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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은 ‘때고’ 책은 ‘뗀다’

by 낮달2018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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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조차 ‘때다’와 ‘떼다’를 혼동

▲ TV프로그램 자막이 잘못 쓰이는 일도 드물지 않다. ⓒ <문화방송(MBC)> 화면 갈무리. 이하 같음 .

인터넷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어법에 어긋난 낱말이 눈에 띄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워낙 유(類)가 많아서 그런지 온라인 신문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아직은 굳건히 기본을 지키고 있는 곳은 종이신문이다. 아마 교열 부서라는 거름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교열 부서를 당연히 갖추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건 영 볼썽사납다. 온 국민이 들여다보고 있는 이른바 골든 타임에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막이 눈을 의심하게 할 땐 시청자인 내가 다 무안하다.

 

지난 주말 <문화방송(MBC)>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진짜 사나이’를 잠깐 보다가 어법에 어긋나게 쓰인 자막 때문에 결국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실수를 하는가. 작가든 피디든 편집자든 간에 기본 국어교육을 받은 이라면 저 정도는 구별을 해야 하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군불은 ‘때고’ 책은 ‘뗀다’

 

‘개그맨 유격특집’이라면서 출연자들이 화생방 교장에 들어가기 직전의 장면이었다. 출연자 가운데 윤정수가 어릴 때부터 ‘불 때는’ 집에서 자라서 연기에 강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자막엔 ‘때다’가 아니라 ‘떼다’가 쓰인 것이다.

잠깐의 실수인가 했더니 다음 장면의 자막은 더 크고 확실하게 ‘장작 떼는’이다. 자막 담당자는 ‘때다’와 ‘떼다’를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때다’는 <다음국어사전>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이 아궁이나 방에 땔감이나 불을)넣어 지피다.”는 의미다. 반면 ‘떼다’는 ‘따로 떨어지게 하다’는 의미에서 파생한 뜻이 무려 열세 개나 되는 다의어다.

 

‘걸음’을 떼고, ‘입’을 떼고 ‘눈’을 떼고 ‘재산’을 떼고 ‘영수증’을 뗀다. 떼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정’을 떼고 ‘딱지’를 떼고, ‘천자문’을 떼고 ‘물건’을 떼고 ‘아이’를 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떼다’를 ‘불을 넣어 지피다’에다 쓰다니!

 

넥타이는 ‘매고’ 배낭은 ‘멘다’

동사의 경우 모음이 ‘ㅐ’인지 ‘ㅔ’인지 더러 헛갈리는 모양이다. ‘매다’와 ‘메다’를 혼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매다’는 주로 “(사람이 줄이나 끈을)풀리지 않도록 양쪽 끝을 서로 감아 매듭을 만들다.”의 뜻으로 쓴다.

 

반면 ‘메다’는 “(사람이 어깨에 물건을)걸치거나 올려놓다.”, 또는 “(사람이 책임이나 임무를)지거나 맡다.”의 의미로 쓰는 것이다.

 

‘넥타이’를 매고 ‘배’를 말뚝에 매고(묶고), ‘그네’와 ‘책’을 매고, ‘안전띠’도 맨다. 그러나 메는 것은 ‘가마니’와 ‘짐’이고 ‘배낭’과 ‘가방’ 등이다. “(사람의 목이나 가슴이)어떤 감정이 북받치는 상태가 되다”는 뜻의 ‘목이 메다’에 쓰이는 ‘메다’는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다.

 

내 모습은 남에게 ‘비춰지는’ 게 아니라 ‘비친다’

 

같은 프로그램에선 틀린 낱말이 하나 더 있었다. ‘우스운 사람으로 비춰지는 건 사절’이라는 자막인데 여기서 ‘비춰지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비만한 개그맨이 훈련에 실격하면 ‘우스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비춰지는’은 ‘비치는’으로 써야 맞다.

 

얼핏 보면 ‘비추어지다’는 타동사 ‘비추다’의 피동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빛을 내는 물체가 사물이나 장소를)빛을 보내 밝게 하다.”는 뜻인 ‘비추다’의 피동사(<다음국어사전>에서는 ‘자동사’)는 ‘비추이다(비취다)’이다.

 

“거울에 비추인 그의 얼굴은 추악한 괴물같이 보였다.”

“한밤의 차가운 달빛에 대문이 비추이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 문장에 쓰인 ‘비춰진’의 뜻은 자동사 ‘비치다’ 중 네 번째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사물의 특징 따위가 다른 사람의 눈에)어떤 모습으로 보이다.”는 의미다.

 

“그의 자유분방한 행동이 때때로 남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아이들의 그러한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 귀엽게 비칠 수 있다.”

 

따라서 이 자막은 “우스운 사람으로 비치는 건 사절”로 써야 맞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낱말인데 주말 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이런 엉터리 자막이 쓰이는 상황이 어쩐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2016. 7.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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