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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3월의 눈

by 낮달2018 2020.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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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강설

▲ 백목련 봉오리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 그러나 오는 봄을 어찌하랴.

2003년인가 3월 초순쯤에 폭설이 내려 각급 학교가 휴업을 하는 사태가 있긴 했다. 그러나 대체로 ‘3월의 눈’은 남부지방에선 흔한 일이 아니다. 안동은 나라 안 3대 과우(過雨) 지역 중 하나다. 연간 강수량도 적지만, 눈은 잠깐 흩날리는 게 고작인 동네다.

 

지난겨울은 눈이 푸졌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신나 했지만, 정작 눈은 어른들에게는 성가신 존재다. 눈이 주는 기쁨은 잠시고 그 뒤처리는 긴 까닭이다. 푸근하게 내려 쌓인 눈은 눈과 가슴을 즐겁게 하지만, 그걸 치우는 데 들이는 노력이나 쌓인 눈으로 말미암은 교통 장애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군대 시절에 우리는 눈을 저주했다. 비가 오면 교육을 멈추지만, 눈이 오면 교육은 교육대로 진행하면서 휴식 시간에는 눈까지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밤새 막사 지붕에 쌓이는 눈을 치우기 위해서 밤잠을 설쳐야 했던 전방 근무 병사들의 애환이야 ‘물어 무삼하리오’다.

 

지난겨울부터 찔끔찔끔 몇 차례 눈이 내렸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제법 푸짐한 눈이어서 모처럼 아이들은 눈 구경은 실컷 했다. 그러나 많은 눈은 단순히 교통 장애를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비닐하우스 등 시설 작물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역시 보고 즐기는 것은 ‘잠깐’이지만 뒷설거지는 ‘오래’인 것이다.

▲ 눈 덮인 학교의 모습. 이 정도의 눈도 안동에는 드물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제법 쌓였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아 길바닥은 그만했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택시도 오르막길에 멈추었다가 잠깐 헛바퀴를 돌리는 걸 보고 차를 두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 했다. 차로 들이차던 학교 운동장과 주차장이 휑하니 비었다.

 

교사 앞 백목련 봉오리가 눈을 쓰고 있었다. 녹으면서 지저분해지긴 하지만 모처럼의 설경은 볼 만하다. 3층에서 내려다보는 운동장, 우산을 쓴 아이 하나가 외롭게 운동장 가녘을 걸어오고 있다. 차바퀴가 어지러이 난 운동장 한가운데로 걸어오는 아이도 혼자다.

 

1교시를 마치고 나니 풍경은 일변했다. 기온이 오르면서 운동장과 길바닥의 눈이 깨끗하게 녹은 것이다. 그렇다. 꽃샘추위든, 3월의 눈이든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봄의 어귀를 기습한 한파도, 강설(降雪)도 계절의 순환 앞에서야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2010. 3.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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