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한글 이야기] ‘연쇄점’에서 ‘하나로 마트’까지

by 낮달2018 2019. 10. 10.
728x90
SMALL

영자의 국어 침탈사, 또는 민중들의 조어법

▲ 농협연쇄점. 대신농협연쇄점 개점 모습(1971) ⓒ 여주시
▲ 농협 하나로마트의 전신인 1970년대 농협연쇄점 ⓒ 예산문화원
▲ 촌스러운 모습과 이름의 농협 연쇄점은 이제 글로벌하고 세련된(?) '하나로마트'로 바뀌었다.
▲ 하나로마트보다 한 발 더 나간 농협 운영 파머스 마켓. 저 이름이 '농부가게'라는 사실을 아는 나이 든 농민은 얼마나 있을까.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성주의 포천계곡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지방도로를 타고 오는데 언뜻 연변의 건물에 붙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농협 연쇄점’. 길가의 허술해 뵈는 나지막한 슬래브 건물에 걸린 낡고 오래된 간판과 그게 담긴 풍경은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연쇄점’에서 ‘하나로 마트’까지

 

문학 수업 시간에 ‘철쇄(鐵鎖, 쇠사슬)’를 가르치고 난 뒤, 아이들에게 ‘연쇄점(連鎖店)’을 물었더니 대부분 요령부득의 표정인데 의성에서 유학 온 아이 하나가 대답한다.

 

“본 적 있어요.”
“무슨 뜻일까?”
“‘체인점’요.”
“정답!”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골아이들은 ‘촌스러운 경험’에다 도회의 그것을 더하니 훨씬 경험의 폭이 크다. 묵은 것과 새것 사이의 과도기, 그 어정쩡한 틈을 시골 출신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

▲ 연쇄점은 시초는 화신백화점이다. 1934년 11월에 전국 주요 시, 군, 읍, 면 350여 곳에서 일제히 문을 연 화신 연쇄점의 모습이다. ⓒ 역사넷
▲ 국립민속박물관 내 추억의 거리에는 1960~70년대 여러 상점 건물을 설치했다. 사진은 '근대화 연쇄점'

잠깐 말이 나온 김에 ‘넘치는 외래어, 외국어’에 대해서 그것을 우리말로 대체하려는 노력의 부족에 대해서, 어느새 언어의 우열로까지 비화해 버린 이 ‘언어 사대주의’에 대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새로운 문물의 도입과 함께 들어온 새 말이 우리말이 아닌 것까지야 어쩌겠는가. 그러나 가물에 콩 나듯 쓰던 대체어는 어느새 다시 남의 나라말로 대체되고 있다.

 

▲ '농협'과 '농협 연쇄점'의 진화.

<위키백과>에 따르면 ‘농협 연쇄점’이 첫선을 보인 것은 1971년 경기도 장호원에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연쇄점’의 기억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농협 연쇄점이 ‘하나로 마트’로 갈아탄 것은 24년 후인 1995년이다. 서울 도심에 신용·경제 복합사업의 시범 점포로 농협 하나로 마트 종로점이 문을 연 것이다.

 

조직적 변화는 당연히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연쇄점’이 자취를 감추고 ‘하나로 마트’가 그를 대체하면서 사람들은 ‘연쇄점’ 따위는 까맣게 잊어 버렸다. ‘하나로 마트(Hanaro Mart)’는 때론 ‘하나로 클럽(Hanaro Club)’으로 때론 ‘파머스 마켓’으로까지 진화했다.

 

둘 다 농협에서 운영하되, ‘하나로 클럽’은 대형 마트고, ‘하나로 마트’는 슈퍼마켓이라고 하는데 일반 소비자들은 그런 구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하나로 마트’가 그런 ‘새 이름’을 달고 확장 개업했을 때 동료와 함께 쓴웃음을 삼킨 기억이 아련하다.

 

“이 파머스 마켓을 이용하는 시골 사람 가운데 ‘파머’가 ‘농부’라는 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촌스럽게 ‘농부네 가게’라고 이름 붙이길 기대할 수 있을까?”

 

농민들의 외국어 ‘멀칭’과 ‘로타리’

▲ 경운기를 개조한 짐차. 경북에서는 이를 '딸딸이'라고 부른다. ⓒ 보배드림

하긴 이제 농민들도 농사를 지으며 아주 익숙하게 외국어를 사용한다. ‘비닐을 밭두둑에 덮고, 그 비닐 안에다 농작물을 심는 것’을 ‘멀칭(mulching)’이라 하는데 이는 지온을 낮게 해 주고 잡초 발생을 억제하여 작물의 생육을 촉진하므로 많은 농민이 ‘멀칭’을 이용한다.

 

또 경운기로 밭을 간 다음에 ‘밭을 평탄하게 하고 흙을 잘게 부수어 식물이 자라기 좋게 하는 작업’을 ‘로타리 치기(Rotary Cyltivation or Rotavation)’라 한다. 처음엔 경운기로 이 작업을 했지만, 요즘은 트랙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 이 작업의 범위도 넓어져 거름을 섞거나, 얕은 작물을 캐거나 하는 데도 쓰인다.

 

로타리가 농사의 주요 과정으로 자리 잡으면서 알파벳도 모르는 노인들도 이 말을 예사로 입에 올린다. 정작 도시 사람들만 그걸 ‘교통이 복잡한 네거리 같은 곳에 교통정리를 위하여 원형으로 만들어 놓은 교차로’인 ‘로터리(rotary)’와 헛갈릴 뿐이다.

 

‘멀칭’이든 ‘로타리’든 그걸 받아들인 농민의 처지에선 그게 그런 뜻이라니까 썼던 것일 뿐, 그 말의 원뜻 따위는 무엇이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이 말이 들여온 사람이 우리말로 적당히 풀었으면 훨씬 수월할 뻔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를테면 ‘멀칭’ 대신에 ‘비닐재배’라 했든 ‘비닐질’이라 했든 그것이 새말로 정착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로타리’도 마찬가지다. ‘기계 써레질’이라 했든, ‘기계 고무래질’이라 했든 말이 통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민중들의 조어법, ‘딸딸이’와 ‘똘똘이’

 

새로운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재주는 민중들을 감히 따르지 못한다. 농민들의 명명법은 자연스러운 데다가 감각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탄복해 마지않는 것은 이들이 만든 새말 ‘딸딸이’와 ‘똘똘이’다. 여기서 청소년들의 ‘자위행위’나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를 떠올리는 이는 도회사람이다.

 

‘딸딸이’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웬만한 시골에선 흔히 쓰이는 말이다. 딸딸이는 ‘경운기를 개조해서 만든, 반은 자동차요, 반은 경운기인 짐차’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유감스럽게 두 번째 항목에다 “‘삼륜차’나 ‘경운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올려놓았다.

 

이 짐차는 주로 산판에서 벌목한 목재를 싣고 산길을 달려 도로까지 운반하는 등의 일에 주로 쓰인다. ‘딸딸딸’ 하는 경운기의 엔진음이 숨 가쁘지만 의외로 힘이 세어서 아주 요긴한 도움을 준다. 이 개조 차량의 이름이 ‘딸딸이’가 된 것은 물론 그 소리를 땄기 때문이다.

 

‘똘똘이’는 내 고향 칠곡에서 주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할 때 쓰는 외발 수레다. ‘딸딸이’와 달리 순수하게 사람의 힘으로 움직여야 하는 농기군데, 외발이어서 경상도 말로 ‘꼰드랍다’.(물건을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리어카’로 불리는 두 발 수레를 본뜬 형태인데도 이놈의 이름이 ‘똘똘이’가 된 것은 ‘딸딸이’를 의식한 결과다.

 

자음이나 모음의 교체로 어감의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음상(音相)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음성모음이 양성모음보다 큰 느낌을 주고[졸졸<줄줄] 예사소리보단 된소리가, 된소리보다는 거센소리의 느낌이 크다.[빙빙<삥삥<핑핑]

 

‘딸딸이’와 ‘똘똘이’에 쓰인 자모는 모두 된소리고 양성모음이다. 그러나 같은 양성모음이지만 ‘딸딸이’에 쓰인 ‘ㅏ’보다는 ‘똘똘이’에 쓰인 ‘ㅗ’가 좀 작은 느낌을 주지 않는가. 작은 리어카라고 할 수도 있는 외발 수레의 이름이 ‘똘똘이’가 된 이유다.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만하면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 <한겨레>도 시대의 추이를 외면하지 못하는가. ⓒ <인터넷 한겨레> 누리집
▲ <뉴스와이>에서는 '웨더'를 공식적인 프로그램 이름으로 쓴다.

‘방향전환 지시등’은 교통법규에서 쓰는 말이지만 운전자들은 모두 편안하게 ‘깜빡이’를 사용한다. ‘좌측’, ‘우측’도 가볍게 ‘좌’, ‘우’로 줄여 버린다. 그래서 ‘좌측 방향전환 지시등’ 대신에 ‘좌 깜빡이’를 쓰는 것이다. 사전에도 너끈히 오른 이 말을 만든 사람은 ‘언어 경제’를 제대로 체득하고 있는 민중들인 것이다.

 

“시대 추세니 어쩔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신호’라고 써도 충분할 텐데도 가방끈 긴 관료와 학자들, 정치인들은 굳이 ‘시그널(signal)’이라 쓴다. 멀쩡하게 우리말로 잘 바꾸어 쓰던 말도 이런 유식한 이들 덕분에 다시 원래의 말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누구는 시대의 추이, 추세라고 이야기한다. 하긴 기사 본문에 아직도 영자를 우리말로 쓰는 것을 고집하는 <한겨레>도 ‘표지 이야기’를 버리고 ‘커버 스토리’로 간 지 오래다. <인터넷 한겨레>에 가보면 제호 아래 분류된 항목은 ‘한겨레’를 빼면 모두 외래어다.

 

<연합뉴스>에서 개설한 뉴스 채널 <뉴스와이>에서는 그예 ‘날씨’ 대신 ‘weather’가 공식적인 프로그램 이름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YTN>에서 운영하는 종합 날씨 정보 서비스 이름은 ‘케이웨더’다. <문화방송>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날씨’ 화면에도 영문 ‘웨더’가 선명하다. 그게 그 위의 한글 ‘날씨’를 잡아먹게 되는 건 언제쯤일까.

 

 

2012. 9. 1. 낮달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