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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그들만의 커뮤니티, 광고 두 개

by 낮달2018 2020.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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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의 공통체 

▲ 게시판에 붙은 광고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침 8시에 등교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하니 아이들은 무려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학교는 아이들이 일상이 보장되는 온갖 형식을 갖추고 있다.

 

유리창에 매달린 칫솔, 교실 콘센트마다 꽂힌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등의 충전기, 정오를 전후하여 행정실 옆 공간에 쌓이는 택배상품들(아이들은 책이나 생활필수품 등을 택배로 학교에서 받는다.)은 말하자면 이 입시경쟁 시대가 낳은 새로운 학교 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양이 한참 떨어지는 낡은 교실의 수업용 컴퓨터로 메일을 받거나 숙제를 하고, 도서와 상품을 주문하는 일을 빼면 아이들은 인터넷과 한참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주말이 되어서야 인터넷 갈증을 풀 수 있는데 그것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당연히 아이들은 TV 드라마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으며 산다.

 

자신들의 삶을 펴는 고유의 공간을 갖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은 결국 교실의 칠판, 화장실과 식당 문, 복도 중앙의 정수기 부근을 자신들의 커뮤니티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잃어버린 교과서나 공책을 찾기 위해 또는 특정 교재의 공동구매를 제안하는 광고를 거기다 올리는 것이다.

 

한 달 전쯤, 정수기 옆 거울에서 만난 광고가 첫 번째 광고다. 누군가 자신이 가진 새 참고서를 ‘싸게’ 팔겠다는 광고다. 내놓은 상품은 근현대사와 한국 지리 참고서. ‘이름도 안 썼다’라고 하거나 ‘진짜 새 책’이라는 걸 강조하면서 ‘에누리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내가 궁금한 것은 판매자는 왜 저 책을 사서 이름도 안 쓴, 새 책을 팔려 하냐는 것이다.

▲현관 유리문에 붙은 광고

 

두 번째 광고는 최근에 교사 서편 현관 앞에서 만난 것이다. 앞엣것과는 달리 이건 집 나간 ‘화분’을 찾는 광고다. 화분에 담긴 건 석화(아데니움이라는 꽃을 말하는 듯)고, 수돗가에 있는 걸 ‘귀여워서’ 들고 간 사람에게 돌려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는 내용이다. 그 꽃은 ‘양명’이라는 의젓한 이름도 있다. 사건 발생 일시도 추정해 놓았고, 당연히 연락처도 적어 놓았다.

 

두 광고의 주인이 누군지는 모른다. 참고서 광고는 2학년이, 화분 광고는 1학년 학생 거라는 게 내가 아는 정보다. 참고서 광고는 한 달 전쯤 붙어 있던 거니 지금은 없다. 광고주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아이들 말로는 ‘싸서 인기가 좋다’니 팔렸을 가능성이 크다. 화분 찾는 광고는 아직도 붙어 있으니 해결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두 광고는 학교와 아이들이 선 자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미니어처 같아 보인다. 참고서 광고가 아이들이 갇힌 입시경쟁의 숨 막히는 공간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이라면 화분 찾기 광고는 지난해에 실은 ‘달팽이 분양 광고’가 그랬듯이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들이 꾸미고 여미는 소담스러운 정서를 엿보게 해 주는 것이다. [관련 글 : 달팽이 무료 분양 이야기]

교사의 안쓰러운 눈길을 대범하게 받아넘기면서 아이들은 군말 없이 다시 책에다 얼굴을 묻는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서 터져 나오는 드높은 웃음소리, 복도를 힘차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한 형식인지도 모른다.

 

 

2008. 5.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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