았다.

 

 

2014. 4.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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