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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140

고백 - 회고 혹은 참회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며칠 전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만났다. 40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다. 열일곱에 만났는데 그새 40년이 훌쩍 지나갔다. 한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다가 10여 년 전에 퇴직한 이래 여러 곡절을 겪은 친구다. 대전 시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지난 17년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조만간 교직을 떠나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니 블로그를 통해 내 교단생활을 짐작하고 있는 그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역시 그걸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서른 해 가까이 켜켜이 쌓인 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이들의 변화, 에멜무지로 시행되는 교육정책, 나날이 심화하는 입시경쟁, 그 가운데서 나날이 황폐해져 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어찌 몇 마디 말로 드.. 2019. 9. 9.
끊임없이 흘러 큰 바다를 만나라 - ‘옥련(玉蓮)’의 딸들에게 옥련의 딸들에게 남기는 글 여러분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안동을 떠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이 2011학년도 종업식을 치르고 있을 때 나는 짐을 꾸리느라 바빴습니다. 여느 학교처럼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여서 하는 종업식이라면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겠지만, 방송으로 진행하는 종업식은 본부 교무실에는 중계되지도 않았습니다. 전보 인사명령이 나기도 전에 학년도가 끝나니 떠나게 될 교사들은 이임 인사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공식적인 인사도 하지 못하고 교사들은 다음 임지로 가는 것이지요. 아마 여러분들은 새 학년도 시업식 날 이임 교사들의 전보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일찌감치 여러분에게 일러준 대로 구미 지역으로 옮겨 왔습니다. 구미는 비교적 큰 도시여서 국어교사 한 사람의 자리는.. 2019. 8. 30.
분필, 혹은 ‘미련과 애착’ 떠날 때가 되어서일까, ‘분필’이 자꾸 눈에 밟힌다 ‘분필과 칠판’은 교직을 상징적으로 이르는 표현 가운데 하나다. ‘분필(粉筆)’은 ‘가루 붓’의 뜻으로 달리는 ‘흰 먹’이라는 뜻의 ‘백묵(白墨)’으로 쓰기도 하는, 교사가 ‘판서(板書)’하는 데 쓰는 필기구다. 칠판(漆板)은 ‘검정이나 초록색 따위의 칠을 하여 그 위에 분필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만든 판’인데 ‘흑판(黑板)’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초록색 칠판을 주로 쓴다. 분필의 원료는 활석이다. 석고 비슷한 것인데 예전에는 소석고(燒石膏) 제 분필을 쓰다가 요즘은 탄산칼륨 제를 주로 쓴다. 소석고로 만든 분필은 가볍지만, 가루가 많이 날리는 흠이 있지만, 탄산칼륨 제 분필은 조금 무겁지만 가루가 덜 날리는 장점이 있기 .. 2019. 8. 24.
철도, 기차, 역사 최남선의 ‘경부 철도 노래’를 가르치며 며칠 전부터 개편된 교과서로 ‘경부철도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1908년 최남선(1890~1957)이 신문관(新文館)에서 단행본으로 펴낸 장편 기행체 창가(唱歌)다. 서양 악곡인 스코틀랜드 민요 ‘밀밭에서(Coming through the Rye)’ 곡조를 붙인 총 67절로 된 7·5조 창가의 효시가 된 이 노래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철도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최남선의 장편 창가 를 가르치며 노래하기에 알맞은 길이인 일반 창가에 비교해 67절이나 되는 장편의 이 노래는 ‘철도’라는 신문명의 도구가 지닌 이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동시에 ‘문명개화의 시대적 필연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창작된 것이었다. 노래는 경부선의 기점인 남대문 정거장에서 .. 2019. 7. 26.
띠동갑 내 ‘첫사랑’이 다녀갔다 띠동갑 내 첫 제자들과 만나다 지난 월요일에 띠동갑인 내 첫 제자들이 다녀갔다. 그간 내왕하던 두 아이를 출판기념 모임에 초대했더니 스승의 날을 앞두고 모두 넷이 겸사겸사 구미를 찾은 것이다. 부산과 경주, 밀양과 대구에서 각각 달려온 이들은 올에 쉰둘, 나와 열두 살 차 띠동갑이다. 스물아홉에 만난 열일곱 여고생 스물아홉,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부임한 경주의 어느 시골 여학교에서 나는 이들, 열일곱 살짜리 여학생을 만났다. 담임을 맡아 졸업할 때까지 내리 3년을 가르쳤다. 이들을 내 ‘첫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관련 글 :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나는 꽤 오랫동안 내게 배운 아이들을 ‘제자’라고 부르는 것을 삼갔다. 글쎄, “‘스승’은 없고 ‘선생’만,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다”.. 2019. 5. 17.
2월, 그리고 작별 2월, 그리고 작별의 시간…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눈발이 흩날렸다. 눈송이가 제법 푸짐하다 싶었지만 잠깐 내리다 그칠 거로 생각했는데 웬걸, 눈발은 그치지 않고 이내 사방을 하얗게 물들였다. 2010학년도의 마지막 날이다. 게다가 눈까지 오니 아이들도 좀 들떠 있는 듯했다. 간밤에 좀 일찍 자리에 들었더니 새벽 3시께에 잠에서 깨어 새로 잠들지 못했다. 건넌방에 가서 어제치 신문을 뒤적거렸다. 한 시간쯤 후에 다시 간신히 새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어지러웠다. 아이들과 함께 어디 수학여행을 갔는가 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3층쯤 되는 숙소가 폭삭 무너져 내렸다. 주변의 땅도 마구 꺼지기 시작하고……. 깨어나니 얼마나 황당한지. 게으른 담임을 잘도 따랐던 살가운 아이들 아침에 넥타이를 매려.. 2019. 4. 3.
지금 우린 서로에게 잘 ‘길들고’ 있다 3월,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다 느지막하게 찾아온 봄, 꽃샘추위가 계속 중이어서. 세탁소에 보내려던 겨울 양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다음 주면 3월도 끝. 내일 수학여행을 떠난다. 세 해째 맞는 제주도 여행이다. 아이들은 벌써 설레고 있는 눈치다. 아이들 탓인지, 공연히 나도 마음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편안한 봄, 아이들도 수업도… 예년과 다르지 않은 봄이고 3월이다. 그러나 올봄이 나는 무척 편안하다. 올해를 마지막 해로 삼았음인가, 나는 마치 티끌처럼 가볍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서른세 명의 아이를 포함한 이백여 명의 큰아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과 함께하는 수업도 편안하다. 2월에 담임이 확정되었을 때부터 마음이 예년 같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일지, 처음 교단에 섰을 때와는 또 다.. 2019. 3. 31.
작별, 그렇게 아이들은 여물어간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지난 12일은 졸업식이었다. 꽃다발과 사진기 조명 세례를 받으면서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열아홉 살 여고생의 신분을 벗고 예비 대학생, 방년 스무 살로 진입하는 아이들을 나는 마음속으로 축복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엷게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선입견 탓일까, 그 화장기는 마치 그들이 헤쳐나갈 미래처럼 불안해 보였다. 나는 지난해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을 찾아 일일이 손을 잡고 축하해 주었다. 자신이 꿈꾸어 온 대로 진학하게 된 아이는 몇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 눈물을 쏟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함박꽃 같은 웃음이 가득했으니. 작별의 때가 왔다 이튿날은 종업식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마음먹고 있었던 대로 정장을 하고.. 2019. 3. 30.
지난해의 네 잎 클로버 한 아이가 건네 준 네잎 클로버 2학기, 문학 시간도 막바지다. 희곡 단원에 들어가 교과서를 펴는데, 거기 누르스름한 종이쪽 같은 게 끼어 있다. 네 잎 클로버다. 아, 마치 잊었던 옛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나는 아득해진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아니다. 훨씬 이른 때였으리라. 어떤 아이가 내게 전해준 것이다. 어디였나. 수업시간이었는지, 아니면 교무실에서였는지, 아니면 교정을 거닐 때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네 잎 클로버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누구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무심코 그걸 받아 교과서에다 끼웠을 것이다. 무심코. 그 아이는 어땠을까. 네 잎 클로버를 따서 들고 오다가 우연히 마주친 내게 내밀었던 걸까. 아니면 구태여 내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아이.. 2019. 3. 30.
30년, 제자들과 함께 늙어가기 30년째 교유를 잇고 있는 제자들과 함께 늙어가기 지난해 2월 25일, 동료 교사들이 마련해 준 ‘퇴임 모임’에 인근에 사는 제자들 여덟 명이 함께 해 주었다. 모임을 끝내고 난 뒤에도 우리는 자리를 옮겨 얼마간 시간을 더 나누고 헤어졌었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관련 글 : 걸어온 길, 걸어갈 길] 1988년,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함께 문학동아리를 만들어 교외 시화전을 치르고, 문집을 펴내면서 인연을 맺었다. 거기서 이태를 채우지 못하고 해직되었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교유를 이어오고 있다. 좀 쓸쓸하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우리를 더 묶었는지도 모른다. [관련 글 :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교사의 ‘격려’와 ‘질책’ 사이] 함께한 세월, 29년 해직 5년.. 2019. 3. 28.
교단 31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시간들 학교를 떠나며 ② 교단 31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시간들 2015학년도 종업식 때 퇴임 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학교 쪽의 제의를 저는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아이들과는 수업을 마치며, 교직원들에겐 송별회 때 작별인사를 하면 되리라고 여겼으니까요. 정년도 아니면서 공연히 아이들과 동료들 앞에 수선(?)을 피울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화요일에는 3학년, 수요일에는 2학년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2월 28일 자로 학교를 떠나게 되어 작별인사를 해야겠다고 하니까, 아이들은 짧은 탄성을 지르며 자세를 바로 하고 잠깐 긴장하는 듯했습니다. “고맙다. 지난 1년간 공부하면서 너희들은 나를 신뢰해 주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지키며 예의를 잃지 않았다. 나는 여러분과 교.. 2019. 3. 25.
걸어온 길, 걸어갈 길 학교를 떠나며 ② 후배, 제자들과 함께한 퇴임 모임 후배 교사들이 마련해 준 25일의 퇴임 모임에 나는 10분쯤 지각했다. 모임 장소인 식당 2층에 올라 실내로 들어서는데 방안 가득 미리 와 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건네 오는 바람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그런 식의 환대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걸어온 길, 걸어갈 길…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뚜렷하게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창가에 작은 펼침막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것은 한참 뒤다. ‘당당히 걸어오신 길,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라는 문구 아래 내 이름이 씌어 있었다. 잠깐 앉았다가 나는 자리를 돌면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후배 교사들이 스물 서넛, 인근에 사는 제자들이 여덟 명이 와 주었다. 따로.. 2019.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