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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낮술>, 그래 인생은 그런 거야, 어쩔래?

by 낮달2018 202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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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낮술>이 말하는 것들

 

어제 오후에 동성아트홀에서 <낮술>을 보았다. 그 전날 친구들과 오래 ‘밤술’을 마셨고, 모텔에 든 건 새벽이었다. 숙취가 가시기 시작할 무렵인 오후 2시께에 나는 대구의 예술영화 전용관인 ‘동성아트홀’의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불편’은 일반 상영관에선 올리지 않는 ‘돈 안 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인지 모른다.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 관객은 3~40명 선. 안경을 가져오지 않아서 비교적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상영 115분 동안, 나는 나른하게 가라앉는 몸과 싸우며 뒤편 관객들의 반응을 아주 민감하게 살피고 있었다. 대부분 2, 30대인 관객들은 서둘러 실소했고, 더러는 폭소를 터뜨렸다.

▲ 대구의 예술영화 전용관 ‘동성아트홀’. ⓒ 한국콘텐츠진흥원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언제든 재미있는 장면만 나오면 얼마든지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훨씬 세련되고 화려한 형식의 소비를 즐길 수 있는 복합상영관이 아니라, 불편함을 기꺼이 견디면서 ‘독립영화’를 보러온 이들이다. 당연히 그들은 이 독립영화에 대한 정보를 일정하게 가진 듯했고, 가능하면 영화의 단점보다는 장점들을 찾아 자기 선택의 합리성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영화나 코미디 따위를 보면서 잘 웃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요절복통하는 장면에서도 나는 그저 미소를 짓거나 낮게 킥킥대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면서 두 차례나 폭소를 터뜨렸다. 어떤 방식으로도 참을 수 없는, 그 웃음은 거의 기습적으로 내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낮술>은 ‘우유부단 소심남 혁진의 5박 6일 강원도 오딧세이’(다음 영화 정보)다. 그는 실연했고 그를 위로하고자 시작된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한 벗들은 강원도 정선 여행을 제안한다. 그러나 다음날 정선 터미널에 도착한 이는 주인공뿐이다. 친구들은 술에 뻗었고, 정선 여행에 대한 제안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되돌아오는 대신 우유부단한 청년 혁진은 펜션으로 가서 시간을 죽이면서 옆방에 든 ‘미모’의 여인과의 로맨스를 꿈꾸지만 일은 자꾸 꼬이기만 한다. 경포대에서의 ‘컵라면과 소주’로 시작한 낮술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다시 정선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친구를 만나지만, 악연은 계속되는데……

 

‘첫 잔에 웃고 막잔에 눈물 쏙 빼는 <낮술>’, ‘술과 여자의 공통점 - 남자라면, 거절할 수 없다?!’는 이 영화의 공식 카피다. 그리고 이 카피는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우연의 반복’ 등을 통해 시나브로 하나씩 증명되지만, 그 카피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우리 삶의 치졸성’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낮술’의 의미는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낮술은 이른바 ‘혼자 여행하는 남성의 로망과 판타지’(배주연)를 구성하는 한 요소다. 그것은 시시껄렁한 일상을 전도하게 하면서 동시에 아주 자연스럽게 비일상으로 진입하게 하는 매체 노릇을 훌륭히 수행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무척 진부하면서도 우리네 일상과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겹친다. 술 취한 사람들의 객기와 치기 어린 모습들에서 관객은 자신들의 일상을 좀 계면쩍게 확인한다. 그러나 그 일상은 늘 ‘비일상’과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비호감 캐릭터로서 등장하는 ‘난희’란 인물은 영화의 주요한 장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우연의 반복은 마치 이웃처럼 수더분한 배우들의 캐릭터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기실 그것은 비일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귀처럼 느껴진다. 사건마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모두 주인공에게 먼저 ‘작업을 거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이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청년의 강원도 로맨스, 그 판타지가 슬그머니 펼쳐지는 것이다.

 

영화 소개 전단에는 ‘전대미문,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의 향연’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 캐릭터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수더분한 이미지 안에 감추어져 있다. 따라서 때로 내뱉는 돌발적인 대사도, 감정의 과잉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얼굴의 배우들이 불필요한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한 것도 한몫했으리라.

이 영화에서는 ‘수더분’ 일색의 캐릭터들이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일상을 전복하는 대사 덕분에 사실상 해프닝 위주의 이야기가 힘을 받는다. 그들의 대사는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그 상황과 장면의 함의를 진득하게 담고 있어서 관객들의 실소를 유감없이 자아내는 것이다.

 

다음(daum) 영화 정보에 누리꾼들이 올린 ‘명대사’는 바로 그런 성격의 대사들이다. 난희가 외모 때문에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혁진에게 들으라고 내뱉는 대사는 육두문자가 들어갔지만, 거기엔 무슨 열등감이나 애먼 증오심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을 향해 날리는 유쾌한 냉소일 뿐이다.

 

“개새끼……, ○ 같은 새끼. ○도 작은 새끼가…….”

 

산속 고속도로에서 팬티 바람으로 남겨진 혁진은 천신만고 끝에 히치 하이킹에 성공한다. 그런데 유리창을 내리자, 나타나는 구세주의 얼굴……. 그런데 임자는 버스에서 튕겼던 ‘그녀’다. 콧방귀만 남기고 떠나는 차를 향해 혁진은 절규하고, 그의 절규는 골짜기에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간다. 이 장면에서 나는 첫 번째 폭소를 터뜨렸다.

 

“야 이 ○○년아, 야 이 ○○년아…….”

 

가까스로 만나게 된 친구, 그런데 그 녀석은 내 전 여자 친구와 사귀고 있다고 자백한다. 분노 끝에 내뱉는 주인공의 중얼거림은 허망하기조차 하다.

 

“너…, 지혜랑 잤냐? 나한텐 아직 안 줬는데…….”

 

노영석 감독은 홍상수 감독과 견주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 영화는 홍상수의 그것처럼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낮술>은 사내들이 여자를 바라보는 눈길과 음험한 속셈을 음험하지 않게 드러내면서 ‘다 그런 거 아냐?’하고 반문하고 있는 듯하다.

 

정선 여객터미널에 혁진을 내려주고 친구는 떠나고, 드디어 혁진은 여행 여섯째 날, 서울행 차표를 끊는다. 벤치에 널브러진 그에게 눈이 번쩍 띄는 미인이 나타나 말을 건넨다.

 

“혼자 여행 중이세요? 저도 혼잔데…….”
“저는 강릉으로 가요. 행선지가 같았으면 좋겠네. 어디 가세요?”

 

화면 가득, 주인공의 고민스러운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엔드 크레디트(end credit)가 올라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관객들은 소리 내어 웃었고, 나는 두 번째 폭소를 터뜨렸다. 그것은 말하자면 숨긴다고 숨기고 있는데 정작 알 만한 사람은 모두가 알게 된 유쾌한 염문을 확인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극장의 기술적 문제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화면은 내내 어둡고 칙칙했다. 소개 전단에는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강원도의 설경과 명소들’이라고 했지만, 나는 어떤 장면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복각한 화면 같이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폭소를 터뜨리며 나는 정말 유쾌했다. 115분간 영화가 저질렀던 어떤 잘못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이 영화에 녹아 있는 생각들이 남자들의 속물적 상상력을 비틀되, 비웃지 않는, “그래 인생은 그런 거야, 그래서 어쩔래?”라는 건강한 반문 같았기 때문이었다.

 

 

2009. 3.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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