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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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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새순과 꽃 봄꽃이 피지 않는다고 투덜대었더니 봄은 내 눈을 피해 일찌감치 주변에 이르러 있었던가 보다. 늘 교사 뒤편 산 중턱, 옥련지 주변의 매화와 수달래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으니 소리 없이 당도한 봄을 어찌 알았으랴! 며칠 전에 우연히 동네 뒤의 민둥산을 올랐더니 생강나무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수유인가 했더니 가지에 바투 붙은 수술 같은 노란 꽃의 생강나무였다. 인가로 내려가는 산 중턱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산 밑에 웅크린 학교 주변에 오는 봄이 더딘 것은 당연한 일! 내 눈에 뵈지 않는다고 오는 봄을, 피는 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는 쑥과 여린 새순을 틔워내고 있는 찔레가 싱그럽다. 교사 앞 화단에 선 동백나무는 이제 겨우 몇 송이의 꽃.. 2021. 3. 28.
<낮술>, 그래 인생은 그런 거야, 어쩔래? 영화 이 말하는 것들 어제 오후에 동성아트홀에서 을 보았다. 그 전날 친구들과 오래 ‘밤술’을 마셨고, 모텔에 든 건 새벽이었다. 숙취가 가시기 시작할 무렵인 오후 2시께에 나는 대구의 예술영화 전용관인 ‘동성아트홀’의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불편’은 일반 상영관에선 올리지 않는 ‘돈 안 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인지 모른다.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 관객은 3~40명 선. 안경을 가져오지 않아서 비교적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상영 115분 동안, 나는 나른하게 가라앉는 몸과 싸우며 뒤편 관객들의 반응을 아주 민감하게 살피고 있었다. 대부분 2, 30대인 관객들은 서둘러 실소했고, 더러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언제든 재미있는 장면만 나.. 2021. 3. 28.
숨어 있는 봄 일요일의 늦은 오후, 네 시가 넘어서 사진기를 들고 봄을 찾아 나섰다. 최남선이 수필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심춘’이다. ‘심춘’은 일간지 ‘심인(尋人)’ 광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찾을 심(尋)’ 자를 썼으니 직역하면 ‘봄 찾기’다. 최남선의 수필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국토를 돈 기록이니 ‘순례’가 제격이지만, 동네 뒷산으로 꽃소식을 찾아 나선 길을 ‘봄 찾기’라 쓰는 것은 좀 무겁기는 하다. 그러나 봄이 와도 한참 전에 와 있어야 할 시절인데 유난히 늦은 꽃소식에 좀이 쑤셔 집을 나섰으니 ‘봄 찾기’가 지나치지는 않겠다. 인근 대구에는 개나리가 만개했다는데 안동의 봄은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기온도 기온이려니와 사방의 빛깔은 아직도 우중충한 잿빛이다. 반짝하는 봄기운에 서둘러 피기.. 2021. 3. 28.
봄, 혹은 희망 낙동강변에 당도한 봄, 그리고 희망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진술은 조금은 뜬금없을 수도 있겠다. 이미 봄은 소리 소문도 없이 와 있으니 말이다. 겨우내 썰렁했던 아파트 담장 위에, 드러난 살갗을 간질이며 매끄럽게 휘돌아 지나가는 바람의 속살에, 숙취로 어지러운 아침 식탁에, 골목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이미 봄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들른 조각공원에서 찍어 온 강변 풍경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자면, 그 풍경 속을 스쳐 간 실바람, 미루나무 그늘에 쌓이던 햇볕의 온기까지 뚜렷하게 느껴진다. 넘치는 햇빛 때문에 아련한 푸른빛 기운과 함께 시나브로 다가오는 건너편 산, 잘디잘게 떨고 있는 비췻빛 물결 등이 어울려 연출하는 이 풍경은 이미 봄이 우리 가슴속까지 와.. 2021. 3. 27.
‘오포세대’와 ‘일자리˙주거 절벽’의 세상…2014년 새말 국립국어원 발표 2014년 신어 새말[신어(新語)]이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변화무쌍한 현실을 사람들은 말을 통해 묘사하고 규정함으로써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드러낸다. 거기에는 고단하고 분주한 세상살이는 물론이거니와 나날이 진화하는 사람들의 표현력도 담겨 있다.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이 발표한 ‘2014년 신어’를 훑어보면서 요즘 신어는 무엇보다 언중들의 발랄한 표현력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국어원이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일간지 등 온오프라인 대중 매체 139개에 등장한 새 낱말(신어)은 334개다. [국어원 보도자료 바로가기] ‘눔푸족’, ‘모루밍족’, ‘출퇴근 쇼핑족’, ‘오포 세대’, ‘앵그리맘’, ‘.. 2021. 3. 26.
‘시들음병’과 ‘칼 갈은 노장’ 끝소리가 ‘ㄹ’인 용언(동사·형용사)에 명사형 활용 어간의 끝소리가 ‘ㄹ’인 용언(동사·형용사)에 명사형 어미 ‘-ㅁ’을 붙여 명사형을 만들 때 반드시 ‘ᅟᅠᆱ’의 형식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오래전에 다룬 내용이다. [바로 가기 ☞ ]모음으로 끝나는 어간엔 명사형 어미 ‘-ㅁ’만 붙이면 되지만 ‘ㄹ’로 끝나는 용언에는 어간을 밝혀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무심히 ‘베품’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시청한 공중파 방송 뉴스에서도 같은 오류가 보였다. 미국선녀벌레에 의해 발병하는 ‘참나무시들음병’이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시들다’의 명사형은 ‘시들음’이 아니라 ‘시듦’이다. 당연히 이는 ‘참나무시듦병’으로 써야 옳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에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 2021. 3. 25.
정명훈, 물론 그가 해고될 일은 없겠다 국립오페라단합창단원 해고 소식에 그는 E노트에 오른 기사 가운데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정명훈에 관한 기사가 유독 관심을 끌었다. 블로그에 오른 그 글은 파리에 사는 진보신당 당원이 쓴 글로 보이는데 세계적 음악가인 정명훈에 대해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상당한 장문의 기사를 요약하는 건 쉽지 않은데, 골자만 따면 이렇다. 파리의 진보신당 당원들은 ‘전원 해고된 한국의 국립오페라단 합창단 소식’을 듣고 그들의 복직을 위한 연대활동을 벌이는 있다. 이들은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정명훈을 만나 지지 서명을 요청했는데, 정명훈은 뜻밖에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이며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불쾌한 반응의 수준이 사뭇 다르다. 파리의 공연예술노조 위원장, 파리 오페.. 2021. 3. 25.
<무소유>를 다시 읽으며 ‘베스트 셀러’ 를 다시 읽다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나는 무심하게 들었다. 그 며칠 전에 그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심하게’ 들었다는 말은 그의 죽음을 우리가 일상에서 숱하게 만나는 여느 ‘명사의 부음’과 다르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70년대 중반 이후, 내내 어정쩡한 ‘문청(文靑)’이었던 나는 법정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수필집 의 지은이고, 숱한 저작을 남긴 만만찮은 문인이라는 것 정도로만 그를 이해했다. 내가 70년대 후반의 마지막 3년을 군대에서 보낸 것이 이유가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곰곰 생각해 보면, 가 공전의 판매량을 기록한 베스트셀러였다는 것과 내가 문청이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내 무관.. 2021. 3. 24.
산당화에서 할미꽃까지, 나의 ‘꽃 삼월’ 꽃 나들이 - 동네 한 바퀴와 산행 이제 곧 봄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덧 봄은 우리 밭 밑에 와 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대기로, 맨살에 휘감기는 햇볕으로도 오지만, 역시 봄의 기척은 꽃눈과 꽃망울, 그리고 마침내 피어난 꽃으로 완성된다. 겨우내 추위를 이기고 속으로만 자라난 꽃눈은 봄바람과 만나면서 비로소 그 존재를 시나브로 드러내는 것이다. 올봄은 지난해보단 더디 온 듯하다. 아파트 화단에 해마다 2월이면 꽃을 피우던 산수유가 삼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눈을 틔웠다. 산밑 동네에 오는 봄이 더디다는 걸 인정해도 그렇다. 온 세상에 다 봄이 와도 창밖과 울타리 너머에 그 기척이 없으면 ‘나의 봄’은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던가. 지난 금요일에 겨우내 발을 끊었던 산자락에 다시 올랐고 오늘 한 차례 더 다녀왔.. 2021. 3. 23.
‘무상급식’ 무산, 경북의 ‘보수 본색’ 무상급식, 구미시 의회의 예산삭감으로 무산되다 전면 ‘무상급식’은 아니지만 ‘부분 무상급식’이라도 시행하려는 경상북도교육청의 계획에 경상북도 의회가 재를 뿌렸다. 지난 18일, 경북도교육청이 도내 면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시행할 2학기 무상급식 예산 15억을 삭감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경북도교육청이 올린 도내 면 지역 초등학생 무상급식 시행 예산(40억)을 삭감한 데 이은 것이다. 무상급식은 전국 80% 이상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정책이다. 그러나 ‘지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경상북도 의회는 ‘포퓰리즘’ 운운하며 무상급식을 회피한 끝에 결국 지역민들의 무상급식 요구와 열망을 짓밟아 버린 것이다. 고작 15억, ‘예산 부담’으로 삭감했다고? 이번에 경상북도 의회가 삭감한 예산 15억 원.. 2021. 3. 23.
점수는 ‘매기고’ 앞소리는 ‘메긴다’ ‘매기다’와 ‘메기다’의 쓰임 벌점을 ‘메기다’? 요즘은 인터넷 신문에서도 심심찮게 맞춤법에 어긋난 기사를 만날 수 있다. 이 오류는 ‘종이 신문’의 인터넷판에선 드물고 주로 인터넷 신문에서 잦다. 워낙 우후죽순처럼 생긴 매체가 많아서일까. 날이 갈수록 눈에 밟히는 경우가 늘어나는 듯하다. 연륜도 지긋하고 꽤 일반에 알려진 매체에서도 비슷한 잘못이 되풀이되는 걸 보면 입맛이 쓰다. 두어 차례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게 쪽지를 보냈는데도 그걸 고치지 않는 걸 보고 손을 놓아 버렸다. 잘못을 알려주면 금방 반영을 하는 매체가 없지는 않지만 그런 이른바 ‘지적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궁량으로 무슨 기사를 쓰는가 싶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 어떤 종이 신문에서 ‘매기다’라고 써야 할 자리에 ‘메기다’를 쓴 걸 보았.. 2021. 3. 22.
인터넷의 ‘백과사전’들, 믿을 만하나? 인터넷 ‘백과사전’의 정보, 신뢰할 수 있나? 인터넷 정보가 그리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나 막상 그 정보의 신뢰성을 마땅히 측정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사람들은 아쉬운 대로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를 쓸 수밖에 없다. 임신·육아·출산 관련 66개 사이트 중에서 72%에 이르는 48개 사이트가 엉터리 정보를 게재하고 있으며, 200건 중 126건(63%)이 잘못된 정보였다는 보도는 그 움직일 수 없는 실례다. 이태 전쯤에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효이친부대(子欲孝而親不待)’라는 글귀의 출전을 로 쓴 적이 있었다. 미심쩍어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하고 썼던 듯한데, 어디에 씌었던가 보다. 이웃의 지적을 받아 다시 찾아보니 웬걸, 이다. 있을 수 있는 실수.. 202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