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들어내다’는 돼도 ‘들어나다’는 없다

by 낮달2018 2020. 7. 14.
728x90

‘드러나다/들어나다’, ‘드러내다/들어내다’

“속에 가려져 있거나 잘 보이지 않았다가 잘 보이게 되다.”, “감추어지거나 알려지지 않았다가 널리 밝혀지다.”(다음한국어사전)의 뜻인 ‘드러나다’를 ‘들어나다’로 쓰는 이가 적지 않다. ‘드러나다’의 사동사인 ‘드러내다’를 ‘들어내다’의 형식으로 쓰기도 한다. 댓글에서 맞춤법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없어서일까.

 

분철(끊어적기)의 문법 의식?

 

글쎄, 이유를 굳이 찾자면 이들은 ‘드러나다’를 제대로 쓴 글을 읽은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듣기만 하고 써 보지 못한 낱말을 적으면서 엉뚱한 문법 감각이 오작동(?)한 결과로 말이다. ‘엉뚱한 문법 감각’? 학교 문법을 배우면서 익힌 ‘분철(分綴:끊어적기)’에 대한 기억이 환기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발음 나는 대로 표기하는 ‘연철(連綴: 이어적기)’은 중세국어의 표기 원칙이었다. 그러나 현대국어의 표기 원칙은 음절이나 성분 단위로 밝혀 적는 표기법인 ‘분철’이다. 이는 한글맞춤법 제1항에 명시되어 있다.

 

제1항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드러나다’를 귀로 익힌 사람은 이를 적을 때 끊어적기를 의식해서 ‘들어나다’로 쓴 게 아닐까. ‘최고’를 ‘쵝오’로 쓰는 식으로 끊어적기를 과도하게 적용하는 말장난에 익숙한 세대이니 말이다. 이들은 아마 ‘흐드러지다’도 ‘흐들어지다’로 쓸지도 모른다.

 

‘아주 멋있다’라는 뜻은 ‘멋들어지다/멋드러지다’ 중 어느 게 맞을까? 이 경우는 ‘멋드러지다’가 아니라 ‘멋들어지다’가 바른 표기다.

 

‘끝이 밖으로 뻗다’는 뜻의 낱말은 ‘뻐들어지다’일까, ‘뻐드러지다’일까? 이 경우에는 ‘뻐드러지다’가 맞다. 이런 낱말을 적을 기회가 없는 이에겐 이 표기법은 꽤 골치가 아플 수 있겠다.

 

‘들어나다’는 사전에 없다

 

정리하면 ‘드러나다’가 맞고 ‘들어나다’는 틀린다. ‘들어나다’는 우리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당연히 그렇게 써서는 안 된다. 그러나 ‘드러나다’의 사동사 ‘드러내다’의 경우는 좀 다르다.

 

‘드러나다’의 사동사는 ‘드러내다’다. “숨겨지거나 알려지지 않던 것을 나타내어 알게 하다.”, 또는 “겉으로 나타나 보이게 하다.”는 뜻으로 쓰는 타동사다. “그 영화는 청소년 문화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나 “속잎을 하얗게 드러내며 풀들이 바람에 무너졌다.”처럼 쓰인다.

 

‘들어내다’는 ‘들어서 밖으로 내놓다’의 뜻

 

발음이 같은 ‘들어내다’는 독립적으로 쓰이는 낱말이다. “(물건을) 들어서 밖으로 내놓다.”, “(사람을) 있지 못하게 쫓아내다.”의 뜻으로 쓴다. “이사할 때는 옷장을 들어내기가 가장 힘들다.”, “그 녀석을 마을에서 당장 들어내라.”처럼 쓰이는 것이다. ‘들어내다’는 쓸 수 있는 낱말이지만 ‘드러내다’와는 뜻이 전혀 다른 낱말이란 걸 유념해 둘 일이다.

 

 

2018. 7. 12.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