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140

이웃 아줌마들을 위하여 딸들에게 - 홈에버의 40대 여성 노동자 오늘 나는 수업에서 너희들에게 ‘인간’과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존엄성’을 이야기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신분과 학력, 경제력, 미추와 노소를 떠나 저마다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지니고 살아간다고 말이다. 박완서 ‘황혼’의 여주인공 ‘늙은 여자’ 모든 사람이 저마다 지니고 살아가는 ‘자존감’은 달리 말하면 ‘자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인 동시에 그 존엄성의 인식’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존재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지. 인간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능멸하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그 야만적 얼굴로 인간의 존엄을 허물어뜨리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상식을 넘는 체벌도 마찬가지다. 체벌은 아이들의 신체에 아픔으로 남는다기보.. 2020. 7. 24.
짧은 만남, 긴 여운 방송통신고에서의 짧은 만남 어제는 부산 동래고등학교에서 방송통신고 영남 연합 체육대회가 열렸다. 고교생(?)이 치르는 대회라기엔 대회 규모도 내용도 만만찮다. 우리 학교도 세 대의 전세버스 편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애당초 친선행사인 만큼 승부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 행사에 참가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았다. 영남권의 방송고는 모두 10개교다. 경북 4개교를 비롯하여 대구, 울산에 각 1개교, 부산과 경남에 각 2개교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남녀공학인데, 부산의 동래고는 남학교, 경남여고는 여학교라는 점이다. 입장식에서 모두 남녀가 같이 들어오는데, 두 학교는 단출하게 각각 남학생과 여학생만 들어왔다. 십 대 청소년도 아닌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는 광.. 2020. 6. 5.
그들만의 커뮤니티, 광고 두 개 아이들만의 공통체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침 8시에 등교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하니 아이들은 무려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학교는 아이들이 일상이 보장되는 온갖 형식을 갖추고 있다. 유리창에 매달린 칫솔, 교실 콘센트마다 꽂힌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등의 충전기, 정오를 전후하여 행정실 옆 공간에 쌓이는 택배상품들(아이들은 책이나 생활필수품 등을 택배로 학교에서 받는다.)은 말하자면 이 입시경쟁 시대가 낳은 새로운 학교 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양이 한참 떨어지는 낡은 교실의 수업용 컴퓨터로 메일을 받거나 숙제를 하고, 도서와 상품을 주문하는 일을 빼면 아이들은 인터넷과 한참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2020. 5. 31.
‘일베’와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과 일베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진작부터 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가 가진 위험성과 해악이 우려되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5·18 광주항쟁 33돌을 즈음하여 수구 우익 매체들의 도발적 역사 왜곡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일베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증오 범죄’의 해악은 심상치 않다는 게 분명해졌다. 나는 어저께 잠깐 일베에 접속한 것을 빼고 한 번도 이 극우 사이트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 보도를 일별하는 수준에서 나는 일찌감치 일베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잘라버렸다. 매체라기보다는 비열하게 편향된 관점에 기초한 천박하고 지질한 배설적 언설로 점철된 이 쓰레기 사이트에 관심을 가질 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 달 전쯤이다. 수업 중에 3학년 아이들이 .. 2020. 5. 23.
두 고교생의 죽음 두 학생의 죽음을 생각한다 지난달 25일 경북 지역의 한 자율형 사립고에서 ‘전교 1등도 했던’ 고교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1일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고3 학생이 모의고사 성적표 뒤 첫 등굣길에 아파트 14층에서 몸을 던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정색하고 이 기사를 긴급히 타전한다. 마치 그것이 일찍이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인 것처럼. 지난번 사고 보도 때 제시한 원인분석이 되풀이되고 ‘학교의 변화’를 새삼 촉구하지만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언론은 너무 잘 안다. 전교 1등 고교생의 “더 이상 못 버티겠다” 하긴 나도 그날,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그 이야기를 잠깐 했다. 아이들은 그 .. 2020. 4. 3.
3월의 눈 3월의 강설 2003년인가 3월 초순쯤에 폭설이 내려 각급 학교가 휴업을 하는 사태가 있긴 했다. 그러나 대체로 ‘3월의 눈’은 남부지방에선 흔한 일이 아니다. 안동은 나라 안 3대 과우(過雨) 지역 중 하나다. 연간 강수량도 적지만, 눈은 잠깐 흩날리는 게 고작인 동네다. 지난겨울은 눈이 푸졌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신나 했지만, 정작 눈은 어른들에게는 성가신 존재다. 눈이 주는 기쁨은 잠시고 그 뒤처리는 긴 까닭이다. 푸근하게 내려 쌓인 눈은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하지만, 그걸 치우는 데 들이는 노력이나 쌓인 눈으로 말미암은 교통 장애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군대 시절에 우리는 눈을 저주했다. 비가 오면 교육을 멈추지만, 눈이 오면 교육은 교육대로 진행하면서 휴식 시간에는 눈까지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2020. 3. 21.
‘달팽이 무료 분양’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학년 게시판에 붙은 광고다. 달팽이를 무료로 분양한다는데 반응이 좋은 모양이다. 요즘 아이들은 달팽이도 기르는가. 하기야 햄스터라는 쥐도 기른다니 무엇인들 못 기르겠는가. 아이들의 문화의 한 단면을 바라보는 느낌이어서 매우 유쾌했다. 아래 사진은 광고주다. 교무실로 불러다 옆에 앉히고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렌즈를 들이대자 쑥스러워하면서도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다. 분양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단다. 분양하고 남는 놈들은 어쩌냐니까, 자연으로 돌려준다고.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광고여서 아이들의 마음의 속살들이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이 어찌 어여쁘지 않겠는가. 2007. 8. 23. 낮달 여고로 옮겨간 첫해, 2학년 담임을 하던 때 얘기다. 아이들은 벌써 서른이 되었겠다.. 2020. 2. 29.
다시 ‘외고’를 생각한다 강고하여라,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여… 블로그에 ‘외고’ 관련 글을 쓴 것은 내가 에 쓴 기사 때문이었다. 본 의도와는 달리 그게 첨예한 쟁점이 되었던지 블로그가 제법 북적댔다. 백 개가 넘게 달린 댓글을 통해 나는 사람들 생각의 향방을 잠시 가누어보기도 했다. 댓글뿐 아니라, 쪽지를 통해서 의견을 보내준 분들도 여럿 만났다. 특히 자신의 고민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의견을 밝히는 낯선 이들의 글을 받으면서 나는 반은 농으로 ‘현대인들은 무척 외로운가 보다’ 고 말했다. 그랬더니 딸애가 거기에 자기 의견을 덧붙여 주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자신의 고민과 내면을 나눌 만한 마땅한 상대가 없는 게 아닐까요? 삶 가운데서 그런 의견을 나눌 기회도 많지 않을 테고요…….”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랬다. 내.. 2020. 2. 18.
‘벌떡 교사’의 추억 무명의 ‘평조합원’들을 생각한다 구미로 전입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어서 지회(전교조의 시군단위 조직)에서 전입 교사 환영회를 알리는 편지가 도착했다. 한지로 된 화사한 편지지에 이철수 판화까지 넣은 아주 깔끔한 안내장이었다. 여교사임이 분명한 얼굴도 모르는 송신인의 마음씨가 느껴져 기분이 매우 좋았다. 어렵고 바쁜 때인데도 지회의 기본업무를 챙기는 후배 교사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좀 각별하다. 이십수 년 전, 해직되어 상근하던 시절에 비슷한 일을 감당했던 기억이 새로운 까닭이다. 유달리 인사이동이 많은 교육계니만큼 조합원의 전출입 등 조직업무가 적지 않다. 당연히 이동하는 조합원들을 챙기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라는 말이다. 얼마 전 분회 모임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인근 음식점에서 모여 식사를 같이 했다. .. 2020. 2. 14.
기억과 망각, 그 길목에서 휴대용 USB 지니고 다니기 얼마 전 내 초임 시절에 내리 세 해를 내게서 국어를 배웠던 여제자 둘이 여길 다녀갔다. 올해에 불혹을 맞은 이 친구들은 각각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직의 동료이면서 이른바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지라 이들과 나의 관계는, 말하자면 ‘사제동행’인 셈이다. 건망증이 잦아졌다 각각 아이 둘을 둔 어머니가 되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넉넉하고 아름다웠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편안함이다. 굳이 제자이기보다 편안한 옛 친구 같은 분위기를 나는 느낀 것이다. 며칠 후 두 사람으로부터 전자우편이 날아왔다. 똑똑한 내 메일 프로그램은 한 친구의 편지를 휴지통에 보냈는데, 휴지통을 정리하다 나는 잠깐 머리를 갸웃거렸다. ‘정희 ○(성씨).. 2020. 2. 12.
22살 청년 전교조와 ‘한심한 동지’ 김용택 시인 유명 시인은 정말 전교조의 한심한 동지였나 어저께 택배를 하나 받았다. 전교조 경북지부에서 보낸 것이다. 열어보니 전교조 운동사 1권(법외노조 편) 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결성 22주년을 맞아 펴낸 자료집이다. 자료수집과 집필과정에만 3년이 소요된 이 책은 전교조가 태동하던 1980년대 하반기부터 1989년 전교조 결성, 1999년 전교조 합법화에 이르는 과정을 신국판 1400여 쪽에 담고 있다. 전교조 22년, 의 발간 거기 10년도 넘는 간난(艱難)의 세월이 담겨 있다고, 그러고도 12년이 더 지나 이제 전교조가 스물둘, 성년이 되었다는 사실은 정작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심히 책을 뒤적이는데 권말 자료로 1989년 해직 교사를 비롯한 법외노조 시기 희생자와 지회장 명부가 실려 있다. 무슨 오래.. 2019. 10. 23.
슬픈 섬, ‘잠들지 않는 남도’ 아이들의 수학여행으로 다시 찾은 제주 제주도에 닿은 것은 지난 4월 10일 늦은 오후였다. 1988년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공항은 좀 더 커진 듯했고, 예전과 달리 야자나무 가로수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관광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며 나는 이 남도의 섬이 건너온 고단한 세월을, 그 시간 속에 켜켜이 서린 통한의 현대사를 떠올리며 옅은 비애를 느꼈다. 4·3항쟁 쉰아홉 돌이 꼭 일주일 전이었다. 나는 차창에 머리를 괴고 연도의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 거기 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삶이 날것 그대로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제주는 슬픈 섬이야,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섬에서의 사흘 밤 나흘 낮을 나는 마치 오랜 세월 고향을 떠났다가 막 돌아온.. 2019.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