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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140

늦깎이들과의 산행-서산 팔봉산 방통고 학생들과 함께 서산 팔봉산 산행 산이 ‘이름’을 얻는 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듯하다. 주변에 막연히 ‘앞산’, ‘뒷산’으로 불리는 이름의 산이 좀 많은가 말이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그 방향으로 이름을 붙이는 게 고작인 이유는 그 산이 하고많은 산 가운데 하나인 ‘그저 그렇고 그런’ 산이기 때문이다. 더 높거나 더 깊거나 더 수려한 산세를 갖고 있었다면 ‘앞뒤’ 대신 그에 걸맞은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지난 10일, 충남 서산 팔봉산(八峰山)을 향해 출발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잠깐 들여다본 인터넷에선 ‘여덟 개의 바위 봉우리’가 올망졸망 이어졌다고 해 ‘팔봉산’이라고 했단다. 봉우리의 숫자로 이름 붙이는 것은 아주 수월한 명명법일 듯하다. 다른 어떤 고려를 할 필요 없이 단지 봉우.. 2020. 11. 18.
‘내복과 담요’, 학교의 겨울나기 추운 학교, 내복과 담요로 겨울나기 드디어 ‘내복’을 입다 어제 수능 감독을 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내복’을 입었다. 감독은 피하고 싶었지만 3학년 담임 빼고 수험생 학부모 빼고 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 원한 대로 복도감독에 선정되었다. 2개 층에 세 명의 교사가 배치되어 각 고사장에 연락하거나 결시생을 파악하는 등의 업무를 맡는 자리다. 난방이 되는 고사장에 직접 들어가는 감독관이면 굳이 방한을 준비할 일은 없다. 그러나 내가 근무할 장소는 정작 볕이 나는 바깥보다 더 추운 복도다. 지난해에 편하다고 복도감독을 했다가 추위에 당한 동료 하나는 아예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짧으면 80분, 길면 126분 동안이나 꼼짝없이 수험생들을 지켜봐야 하는 감독관보다 못하랴. 나는 아.. 2020. 11. 17.
교사의 ‘격려’와 ‘질책’ 사이 교사의 ‘격려’와 ‘질책’은 어떻게 학생에게 다가가는가 두어 주일 전에 옛 제자가 안부를 전해 왔다. 인근에 사는 이 군인데 날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제 선배 정 군과 함께 들르겠단다. 정 군은 제자는 아니고, 이 군이 졸업 후 활동했던 지역 풍물 놀이패의 일원이었다. 빗속에 두 친구가 왔다. 나는 이 친구들을 삼겹살을 잘하는 동네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3년, 혹은 20년 만의 해후 두어 해만인데도 이 군은 꽤 변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꽤 나이 들어 보이는 데다 고개를 숙이는데 정수리가 훤하다. 동행한 정군도 머리숱은 괜찮은데 역시 정수리 쪽이 듬성듬성하다. 마흔넷과 마흔여섯. 그럴 나이지만, 이 사람들이 벌써 머리가 이리 빠져서 어떡하노, 나는 농을 걸었다. “오랜만이야. 잘 왔어. 잘 지냈지?” “선.. 2020. 11. 16.
마지막 동행, 정지용 문학기행 퇴직 앞두고 아이들 문학기행에 인솔 교사로 참가하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정지용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1·2학년 마흔 명에다 지도교사로 네 명의 국어 교사가 동행했는데, 나는 거기 묻어갔다. 같이 가겠느냐는 동료의 권유에 망설이지 않고 그러겠다고 한 것은 그게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일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 동행, 지용 문학기행 학교 예산으로 치르는 행사였지만 생각보다 아이들 반응은 미지근했다. 토요일이었지만 학원 수강 등을 이유로 참여를 주저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사내아이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이들이 이 입시 체제에 너무 잘 길들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눈앞의 이해에만 매달릴 뿐, 새로운 체험에 대한 호기심마저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문학 교과서마다 정지용의 시.. 2020. 11. 9.
겨울은 교실 ‘문틈’으로 온다 학교, 학생들의 겨울나기 겨울은 어디로 오는가. 10월이 기울면서 아침과 밤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침 출근길과 밤 열 시 야간자습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은 선득해서 저도 몰래 몸이 오그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그러니 아이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 학교는 다행인 편이다. 일찌감치 냉난방 시스템이 설치되어 며칠 전부터 난방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냉난방 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부분의 학교(주로 중학교)에서는 얼음 소식이 들려야 난로를 피울 터이니. 이는 어쩌면 입시 준비로 골몰해야 하는 고교생에게 주어지는 특혜인지도 모르겠다. 학급에 들어가면 아이들 대부분이 얄팍한 담요로 무릎 아래를 감싸고 있다. 심한 아이들은 아예 담요를 긴 치마처럼 아랫도리에 두르고 다니기도 한.. 2020. 11. 7.
24년 뒤에 출생신고서 회수… ‘꿈’이 선명해졌다 [나는 전교조다] ‘법외노조’ 되더라도 참교육 꿈은 변하지 않아 지난 10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 노조’ 통보를 강행했습니다.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의 권고도,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국내외 여론도 간단히 묵살되었지요. 이로써 1989년 ‘참교육’의 깃발을 내걸고 출범한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된 지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습니다. 전교조,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아시다시피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는 데 인용된 것은 ‘법’ 논리였지요. 노동부 장관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단체에 더 이상 법에 의한 보호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교육부 장관은 “노동자이기에 앞서 선생님이기 때문에 교육을 위해서라도 현행법 준수를 촉구했다”라며 ‘교.. 2020. 11. 2.
외고와 이완용 한 외고생의 ‘이완용 양산론’ 다음 아고라에 오른 한 외고생의 글이 화제다. 자신을 한영외고 2학년이라는 이 학생은 ‘외고 폐지에 찬성하며, 외고를 자율고나 자사고, 특성화고로 전환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라는 의견을 아고라에 올렸다. 또 이 학생은 외고가 ‘또 다른 이완용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한 외고생의 토로…“외고는 제2의 ‘이완용’ 만드는 곳”][홈플러스 이승한 회장 관련 글 : 중소상인이 '맛없는 빵을 만드는 장애인'이라고?] 말도 많은 외고, 그 과실을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학생이 뜻밖의 주장을 하는 데 대해서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학생의 주장이 나름의 경험과 고민의 결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학생은 외.. 2020. 10. 30.
성적으로 줄 세우는 사회, 줄 서는 아이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경쟁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캠페인’ 모두 이미 알 만큼은 아는 얘기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사는 물론, 학부모도 일찌감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언론이 필요 이상의 호들갑을 떠는 걸 바라보는 기분은 좀 씁쓸하고 겸연쩍다. 그것은 마치 이미 널리 알려진 자신의 치부를 새삼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민망함 같은 것이기도 하다. ‘성적으로 줄 세우기’? 모두 아는 이야기다 교육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남부지역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관행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경쟁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캠페인’ 출범 후 전주·광주·마산/창원·울산·부산·대구·안동 등 남부 7개 지역에서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받은, 학부모들의 ‘제보’를 통.. 2020. 10. 29.
우리가 ‘반국가 사범’이라고? 어떤 보수단체의 ‘전교조 고발’ “야, 드디어 우린 반국가 사범이 됐데? 정년은커녕 더는 학교에 붙어 있지 못하는 거 아냐?” 며칠 전 대구에 사는 벗은 전화통에다 대고 대뜸 그렇게 말했다. 잠깐 헷갈렸다가 짚이는 게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전화선을 통해 좀 씁쓸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이름도 어렵고 복잡해서 금방 외워지지도 않는 어떤 단체로부터 ‘우린’ 고발을 당한 것이다. 어떤 보수단체의 전교조 고발,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 혐의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인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 제7조 제4항인 이적단체 구성원의 허위사실 날조 유포 등. 어쩐지 으스스하다. 고발자는 ‘반국가교육 척결 국민연합’. 새 정부 들어서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으려는 보수진영의 액션은 자못 화려한데 ‘척결(.. 2020. 10. 26.
전근대의 교실 풍경, 그 상처의 기억들 고교생, 조회에 참석 않는다고 학생회장에게 맞아 숨지는 사고에 부쳐 강릉에서 고교 2학년생이 조회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학생회장에게 맞아서 숨지는 사고가 있었단다. 모니터에 뜬 그 사고 기사의 제목을 보고 있는데도 얼른 그 내용이 짚이질 않았다. ‘조회’는 뭐고, ‘학생회장’은 뭐지? 어떻게 ‘조회’ 불참이 ‘학생회장’의 ‘구타’와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들은 아직도 그런 학교가 있는가를 의아해하면서 이 참사에 머리를 흔들었다. 이야긴즉슨 사고가 일어난 학교에선 학생회장이 조회 참석을 독려할 수 있었다는 거고, 또 당연히 불참자에 대한 징벌 권한도 갖고 있었다는 거다. 오늘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해 보니,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형식으로 보면 학.. 2020. 10. 25.
10월의 학교 풍경, 그리고 아이들 10월의 학교 풍경 중간고사가 끝나면서 잠시 소강상태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책에다 코를 박고 있다. 아침 여덟 시 이전에 학교에 와서 밤 열 시가 넘어야 집으로 가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은 거의 14시간이 넘는다. 아이들을 남겨두고 퇴근할 때마다 안쓰러움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아이들은 학교 급식소에서 오후 1시, 6시에 각각 두 끼의 식사를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틈만 나면 매점으로 달려간다. 막대사탕이나 짜 먹는 얼음과자를 입에 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주전부리로 보상받으려는 ‘결핍’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집보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으니 자연 일상을 고스란히 학교로 옮겨야 한다. 교실의 콘센트에는 늘 휴대전화와 PMP, 전자사전 등의 충전기가 꽂.. 2020. 10. 12.
아이들, 광산 폐기물로 오염된 낙동강을 탐사하다 국제 성취보상제 아이들과 함께한 낙동강 탐사 아닌 방학 중에 아이들과 야영을 다녀왔다. 학교의 공식 행사가 아닌데도 야영을 다녀온 것은 내가 우리 학교 아이들 일곱 명이 참여하고 있는 어떤 청소년 프로그램의 지도교사였던 까닭이다. 지도교사라고는 하지만 내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활동을 확인하는 정도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국제 청소년성취포상제(The Duke of Edinburgh‘s Award)다. 만 14~25세 사이의 청소년들이 신체단련, 자기계발, 봉사 및 탐험 활동을 통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여 지역 및 세계 사회에 이바지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목적인데,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에 의해 1956년 .. 2020.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