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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기억과 망각, 그 길목에서

by 낮달2018 2020.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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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USB 지니고 다니기

▲ 나는 이 21세기가 준 '편리' 중에 이놈만큼 생광스러운 게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내 초임 시절에 내리 세 해를 내게서 국어를 배웠던 여제자 둘이 여길 다녀갔다. 올해에 불혹을 맞은 이 친구들은 각각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직의 동료이면서 이른바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지라 이들과 나의 관계는, 말하자면 ‘사제동행’인 셈이다.

 

건망증이 잦아졌다

 

각각 아이 둘을 둔 어머니가 되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넉넉하고 아름다웠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편안함이다. 굳이 제자이기보다 편안한 옛 친구 같은 분위기를 나는 느낀 것이다.

 

며칠 후 두 사람으로부터 전자우편이 날아왔다. 똑똑한 내 메일 프로그램은 한 친구의 편지를 휴지통에 보냈는데, 휴지통을 정리하다 나는 잠깐 머리를 갸웃거렸다. ‘정희 ○(성씨)’라는 송신인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지인을 가장한 스팸메일일 거로 생각하고 ‘삭제’ 단추를 누르려 했는데 어쩐지 ‘정희’가 눈에 익어 보였다.

 

열어 보았더니 느닷없이 ‘신정아 편지(요즘은 이런 것도 노출된 모양이다.) 돌아다녀서 읽어보았다’며 혹시 읽어 보았느냐는 사연이어서 또다시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그 아래 같이 온 친구 이름이 나오는 걸 보고서야 나는 그게 ‘○정희’의 편지라는 걸 겨우 알아챘다.

 

결국, 이름 하나 눈치채는 데 좋이 몇 분이 걸린 셈이었다. 답장에서 그 얘길 하고 나는 그랬다. “이게 나이다. 원……. 감각기관이 지각하는 것과 그걸 정리해 주는 뇌의 공조가 형편없이 부실해지는 거, 그게 노화의 특징이니……” 하고 말이다. (쉰을 갓 넘긴 터수에 요란한 능청을 떠는 이 외람을 용서하시라!)

 

나이 들면서 시나브로 나타나는 노화 증상의 하나로 각 감각기관의 공조 부실은 단연 으뜸인 듯하다. 물론 나는 생물학적으로 기능하는 인체나 감각의 메커니즘은 잘 모른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들이 저마다의 역할에 따라, 자신에게 가해지는 자극에 일제히 반응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 공조(共助)함으로써 우리는 느끼고, 움직이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며, 그것으로 얻은 정보를 대뇌에 보내어서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결정하며, 이어서 그 반응을 다른 기관에 명령함으로써 일련의 행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어딘가가 제 몫의 역할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이 전체적 이해와 판단의 회로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엇갈린 기억의 회로

 

몇 가지 사물과 현상이 조합해 내는 의미를 쉬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다소 앞뒤를 자른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면 ‘척’하니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것도 영 매끄럽지 않아졌다. 거두절미든 아니든 아이들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저간의 사정을 헤아리면 그것들은 일정한 인과 관계가 있는 하나의 줄거리로 엮어져야 마땅하지만, 요령부득으로 몇 번이나 캐물어야만 간신히 정리되곤 한다.

 

의식과 신체 기관의 공조 부실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하지 않다. 이 증상은 특정한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그 실행 부분, 그리고 그 확인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대체로 두 번째 부분이 실행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1G짜리 USB 메모리를 쓴다. 동료 대부분이 그렇듯 공인인증서와 각종 문서, 그리고 사진 이미지들로 가득 찬 이 메모리는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종합수첩인 셈이다. 출근하면서 컴퓨터에 꽂았다가 퇴근하면서 뽑아서 주머니로 들어가는 이 물건은 마치 집과 학교에서의 내 일상을 이어주는 매체 같은 것이다.

 

문제는 퇴근 때다. 나는 분명히 컴퓨터를 종료하면서 포트에 꽂힌 메모리를 뽑아서 주머니에 넣고 퇴근했다. 그러나 귀가해 주머니를 뒤지면 마땅히 들어 있어야 할 그놈의 물건이 없는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리곤 한다.

 

나는 그놈을 포트에서 뽑기 위해 몸을 구부리고, 그것을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저고리와 바지의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져 보지만 놈은 오리무중이다. 처음에 나는 이동 과정에서 어디선가 그걸 흘렸다고 생각해 운전석이나 현관 앞을 살피기도 했다.

 

어디선가 분실한 거로 여기고 애통해하다가 이튿날 학교에 가면 아뿔싸, 그놈은 천연덕스럽게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내 기억 속에서 실행 여부가 헛갈리는 이 기억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다. 이럴 때는 적당히 ‘나이 듦’이나 ‘퇴화’에다 그 책임을 묻는 수밖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모두 일곱 반, 이백아홉 명이다. 얘들의 이름을 모두 익히게 된 것은 2학기가 시작될 때쯤이었다. 긴가민가 싶은 시간 두어 달이 있긴 했다. 그러나 자신 없는 상태에서 실수할 걸(엉뚱한 이름으로 불린 아이의 기분을 생각해 보라) 저어해 나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치매의 디엔에이

 

그러나, 일찌감치 만난 지 며칠 만에 이름을 익힌 내 반 아이들도 가끔 이름이 막힐 때가 있다. 그 순간의 낭패감은 쉬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건망증에서 말하는 ‘기억력 장애’는 갑자기 친구 이름이나 집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것인데, 글쎄 아직 그 정도까지 이르지 않은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다소 부풀려 말하면 ‘언어 장애’의 조짐도 없잖아 있다. ‘작고 까만 벌레인데…’라며 ‘개미’라는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 의학적인 ‘건망증’의 ‘언어 장애’다. 수업하다 아주 요긴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좀 난감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최근에는 흥부전의 근원 설화인 ‘방이설화’가 생각이 나지 않아 몇 반에선가 ‘맹탕’을 치고 말았다. 이럴 때 내 처방은 이렇다. “얘들아, 내가 이걸 까먹어버렸다. 알고 있는 사람 누구 없냐?”

 

건망증과 치매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다. 초한지와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줄줄 외울 만큼 ‘총기가 남달랐던’ 내 어머니는 만년에 치매에 시달리다 가셨다. 나는 가끔 내 DNA에 그런 자질이 숨겨져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좀 스산해진다.

 

그러나 기억과 망각의 길목에서 기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이 들어서도 쓸데없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때로 우리 시대 정신과 그것을 넘어 지켜야 할 원칙마저도 잊고 사는 정신의 지체에 빠질까 하는 것이다. 나이 든다고 해서 모든 이가 반드시 현명해지고 어질어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2007. 10.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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